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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선고를 기다리며 미얀마 사람들로부터 배우기

 

 

news letter No.876 2025/4/1

 

 

 

올해 상반기 연구소 심포지엄 발표 주제를 국경을 넘은 불교. 미얀마인들의 노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정한 후 인천 부평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부평역에 도착하면 미얀마 핸드폰 가게들이 여럿 보인다. 5번 출구 방면 미얀마 음식점들과 로컬 슈퍼가 있는 곳을 미얀마 거리라고 부른다. 아직 현지조사의 초기 단계이지만 인상적인 만남들이 있었다.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는 미얀마 난민이자 민주화운동 활동가가 전하는 긴 이야기를 들었고, 미얀마불교전법사원의 승려와 노동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 6층에 자리 잡은 사원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있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현관문 옆 복도 계단에 놓인 수 켤레의 신발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발 주인은 공장에서 일이 끊기고 다음 일자리를 찾기 전에 잠깐 절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사원 옆 화장실에서 몸을 씻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내가 방문한 장소는 불교사원임과 동시에 노동자들을 위한 거주 공간이었다. 현관문을 열고서 양말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연락 없이 무턱대고 방문한 첫날, 온화한 표정의 스님이 불단 앞에 앉아서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님은 즉흥적인 면담에 응해 주었고, 미얀마어를 전혀 모르는 나와 한국어에 서툰 그곳 거주자들을 위해서 통역을 자처해 주었다. 스님은 사원에 있는 사람들을 신도들이란 말 대신 노동자들이라고 불렀다. 이곳에 거주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은 전부 미얀마 노동자들로, 새로운 공장을 찾기 전 현재 절에서 15-20명 정도 산다고 한다. 일요일 법회 이외 평일 아침마다 스님은 노동자들과 기도를 드린다.

 

 

주지 스님은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동포들을 돕고 싶어서 2007년 한국으로 왔다. 불자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나의 질문에 대하여 세 가지로 답변했다. 불교도는 세 가지를 하면 된다. ‘부처님을 따르라, 스님을 존경해라, 그리고 부드러운 말로 얘기하라.’ 나는 그 답변이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해서 마음에 들었다. 외국에서 힘든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동포들을 정신적으로 지탱하는 힘이 담겨서일까? 특히 부드러운 말로 얘기하라는, 어쩌면 평소라면 그다지 특별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는 그 문장이 요즘 머릿속에서 빙 돈다. ‘부드러운 말로 얘기하라.’ 되돌아보니 나는 특히 작년 123일 이후 답답함과 화가 섞여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부드럽게 말하기는커녕 뉴스를 보다가 입에서 탄식과 육두문자가 새어 나오기 일쑤였다. 이 발단의 원인이자 동조 세력인 누군가들에게 격한 말 뭉텅이를 내뱉고, 동시에 내 몸과 마음에도 부드럽게 이야기를 걸지 못했다.

 

 

미얀마연방민주주의승리연합(MFDMC) 대표가 운영하는 부평역 핸드폰 매장을 찾아갔다. 매장 벽에는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20212, 미얀마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2020년 총선에서 수치가 이끄는 NLD의 승리가 부정선거였고, 전국을 안정화한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또다시, 나라의 암흑기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미얀마는 1962년 이후 2021년까지 크게 3번의 쿠데타를 겪어 왔다. 민주화로 이행되는 과정이라고 여겼던 2021년에 일어난 군사 반란 후 지금까지 내전 중인 미얀마인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금요일에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다. 그러나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 파국적 상황에서 이들은 국내와 외국에서 지치지 않고 고국을 재건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재한 미얀마인들은 매주 한국에서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미얀마로 민주화를 위한 지원금을 보낸다. 한국에서 미얀마인들이 고국으로 보내는 돈, 그리고 언론을 통한 정치 실상의 고발은 미얀마의 민주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작년 한국의 계엄령 선포 후 미얀마 32개 단체는 한국 시민을 지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 여전히 소중한 지표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고.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한국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으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같은 땅에 살고 있는 미얀마인들은 대체 몇 년 동안 더 심각한 상황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건가? 독재를 반대하는 무고한 시민들과 승려들이 살해되고, 군부에 의한 화재와 폭파 사건이 벌어지는 고국을 보면서 얼마나 울분이 터질까? 군부가 법을 개정하고 국회를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한국처럼 국회 절차와 헌법재판을 통한 심판이라는 희망도 없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모멸적인 현실에 직면해서 미래를 알 수 없는 험난한 길 위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행동하는 미얀마인들에게 엄지척, 아니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린다.

 

고난의 동지를 만나서일까? 부평을 다녀오면 내 마음은 전보다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져 있다. 훨씬 더 승산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오래 이어가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 투지력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는 재한 미얀마 민주화 운동 대표는 현재 고국이 처한 참담한 실상을 전달하면서도 굉장히 절제되어 있었다. 스님의 세 번째 가르침처럼, 나라면 가시 돋은 말 덩어리들로 토로했을 심각한 상황을 묘사할 때도 부드럽게이야기했다. 가장 세게 말할 때 생쇼’, 즉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유명한 스님이라도 반대하면 투옥되고 살해당한다며 군부독재 정권이 스님에게 하는 보시는 생쇼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었던 부평 사람들은 미얀마가 민주화를 이룩하고 경제적으로 발전한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미얀마도 빨리 한국처럼 돼야 한다는 말도 여러 번 했다. 한국과 미얀마 두 나라에 조속히 정치적 안정이 찾아들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이면서도 나는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진다. “사실 미얀마인들로부터 배우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최정화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현재 노동, 이주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재한 미얀마인들을 면담하고 있다. 작년에 출간한 공저로 『방황하는 종교성과 국민문화: 근대화하는 일본과 독일 사회의 신화와 종교(彷徨する宗教性と国民諸文化: 近代化する日独社会における神話・宗教の諸相)』(일본어), 『세속주의를 묻는다: 종교학적 읽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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