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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과 오늘날 한국불교의 큐레이터들

 

news letter No.774 2023/4/1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간다면 꼭 봐야 하는 작품으로 이 박물관이 가장 자랑하는 소장품이다. 방탄유리로 겹겹이 싸여 있고 그 앞에는 항상 수많은 관람객이 붐비는 까닭에 가까이 가서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떠오르는 의문 하나가 있다.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을까?” 다빈치가 이탈리아 사람인데, 혹시 문화재 약탈의 역사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대뜸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을까?』라는 제목의 책이 2018년 한국에서 번역·출판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경위는 이렇다. 다행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재능을 흠모한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재위 1515-1547)의 후원을 받아 말년의 3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이때 그가 가져온 그림 몇 점이 그의 사후에 구매를 통해 프랑스 왕실 컬렉션이 되어 프랑스의 박물관에 소장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모나리자〉가 프랑스에 자신의 최종 거처를 갖게 된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찌 됐든 관람자들의 입장에서는 다빈치의 걸작이 많은 사람에게 노출,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다. 또한 루브르 박물관의 소중한 관리를 받으며 그 명성을 빛내고 있다는 것도 박물관 관계자들을 칭찬해야 할 일이다. 다빈치가 지하에서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큰 아쉬움은 없지 않을까?

      필자의 지도교수 고(故) 윤이흠 교수님은 “서양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수월관음(水月觀音)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필자가 처음으로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의 실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때는 1995년 호암갤러리의 ‘대고려국보전’에서였다. 현존 불화 가운데 가장 큰 높이 4미터가 넘는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재 〈수월관음도〉(1310)는 그야말로 실물 영접을 통해 ‘공격을 받았다(attacked)’고 표현할 수 있는 체험이었다. 이 불화는 일본에서도 한 해 38일만 공개한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 중 또 하나의 불멸의 걸작은 이른바 〈물방울관음〉으로 불리는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이다. 이 불화가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고려불화대전-700년 만의 해후’에 아주 어렵게 전시되었는데, 그 과정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센소지를 방문하여 가까스로 수월관음도를 보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세 번 절하고 무릎을 꿇게 되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진정성을 느낀 센소지 주지가 흔쾌하게 대여를 허락했다는 것이다. 한국불교미 사학도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작품 1순위라는 이 불화는 일본 내에서도 좀처럼 공개하지 않아 일본 연구자들조차 접근이 어렵고 한국에서도 실물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미(美)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가능하겠지만, 어딘가에서 읽었던 한 문장이 기억난다. “모든 아름다운 것에는 영원의 표시가 있다(Everything beautiful has a mark of eternity).” 그것은 시몬느 베이유(Simone A. Weil, 1909-1943)의 어느 책이었던 것 같다. 아름다움의 정의를 그렇게 내린다면, 내게 두 점의 그림 속 수월관음은 하루 24시간을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필자가 아쉬워하는 것은 바로 그 두 점의 수월관음도가 우리 한국의 박물관에 보관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두 작품뿐만 아니라 외국에 있는 다른 고려불화나 한국의 예술품들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한국의 박물관이 아닌 일본의 사찰에서라도 훌륭한 조건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자주 그 모습을 보여주고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만큼이나 그 그림을 그렸던 고려시대 화가들의 이름이 우리에게 널리 기억되는 영광이 그들에게 돌아가면 좋겠다.

     불교학자 도날드 로페즈 교수는 『붓다의 큐레이터들(Curators of the Buddha)』(1995)에서 식민지시대 서양의 불교학자들의 동양불교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의미의 재배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 ‘큐레이터’란 단어는 자못 부정적 뉘앙스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저서 『돌덩이에서 살아있는 육체로(From Stone to Flesh)』(2013)와 『동양 아이돌의 기이한 이야기(Strange Tales of an Oriental Idol)』(2016)에서는 서양 불교학자의 연구가 불교에 대한 인식 형성에 단순히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것만은 아닌 것으로 평가한다. 근대불교학의 창시자라고 부를 수 있는 외젠느 뷔르누프에 대해 로페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오비드(Ovid)는 기예가 너무 뛰어난 나머지 자신이 조각한 아름다운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전한다. 피그말리온은 비너스 여신에게 그 조각상이 살아있게 해달라고 기원한 후, 그 조각상과 결혼하여 가족을 이룬다. 붓다 역시 하나의 조각상이었다. 피그말리온이 만든 것과 같은 그리스 조각상들에서 미를 보도록 훈련된 유럽인들은 불상을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괴이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뷔르누프는 문헌학의 도움으로 붓다를 괴물(monster)에서 인간(man)으로 돌려놓았다… 붓다는 죽어있는 석상에서 살아있는 육체로 변한 것이다.”(Lopez, 2016, 17-18)

      말하자면 불교학자 뷔르누프는 현대판 ‘피그말리온’이었던 셈이다. 그는 차갑게 굳어있던 대리석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은 피그말리온처럼, 불교 경전 속 난해한 의미의 그물망 속에서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이상적 인물 ‘붓다’를 불러내 피와 살을 부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양의 불교전통이 가졌던 신화적이고 초월적인 붓다의 면모, 즉 신적인 속성을 희생시킨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로페즈 교수는 이제 불교학은 그동안 근대불교가 잃어버린 측면, 즉 전통 불교의 우상들(idols)을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로페즈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불교 연구자들은 두 가지 어려운 과제 속에 처해 있다. 한편으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전통들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연구,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의 불교학자들에게는 피식민지 경험의 유산으로 누락되고 왜곡된 불교문화와 예술전통의 회복이라는 큐레이터적 임무도 부여되어 있다. 우리는 피그말리온은 차치하고 단순한 큐레이터로서도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일단은 자료를 수집해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알리는 지점까지 연결해야 한다. 특히 현재 한국에 공백으로 남은 전시실의 공간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절대 빈 공간이어서는 안 되는 그 여백을 아름답게 전시해야 한다. 두 점의 수월관음도를 지금 떠올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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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교수
논문으로 <서구 근대불교학의 출현과‘부디즘(Buddhism)’의 창안>,<한용운의 불교·종교담론에 나타난 근대사상의 수용과 재구성>,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1910-1930년대 불교잡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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