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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10호- 동지, 새로운 시간의 시작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12. 26. 18:41

동지, 새로운 시간의 시작

 

news letter No.810 2023/12/26

 

 

한 해가 저물어 간다. 2023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하지만 새해는 이미 시작되었다. 동지가 지났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인 1222일이 동지로, 동지가 지난 지 이미 4일째이다.

 

동지는 흔히 팥죽을 먹는 날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말로 아세(亞歲), 작은 설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동지는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때이다. 동지를 기점으로, 밤이 가장 길었다가 낮의 길이가 점차로 늘어난다.

 

이러한 동지의 시간을 주역의 괘로 표시하면 복()괘가 된다. 복괘(그림참조)는 초효만 양효이고, 나머지 다섯 효는 모두 음효로 구성된 괘이다. 동지를 복괘로 나타낸다는 것은, 음의 기운이 가득 찬 가운데 양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는 시점이 동지라는 의미이다.

 

동지의 이러한 시간적 성격을 보여주는 말과 행위의 사례는 많다.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이 든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동지가 지나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푸성귀조차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함을 말하는 속담으로, 동지에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도, 동지팥죽을 설날 떡국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음식으로 여기는 것으로, 동짓날의 시간적 성격을 확인해 준다.

 

새해의 달력을 준비하는 것은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다른 날이 아닌 동짓날에 달력을 진상해서 나눈 것은 동지가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지에 행해지는 점의 하나로 팥죽점이 있다. 말 그대로 팥죽을 이용해 치는 점인데, 그 방식이 새해 처음 치는 점의 성격을 보인다. 팥죽을 달별로 열두 그릇을 떠 놓고, 각 달에 해당하는 팥죽에 새알심이 얼마나 담겼는가 또는 팥죽의 상태가 어떤가를 보고 다음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이는 마치 신년 초에 그해 농사의 풍흉 여부를 점치는 것과 같다. 앞으로 다가올 12달의 날씨와 농사에 대한 점은 새해의 처음에나 칠 수 있는 점이다. 그러한 점은 한 해의 처음이 아니면 무의미하다. 이런 세시행위는 동지의 시간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 준다.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 정월 대보름에 같은 성격의 점이 행해진다는 점이다. 달불이[月滋]가 그것이다. 정월 14일에 콩 12개에 12달을 표시해서 수수깡에 넣어 우물 속에 넣어 둔다. 그리고 15일에 그것을 꺼내 콩알이 붇고 안 붇는 것을 보아 그 달의 수해(水害) 여부 및 한 해 농사에 대해 점친다. 이처럼 대보름의 달불이와 동일한 성격의 점이 동지에도 행해진다는 것은, 대보름과 마찬가지로 동지도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초 대보름과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세시행위로 다음 예를 더 들 수 있다. 동짓날에 일꾼들은 팥죽을 9그릇 먹고 나무도 9짐을 져야 한다고 한다. 이 역시 정초 대보름에도 똑같이 행해지는 세시행위로서, 대보름에도 밥을 9번 먹고 나무도 9, 새끼도 9발을 꽈야 한다고 한다.

 

9번은 가장 많다는 것으로, 절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러한 세시행위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해서 모든 것이 왕성하게 이뤄지고 풍요로워지기를 기원하는 의도에서 행해진다. 역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유의미한 행위이다. 이런 시간적 맥락에서 동지 때 세시행위와 정초 대보름 세시행위의 연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

 

동짓날에 부부간의 방사를 금하는 금기 역시 같은 시간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을 근신하면서 조심스럽게 보내라는 의미로서, 시간의 전환점에 적절한 금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 정초에 삼가고 근신하는 태도와 상통한다.

 

이처럼 동지는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동지에 다름 아닌 핕죽을 먹는 것도, 팥죽이 붉은색으로 양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양의 기운을 보강함으로써 이전의 음의 시간을 물리치고 새로운 양의 시간의 도래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하여튼 동지가 지난 지금은 이미 새로운 시간이다.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을 품는다는데,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이미 시작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일이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문화유산학과 교수
논문으로 <일제의 무속 규제정책과 무속의 변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무속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비교: 접신(接神)체험과 신(神)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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