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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11호-나는 이 혼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4. 1. 2. 18:45

나는 이 혼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news letter No.811 2024/1/2

 

 

 

 

 

연말과 새해를 맞이하는 이때쯤이면 우리는 누구나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려 한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올해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해도 드물 것 같다. 3년에 걸친 코로나 질병은 잦아들었지만, 사회 구석구석에서 알게 모르게 큰 변화가 일어났고 뉴노멀이란 말이 일상화되어 있다. 아직도 정상화되지 못한, 무엇인가 다른 새로운 생활 패턴을 향하려는 우리 주변의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우리는 전례 없는 불안정 속에 처해 있다. 가까이는 국내 정치의 혼란과 경제적 불안정, 그리고 격화된 북한과의 대결 상황은 더욱 우리를 불안으로 내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2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전쟁의 참상을 우리는 이미 겪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이 지금 겪는 고난을 먼 나라의 전쟁으로 여겨 그대로 묵과한다. 참으로 혼란스럽고 세상을 보는 나 자신의 인식 틀을 새삼 돌이켜 보게 된다. 뉴스미디어나 유튜버들의 현지 리포트와 해설은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내가 접하는 이 매체들의 내용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정도로 편파적인 시각에 빠져 있는지 의심이 든다. 연말을 맞아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나는 오히려 혼란과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이에서 오는 심약(心弱)함인지 아니면 회한(悔恨)인지? 혹 나는 종교를 연구한다는 초세속적 입장을 표방하며 현실 기피의 일탈을 도모한 것은 아닌지?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 것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다. 하마스 정파 집단의 이스라엘 양민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납치로 시작된 사건이지만 두 달째로 접어든 이 분쟁은 한 종족의 절멸까지 예상할 정도로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가자지구 주민에 대한 폭격은 심지어 새로운 홀로코스트를 목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일으킬 정도이다. 모든 서구 뉴스미디어가 이 사태를 상세히 보도하며 온갖 문제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나의 눈길을 끄는 사건이 있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재연된 반유대주의(Anti-semitism)’ 논쟁이다. 반유대주의는 지난 세기 해묵은, 그래서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인종주의적 발언이다. 그런데 이 인종주의적 구호를 바로 그 피해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상기시키며 팔레스타인 친화적인 언표나 행동은 곧바로 반유대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친 팔레스타인 구호는 하버드 대학교를 위시한 소위 미국 명문 대학들, 펜실베니아 대학교(U. Penn), 메사추세츠 공대(MIT),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에서 발생하였다. 급기야 각 대학 총장들은 의회 청문회에 참석하여 이 반유대주의구호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답변해야 했다. 특히 하버드 대학교의 클로딘 게이(Claudine Gay) 총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 이 대학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이란 입지는 퇴색되고 있으며 아직 그를 지지하는 흑인 그룹 교수들의 항변이 뒤따르고 있다.

 

그보다도 대학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란 헌법적 원칙은 고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의 입지를 간신히 지탱시키고 있다. 가자-팔레스타인 지지 구호와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공격은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캠퍼스 내의 표현의 자유와 상충되고 있다. 여기서 반유대주의 및 친 팔레스타인태도와 표현의 자유가 어떤 정치적 맥락을 지니는 것인지 숙고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흑인 여성 총장이 의회에서 보여준 언론자유에 대한 유연한 태도는 반유대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계속 압박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의 다른 글들마저 조사대상으로 올려놓고 있다. 앞서 언급된 대학들의 총장들이나 관계 인사들도 한결같이 대학 재단의 압력을 받고 있다. 대학 운영을 위한 기부재단이 상당수의 유대인 이사들로 구성된 대학들이 겪는 반유대주의의 압력이다.

 

이 사건의 추이를 목도하며 에드워드 사이드(E. Said, 1935-2003)의 경우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아랍 세계와 무슬림에 대한 서구 학계의 태도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 사이드라 생각한다. 잘 알려진 그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의 존재론적/인식론적인 차별성에 근거한 사고방식(style of thought)을 파헤친 저술이다. 그는 이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한 학술적 탐색을 통해 동양이란 이미지와 오리엔트타자가 서양인들에 의해 출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거주하다 미국으로 이주한 전형적인 팔레스타인인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은 사변적 이론을 통해 산출된 것이 아닌 그의 태생적 환경, 자신이 태어난 팔레스타인을 떠나야 했고 이후 평생을 동서 편력을 통해 자신을 돌이켜 보는 자화상적 이론서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국민회의(Palestinian National Council) 구성원이었고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의 정치적 자문 역을 담당하며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추구했다. 그는 항시 서구에 대해 팔레스타인과 아랍 세계를 대변하였으나 이스라엘에 대한 비평 못지않게 자신의 문화권인 이슬람의 체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히려 아랍은 자신들의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항의하였다.

 

사이드는 문화와 제국주의(Culture and Imperialism, 1993)평화와 평화에 대한 불만(Peace and Its Discontents: Essays on Palestine in Middle East Peace Process, 1996)혹은 지성인의 대변(Representation of the intellectuals, 2023)등의 여러 저술에서 지성인이라면 서구의 제국주의적 양태를 통찰할 것을 주장하고 몸소 구체적인 정치참여를 시도하였다. 그는 뛰어난 학문적 업적으로 유럽에서 수많은 초청을 받았으나 동시에 정치참여 활동은 서구인에게는 편견으로 느껴져 초빙 연사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도 잦았다. 학계와 정치 현장을 거리낌 없이 넘나든 그의 입지를 돌이켜 보면 지성인의 현실 참여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오늘 사이드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 종신교수로서 어떤 발언을 했을까?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재삼 사이드를 소환하는 까닭은 그의 이론적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참여 행위에 감복하고 있다. 초세속적 담론이거나 학문 내의 논리는 현장을 떠나서는 자기주장을 할 수가 없다. 자기주장은 그것이 실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한 새해가 밝아올 터이지만 나를 담아주고 나를 밝혀줄 현장의 참여가 절실해진다.

 

 

 

 

 

 

 

 

 

 

 

이민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주요 논문으로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이종교배-왜 불교신학인가>, <불교에서의 인권이란무엇인가?>, <백교회통-교상판석의 근대적 적용> 등이 있고, 저서로 《말로 말을 버린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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