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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황선명 선생님의 추모집’에 수록할 논문들을 읽고 나서
news letter No.895 2025/8/12
2025년 1학기를 마치며 시간에 쫓겨 밀렸던 학업을 마무리하고 약간의 여유를 갖던 중, 7월 말에 고(故) 황선명 선생님의 여러 논문들을 읽고 검토할 뜻밖의 기회를 얻었다. 필자가 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했던 것은 2-3년 전에 ‘협의의 정감록’으로 분류되는 감결류 문헌들을 읽고 공부할 때1)였다. 다만, 그때 선생님의 ‘십승지(十勝地)’ 관련 글2)을 접한 이후로는 부끄럽게도 황선명 선생님에 대해 과문했던 처지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종교에 관심이 있는 후학으로서 선생님의 문제의식과 다양한 논의점들을 글을 통해 소통하며 즐거운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내가 읽은 글들은 현재 진행 중인 ‘황선명 선생님의 추모집’에 수록될 선생님의 대표적 논문들이다. 1979년 ‘민중운동과 종교’에 대한 논의3)부터 2007년 ‘간방(艮方)’에 대한 논의4)까지 13편의 글들을 검토했다. 검토한 13편은 선생님의 글 중에서 3가지 주제, 종교학 이론(4편), 한국종교(5편), 민중종교와 신종교(4편)으로 선별된 것이었다. 읽고 나서 처음 머릿속에 남았던 전반적인 인상은 선생님의 문투와 글쓰기 방식이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30대인 필자가 느끼는 일종의 세대 차이일텐데, 한국의 종교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선행연구도 제대로 없었던 그 당시에 선생님께서 치열하게 고민하셨던 흔적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인바’, ‘-에 있어서’, ‘보다’, ‘내지’, ‘-하겠다’, ‘어느 모로 보나’, ‘-일 수밖에 없다’ 등의 표현들을 자주 쓰셨다. 이는 서구와 비서구, 제도종교와 민중종교(운동)의 차이를 주목하고, 한국사의 맥락에서 형성된 종교문화의 요소들을 연결할 때 주로 쓰신 표현들이다. 그 당시에 비해 지금은 각주 및 참고문헌을 꼼꼼하게 달아야 하는 것이나 서론-본론-결론의 구성을 지키는 것 등 글쓰기 방식이 꽤 변화된 부분도 있겠지만, 이러한 표현들은 거시적인 시각에서 논의를 전개할 때 취하게 되는 글쓰기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증이 탄탄하도록 주제 범위를 가능한 한 좁게 잡는 경향이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또한, 선생님께서 연관된 주제들을 더 커다란 문제의식으로 엮어서 발전시키신 점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주제에 따라 선별된 글들을 읽었기 때문에 든 인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특정 주제를 다루더라도 지금의 논의가 더 큰 맥락 속에서 어떻게 위치되는지를 놓치기 쉬운데, ‘한국의 종교문화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한국인의 종교심성의 특징을 어떻게 잡아낼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관련 내용들을 연결하여 논의하셨다. 19세기 이후 한국의 신종교가 형성될 수 있었던 자연지리적 조건과 사회문화적 요소(주역, 선사상, 정감록 비결류, 풍수지리, 조상숭배, 주자학적 질서의 강도 ….) 등을 각 논문을 통해 논의하고, 이를 전체적으로 묶어 내셨다는 점이 놀라웠다. 즉, 좁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자신의 주된 물음이 무엇인가, 문제의식이 어떠한가를 놓치지 않고 전체 구성의 한 부분으로서 글들을 써내려 간 연구자의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생각된다.
후학으로서 큰 배움을 얻었다. 종교사학자로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는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한국의 종교문화사 차원에서 바라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점, 종교전통별 교단사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회문화적 요건과 자연지리적 요건 또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 등이다. 특히 시대사에 대한 인식, 적어도 한국의 근대를 다루고자 한다면 조선 중·후기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적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은 큰 숙제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20세기 동학 교단인 시천교에 대한 연구5)를 진행했을 때 한국사적 흐름과 그 속에 펼쳐진 한국의 종교문화의 지형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음을 실감한다.
한편, 선생님의 연구 작업을 어떻게 이어받아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거시적인 시각과 함께 구체적인 역사상을 진지하게 탐구하여 그려내야 할 것이고, 문제의식을 탄탄히 뒷받침하기 위해 그동안 축적된 선행연구에 대한 검토는 물론일 것이다. 다학문 간 연구, 융복합 연구가 확대되는 흐름 속에 있지만, 한국의 종교문화사, 한국인의 종교심성을 분석해 낼 방법론을 고민하고 발전시키는 일 또한 한국종교 연구자로서 마땅히 계승해야 할 문제의식이며, 후학에게 남겨주신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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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원섭, 「『정감록』에 나타난 피장(避藏)의 논리 고찰」, 『종교학연구』 41 (2023): 51-72쪽.
2) 황선명, 「십승지 고(考)」, 『종교와 문화』 5 (1999): 157-171쪽.
3) 황선명, 「민중운동과 종교 - 종교운동의 본질에 관한 고찰 -」, 『종교학연구』 2 (1979): 45-70쪽.
4) 황선명, 「간방고(艮方考)」, 『신종교연구』 17 (2007): 99-137쪽.
5) 이원섭, 「시천교인의 교단 활동과 수도 생활 연구 – 1906~1924년 시천교의 창립과 교단 분열의 역사를 중심으로 -」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4).
이원섭_
서울대 종교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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