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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13호-조상제사 논쟁 다시 읽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4. 1. 18. 16:42

조상제사 논쟁 다시 읽기

 

news letter No.813 2024/1/16

 

 

 

1920827, 경북 영주군 문정리에 사는 박성녀라는 부인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는 그 전 해에 시모상을 당하여 지극정성으로 아침저녁 상식(上食)을 올려 왔는데 남편이 예수를 믿으면서 상식을 금지하였다. 상식을 그만두는 것은 부모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하면서 상식을 계속 올려야 한다고 호소하였지만 남편의 태도는 확고하였다. 그러자 부인은 남편의 불효한 죄과를 자신의 목숨으로 대속(代贖)’하겠다고 작정한 뒤, 시모의 신주를 뒷동산에 매안하고 물속으로 몸을 던졌던 것이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으며 동아일보는 특별 연재의 형식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다루었다. 한국교회사 연구자들도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를 다룰 때 이 사건을 종종 언급해 왔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논쟁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건 직후 동아일보는 기독교계와 유교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사의 견해를 차례로 소개한 뒤, 마지막으로 신문사의 입장을 사설을 통해 밝혔다. 첫 번째 주자는 당시 사회적 저명인사이자 YMCA 총무였던 월남 이상재(1850-1927)였다. “종교상에도 조선혼을 물실(勿失)하라”(1920.9.1.)라는 기사 제목에서 잘 나타나듯이 월남은 조상제사를 조선혼과 관련시켰다. 그가 볼 때 부모의 혼령을 모신 신주를 설치하고 그 앞에서 절하는 것은 조선인의 풍습이자 조선인의 정신에 부합하는 행위다. 따라서 신주를 한갓 우상으로 여기고 그 앞에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서양인은 신주 대신 사진을 활용하고 무덤에서도 절을 하는 대신 모자를 벗는 것에 그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인의 풍속일 따름이다. 조선인이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 요컨대 부모에 대한 사모의 감정과 효성의 표현으로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의 부모 공경의 정신에도 잘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부모의 신주를 놓고 길흉화복을 비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는 단서를 붙인다.

 

두 번째 주자는 감리교 목사 양주삼(1879-1950?)이었다. 당시 감리교의 지도급 인사로서 종교(宗橋)교회를 맡고 있던 그는 이상재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먼저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이상재 선생이 조상에게 제사하지 않는 것은 조선혼을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고 하면서, 만일 사실이라면 이 경우는 지자천려 필유일실(智者千慮 必有一失,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의 실수는 있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월남 선생에게 예를 갖추면서도 조상제사는 조선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에 의하면 조상제사는 조선 정신과는 관련이 없고 다만 과학지식이 일천하고 도덕관념이 유치할 때 등장한 일종의 미신적 풍속이자 의식적(儀式的) 도덕일 뿐이다. 더구나 조상제사는 지나치게 형식화되어 있어 사회경제적으로도 많은 폐해를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조선 사회는 유일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과학 지식의 보급을 통해 미신의 일종인 조상제사를 타파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조상제사가 점차로 사라지고 있음을 통계를 통해 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기독교 문명론에 근거한 제사폐지론 내지 제사소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등장한 주자는 운양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이다. 개항 이후 정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원로 김윤식(당시 85)은 유교계를 대변하여 발언하였다. 그는 자신의 집 앞에 교회당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나는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라고 말하면 모두 돌아간다고 한다. 운양은 양주삼의 제사폐지론을 비판하면서 조상제사는 개벽 이래로 시작된 정()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예수교인도 진정 부모를 공경한다면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돌아간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고 추앙하려고 할 때 제사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의례가 지닌 힘과 효과에 주목한 것이다.

 

한편 이상재는 조상제사에 대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양주삼 목사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의 문의가 뒤따르자 자신의 입장을 재정리하여 발표하였다.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매우 적합하다는 자신의 말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매우 적합하다는 의미를 조금 복잡하게 표현한 것인데 독자들이 오해했다는 것이다. 한발 물러난 듯한 인상이 든다. 그렇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제사 문제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교인이니까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타인에게 간섭하거나 제사를 지낸다고 교인을 출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제사 문제에 관한 한 신앙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제사 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소개한 뒤 동아일보제사 문제를 재론하노라”(1920.9.24-25)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자사의 입장을 밝혔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유래와 정신의 측면에서 조선의 조상제사는 우상숭배나 다신 신앙이 아니며 유일신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다. 공자도 천()을 신앙하는 일신교인이었다. 제사의 본의는 조상의 영혼을 위안하고 조상이 존재하였던 사실을 잊지 아니하는 기념적 관념에서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조선의 제사가 기독교인들에 의해 우상숭배나 미신처럼 오인되고 있는 것은 선교사들의 선입견과 초기 기독교인의 무지의 소산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제사를 우상숭배로 간주하는 것도 잘못이고, 형식 위주의 제사도 제사의 본의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극복되어야 한다.

 

얼핏 보면 이 사설은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간주하는 당시 주류 개신교의 제사관을 비판하고 조상제사를 조선의 고유한 민족문화 내지 미풍양속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3.1운동 이후 민족지를 표방하면서 등장한 동아일보의 노선에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설에서 구사되는 핵심 용어나 개념을 보면 다른 읽기가 가능하다. 주지하다시피 유일신 신앙과 다신 신앙, 일신교인으로서의 공자, 우상숭배와 미신 등과 같은 개념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문법 속에서 작동하는 것들이다. 특히 우상숭배와 미신, 형식 위주의 제사, ‘기념적 관념(기념설)’ 등의 개념은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가 가톨릭의 미사나 성인공경, 성상공경을 공격하기 위해 활용한 핵심적인 무기였다. 이는 세속 언론을 표방한 일간지의 언어 속에 개신교의 문법이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서 개항 이후 한국사회 연구와 관련하여 개신교 세속(the Protestant secular)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주요 저서로 《한국 개신교의 타자인식》,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 《한국종교학: 성찰과 전망》(공저), 《세속주의를 묻는다: 종교학적 읽기》(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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