어느 잊힌 절터의 주춧돌이 불러온 ‘성물(聖物)’ 논란
news letter No.728 2022/5/3
그 주춧돌에 대통령 내외가 앉지 않았다면, 그 돌조각이 ‘성물’이라는 것을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청와대 뒤편 북악산 남측 탐방로가 전면 개방되기 하루 전인 지난 4월 5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이를 기념하여 산행하던 도중 한 폐사지에 놓인 초석에 착석하여 김현모 문화재청장의 설명을 듣는 사진을 청와대가 배포하면서이다. 이에 교계 매체인 법보신문은 즉각 4월 6일 「대웅전 초석 깔고 앉은 문 대통령 부부…청와대 문화유산 인식 수준 참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이에 대한 조계종단 지도부의 신랄한 비판을 실었다. 해당 기사에 의하면 불교중앙박물관장 탄탄 스님은 “사진을 보고 참담했다”며 “성보를 대하는 마음이 어떤지 이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라며, “대통령 부부도 독실한 신앙인으로 아는데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물이라도 이렇게 대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성공 스님 또한 “만약 문 대통령 부부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문화재청장이 그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비판하였다고 한다. 동행한 문화재청장의 책임이 거론되자, 4월 7일 오전 문화재청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북악산 남측 탐방로 개방 기념산행에서 문 대통령 내외가 착석하신 법흥사터(추정) 초석은 지정 또는 등록문화재가 아니다”라고 해명한 후 “사전에 보다 섬세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앞으로는 더욱 유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같은 날 오후 페이스북에서 “문 대통령의 부처님에 대한 공경과 불교에 대한 존중은 한결같다”라며, “대통령 내외는 산행을 마치고 (청와대 관저 뒤편) 부처님 앞에 공손히 합장하고 예를 올렸고 동행했던 청와대 참모들도 자신의 종교를 떠나 정성껏 예를 올렸다”라고 전하며 관련 사진을 공개하고 논란의 진화에 나섰다. 이어서 박 수석은 같은 날 MBN 뉴스와이드에도 출연하여 문제의 초석은 “1968년 김신조 사건이 나면서 (북악산이) 폐쇄가 되니까 여기저기 버려져 있던 그냥 그런 돌”이라고 말하고, “대통령이 그런 (종교적) 감수성을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문화재청장에게 여기 혹시 앉아도 되느냐고 확인을 했다. 이번에 정비하면서 (버려져 있던 주춧돌을) 한 번에 다 모아놨는데, 언론과 불교계에서는 오래된 종교·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있는 초석에 앉으신 것으로 잘못 오해하실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 절터는 신라 시대 나옹 스님이 창건한 법흥사가 있었던 자리로 전해질 뿐 이에 대한 고증은 없으며, 문제의 초석들은 박정희 정권 때 법흥사 터 복원 계획으로 당시 새로 깎아 놓았던 것으로,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 복원이 중단되면서 이제까지 방치되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해당 초석에 관해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가 아니라는 해명과 박 수석의 “버려져 있던 그냥 그런 돌”이라는 발언은 종단의 더욱 강경한 대응을 불러왔는데, 즉 문화재청장과 박 수석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4월 8일 법보신문은 「조계종 “천박한 문화재 인식 드러낸 문화재청장·청와대 수석 사퇴해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조계종 대변인 법원 스님의 입장문을 실었다. 스님은 (이 같은 해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갖고 있는 비지정 불교문화재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확인하게 됐다”며 이러한 인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사회적 논란을 가중시킨 문화재청장과 국민소통수석은 즉각 사퇴하라”라고 요구하고, “더불어 문화재청은 지정 및 등록문화재 중심의 문화재 정책에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 또한 정책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정책변화를 촉구한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언급할 것은 문화재 즉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은 크게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지정 보호되는 ‘국가지정문화재’, 시도 문화재보호 조례에 의한 ‘시도지정문화재’, 법령으로 지정(인정/등록) 되지는 않았으나 지속적인 보호와 보존이 필요한 비지정 문화재로 나뉜다는 것이다. 종단 측은 법흥사 터와 문제의 초석을 비지정문화재로 보고 있으나 아직 지정·등록되지 않은 문화재는 ‘미지정문화재’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며, 후자는 아직 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기에 보전·관리에 공공자원이 투입될 근거가 분명하지 않으며, 이로써 종단이 요구하는 문화재청의 정책변화가 설명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초석 사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언론매체의 보도 방식으로 법보신문의 최초 관련 보도 이후 대다수 언론이 조계종단의 주장이나 정부에 대한 정치적/정책적 요구를 아무런 비판 없이 전달하는 데 집중하였다는 것이다. 법흥사 터 초석을 둘러싼 조계종단과 문재인 정부와의 갈등은 5월 10일 새 정부 출범으로 일단락된 듯하지만, 사건 발단 후 수일 내에 급박하게 진행된 갈등 상황과 그 파장을 보더라도, 과연 ‘성물’에 대한 정의는 누가 내리며, 어떤 과정을 통해 특정 물질이 성스럽게 만들어지는가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례는 ‘성물’에 대한 논쟁이 특정 물질의 가치에 대한 논의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집단들 – 주류 종교 집단, 언론 집단, 정치 집단 등 – 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겨루는 장을 제공하고, 특히 종교 세력에게는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임을 보여준다. 다시 법흥사 터 초석으로 돌아가서, 문제의 초석이 문화재로 지정/등록되지 않은 것은 일차적으로 이것이 법흥사 터에서 발굴된 유물이 아니라 복원을 위해 60년대 새롭게 가공해서 옮겨다 놓은 자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계종단은 어떤 근거로 이제까지 주목받지 못하던 문제의 초석을 불교의 성스러운 보물 즉 성보라고 주장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중앙박물관장 탄탄 스님은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문화재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불상·건축물·탑 등 모든 불교적 자료를 성보로 본다"라며 "60년대에 사찰 중건을 위해 놓은 초석이라도 50년이 넘은 문화재"이며, "'지정문화재가 아니라서 앉아도 된다'라는 식의 문화재청 입장은 종교문화재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며, "문화재청장이 ‘성보에 불경 저지른 것을 사과한다’고 해야한다" 발언하였다 (중앙일보 「법흥사터 초석 깔고앉은 文부부…불교계 "참담" 뒤집힌 까닭」 2022.04.07.). 같은 맥락에서 스님은 “성보나 이런 것을 불교적인 예경의 예우, 예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지 그것을 한 물건으로 보고 문화재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보는 것은 상당한 오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BTN불교TV, 「법흥사터 초석 "문화재 아니다", "성보" 논란」 2011.04.08.) 더 나아가 탄탄 스님은 문제의 초석에 새겨진 연화문을 초석이 성물인 주요 근거로 제시하였다: “오랜 절터에 있는 연꽃무늬의 초석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앉았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아쉽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처렴상정(處染常淨)의 꽃이 아닌가. 불상을 봉안하는 좌대도 연화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불상 뒤 대부분의 광배도 연화화생(蓮華化生)으로 표현하고, 연화대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곧 불교에 귀의해 수행정진하겠다는 원력의 표시다” (법보신문, 「‘법흥사터 초석’ 논란에 “지정 안돼 괜찮다”는 문화재청」 2022.04.07.) 이런 시각에서 연화문 초석에 앉는 행동은 신성모독(blasphemy)이며, 이로써 법보신문의 4월 8일 사설 「궁색한 변명 일관한 청와대·문화재청」을 이해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문 대통령 부부는 로마 교황청에서의 미사 생중계를 허락할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서울 근교 폐허 성당의 마당에 떨어진 십자가 위에 앉을 수 있는가? 전주 전동성당이나 서울 명동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교회의 십자가이니 괜찮은가 말이다.” 이렇게 ‘초석 사건’을 타종교 성물에 대한 모독, 불경, 무례로 보는 시각은 보수 성향 미디어들이 관련 기사 제목에 초석을 “깔고 앉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위에서 소개한 종단 측의 ‘성물’ 혹은 ‘성보’에 대한 확대 해석은 조계종의 ‘성보보존법’(개정 2018. 4. 5) 제2조와도 상충한다는 의견이 있다: 제2조(성보의 정의) 1. 불상, 건축, 탑, 서지, 전적, 회화, 공예품, 기타 유형의 불교문화 소산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 2. 각종 의식·무용·음악·연극·문학 그리고 공예기술 등 무형의 불교문화 소산으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인정되는 것; 3. 사지 등 사적지와 특별히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 및 경승지로서 불교의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 4.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의·식·주, 법의 및 기타 불교적 자료로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인정되는 것. 여기서 성보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역사적·예술적 가치의 인정이며, 국가에서 문화재를 지정하는 기준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주춧돌에 앉아 쉰 것을 시비 거는 모습 추하다」 2022.04.20.) 이러한 종단이 제정한 종법에도 불구하고 현 종단 측의 문화재 지정과 관계없이 모든 불교적 자료가 성보이며 법흥사 절터와 초석도 같은 맥락에서 성보라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혹자는 이런 논리라면 “전국 사찰 법당의 기단이나 계단에도 오르지 말아야 하며, 법당에도 들어가선 안 된다. 전통문화의 한 부분이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신성한 문화재와 장소에 어디 더러운 발을 올려놓고, 들여 놓는다는 말인가?”라고 되묻는다 (불교저널, 「폐사지 초석 논란과 상왕 자승 스님」 2022.04.07.)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종단 측이 이번 사건에서 문화재와 성보를 구분하여 전자의 평가와 무관하게 후자(초석)의 독립적인 가치를 주장하지만, 동시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청의 정책에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적극 반영하길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종단의 태도는 한국 불교계의 성보 관리가 이미 국가의 문화재 보전·관리·활용 체계 속에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후자가 제공하는 정책적/물질적 지원이 불교계의 매우 중요한 자원/재원임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불교 문화재와 성보는 언제부터인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렇게 성보를 문화재 차원에서 보는 시각은 ‘성보문화재’라는 용어를 낳았다. 따라서 성보를 예배와 신앙의 대상인 결국 종교적인 가치에 의해서 판단할 대상으로, 그리고 이에 반해 문화재는 실용적 가치를 중심으로 관리와 활용의 대상으로 보려는 이분법적 시각은 현 한국의 불교계의 현실과는 상당히 괴리가 있다. 또한, 탄탄 스님이 문제의 초석이 성보라는 근거로 제시한 연화문은 오히려 희화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무늬가 있다고 주춧돌이 성보가 된다면 방석에 연꽃문양이 있으면 그 방석도 성보가 되는 것인가? 그들은 연꽃 방석에 앉는 사람을 보면 부처님을 깔고 앉은 짓이라고 분개할 사람들이다.” (오마이뉴스, 앞의 기사) 종단 지도부가 문제의 초석을 빌미로 스님들과 불자들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며 교계와 보수 언론을 통해 청와대와 문화재청을 강하게 비판하였으나, 불교계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예를 들어 문명대(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학교 명예교수)는 “탑이라든가 불상이라든가 이런 것이 예배대상이지만 그 외 주춧돌 같은 것은, 근래 주춧돌은 우리가 얼마든지 밟고 다니기 때문에 그것에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근래에 만든 거라....” (.BTN불교TV, 「법흥사터 초석 "문화재 아니다", "성보" 논란」 2022.04.08.) 무엇보다 관련 기사들에 달린 댓글을 훑어보면 현 불교계에 대한 대중들의 부정적 평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한편 ‘초석 사건’을 정치적 맥락에서 설명하려는 시각도 있다. 이는 주류 불교 세력이 왜 하필 한달 밖에 남지 않은 문재인 정권을 초석을 빌미로 강하게 압박하는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주지하다시피 조계종 지도부와 문 정권의 갈등은 오래된 것으로, 예를 들어 불교계 매체는 문재인 정권의 친 가톨릭 성향이 종교 간 균형과 형평성을 해친다며 꾸준히 비판해 왔으며, 최근에는 정청래 의원이 2021년 국정감사에서 문화재관람료 문제와 관련하여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며 '봉이 김선달'에 비유해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샀고, 이에 이재명 후보와 당 지도부, 정 의원 본인의 사과 등에도 불교계는 정 의원의 출당을 강하게 요구했던 것이다. 급기야 조계종 주최 전국승려대회가 2022년 1월 21일 조계사에서 “종교 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란 이름으로 승려 5,0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으며, 이 행사에서 주최 쪽은 ‘종교 편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한 것이다. 따라서 4월 ‘초석 사건’은 이러한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혹자는 ‘초석 사건’이 단순히 종단 주류 세력의 문 정권에 대한 그간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5월 새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조계종 실세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6월 지방선거에서 현 더불어민주당을 타격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 무엇보다 종단이 요구한 문화재청장의 사퇴는 향후 문화재청장의 임명은 불교계 실세의 (비공식적) 허락을 받으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 문화재 지원예산의 대부분을 집행하는 문화재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종단의 막후실세인 자승 스님의 지배력이 계속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초석 사건은 종단의 지배 세력이 문 정권이 아닌 윤석열 당선자에게 보내는 사인이라는 것이다 (불교저널, 「윤석열 당선자에게 보내는 법흥사터 초석 이야기」 2022.04.09.) ‘초석 사건’의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면서 필자에게 아이러니하게 다가온 것은 문 대통령이 문제의 초석으로 인해 종단 지도부로부터 불교 문화재에 대한 무례와 몰이해로 일방적인 비난을 받았다면,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뒤편에 소재한 ‘미남불’로도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 2018년 2월 서울시 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승격된 데에는 2017년 문 대통령이 관저 뒤편을 산책하던 중 이 불상의 가치를 재평가해볼 것을 당부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기사를 접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靑 산책하던 文 눈에 띄어 보물 됐다…용모 수려 ‘미남불’」 2022.03.25.). 이런 맥락에서 이글을 본 글의 첫 문장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그 주춧돌에 대통령 내외가 앉지 않았다면, 그 돌조각이 ‘성물’이라는 것을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는 <‘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트(Abject)>, <신종교로서 무종교(Nonreligion) - 최근 서구 학계의 논의를 중심으로>, <성물(聖物), 전시물, 상품: 진신사리의 현대적 변용에 대하여>,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