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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단체(救世團體)’에 대한 단상

 

news letter No.896 2025/8/19

 

 

 

최근에 몇몇 학생들과 함께 두아라(Duara)주권과 순수성: 만주국과 동아시아 근대1)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몇 해 전 종교와 노년공동연구 결과물을 작성하기 위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제도 관련 자료들을 찾을 때, 본서의 제32)에 언급된 구세단체(redemptive societies)에 대한 내용을 접했는데, 찾던 내용과는 전혀 맥락이 달랐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독서 모임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라서이끄는 것 같아도 실은 이끌린다.번역서를 읽다가 조금이라도 석연치 않으면 원서와 대조해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면서 읽었는데, 구세단체의 면모는 예전보다 선명하게 이해되었지만 두아라가 왜 구세(redemptive)’라는 용어를 사용했는지는 여전히 석연치 않았다.

 

두아라가 처음 제시했다고 하는 구세단체에 대한 연구가 21세기에 들어 비교적 활발해지면서 국제적인 연구 프로젝트와 그에 따른 심포지움이 개최되었고, 그 성과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두아라는 위의 해당 글에서 도덕회(道德會), 도원(道院)과 그 복지 부서였던 홍만자회(紅卍字會), 동선사(同善社), 재리교(在理敎), 1915년 사천(四川)에서 처음 오선사(吳善社)로 조직되었던 세계종교대동회(世界宗敎大同會), 일관도(一貫道) 등을 구세단체의 유명한 사례로 들었을 뿐, 어떤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들이 구세단체라는 범주에 속하는지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단체들이 중국의 역사적인 종파(sect) 전통과 삼교합일과 같은 혼합주의의 전통으로부터 나왔으며, 특히 16~17세기 혼합주의적 전통에서 강조하던 보편주의와 도덕적 자기 변혁이라는 사명을 계승하는 동시에, 종파적 전통, 민간의 신들, 점술, 영판(靈板, planchette), 영필(靈筆, spirit-writing) 등의 실천들과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들 단체는 민간 문화 및 지역 사회의 관심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부는 농촌 지역의 주변부에서 비밀결사와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구세단체에 대한 두아라의 핵심적 논의는 시ㆍ공간적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시간적으로 보자면 이 단체들은 대개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1920년대에 걸쳐 창립, 확장되었는데, 이들은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서구문명을 보완, 수정하기 위하여 동양의 정신문명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두아라는 이 단체들이 구상한 결과물은 기존의 유불도 삼교뿐 아니라 이슬람과 기독교까지를 아우르는 종교적 보편주의의 형태를 띠었으며, 새로운 지리적 인식과 진보적 역사관,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점을 적극 반영하였다고 지적한다. 둘째, 공간적인 측면을 보자면, 만국도덕회(萬國道德會)와 같은 단체들이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1932~1945) 전역 및 일제 점령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번성하였다는3) 사실에 착목했던 두아라는 중국 구세단체들의 문명 담론이 아시아 문화를 하나의 문명 프로젝트로 통합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주요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기능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공통된 담론이야말로 중국의 구세단체들과 만주 및 화북ㆍ화중 지역의 일본 괴뢰 정권들 사이의 매우 모호하고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 배경이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redemptive societies’를 처음부터 구세단체라고 한 것은 주권과 순수성에서 두아라 자신이 ‘redemptive’라는 단어에 대하여 ‘jiushi/kyūsei(救世)’라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아라가 왜 ‘redemptive’라는 표현을 사용했는가 하는 것이다. David Palmer‘salvationist religion’구도종교(救度宗教)’, ‘redemptive societies’라 부르는 특정 물결의 집단은 구세단체(救世團體)’로 표현하여 양자를 구분하지만, 주지하듯이 ‘redemption’이란 대가나 몸값을 지불하여 해방되는 것을 말하며, ‘salvation’과 매우 밀접하다. 짐작컨대 두아라는 특정 종교의 신학적 함의가 강한 ‘soteriological’보다는 ‘redemptive’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헌장과 규약을 갖추고, 강한 현세 지향성과 세속 구원의 수사를 표방하며 조직되었던 이들 단체들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아라는 이들 단체의 자기수양(修身)은 자선 활동에서부터 도덕적ㆍ영적 자기성찰의 습관을 기르는 것, 엄격한 규율 준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고 하면서, 대부분의 구세단체는 엄격한 약물ㆍ육식ㆍ음주 금지 서약’, ‘때로는 가족과의 단절에 가까운 관계’, ‘도덕 행위와 몸가짐에 관한 세세한 규범이라는 세 가지를 결합했다고 지적하였다. 두아라가 인용한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들 단체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Q: 도원(道院)은 무엇인가요?

A: 내면과 외면을 동시에 수양하는 것입니다. 내면은 명상을 통해, 외면은 자선을 통해 수양합니다.

Q: 도원의 도(道)는 무엇인가요?

A: 만유의 근원입니다. 하나의 특정 종교가 아니라 선(善)을 밝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도에는 이름이 없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존경을 표하기 위해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섯 종교의 창시자들을 존경합니다. 또한 자연과 도덕을 존중하며, 자선을 통해 자신을 수양합니다.4)

 

이러한 단체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이후 중국 공산당에 의하여 회도문(會道門)이라 불리면서 이단적 종파 혹은 사교(邪敎) 집단과 비슷하게 취급되어 왔던 상황에서, 두아라는 이 단체들의 본래적인 면모, 즉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redemptive’라는 용어를 채택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구세(救世)란 결국 이 세상(사람들)을 구제, 구원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 세상(사람들)은 근본적인 결핍이나 곤경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구세적이지 않은 종교는 없으며, 모든 종교적 집단은 구세적인 성격을 띤다. 결국 두아라는 ‘redemptive’라는 표현을 통하여 그가 나열했던 단체들이 본래 종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 셈이며, 이들의 활동은 내적인 수양을 통한 자기변혁이든 혹은 외적인 자선활동이든, 근원적이고 우주적인 진리 혹은 선함에 맞닿아 있다고 본 것이다. 21세기 들어 구세단체에 주목했던 연구자들이 대체로 합의하는 사항은 구세단체를 종교 단체, 혹은 신종교 운동(NRMs)’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니, 이들은 20세기 중ㆍ후반까지 학계에 드리워졌던 편견의 장막을 거두고서, 이제야 두아라의 본래적 통찰의 자리로 돌아온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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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asenjit Duara의 Sovereignty and Authenticity: Manchukuo and the East Asian Modern (Lanham, MD: Rowman & Littlefield, 2003)라는 책의 한국어 번역본(한석정 역, 나남, 2008)이다. 역자는 ‘authenticity’를 ‘순수성’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책에서 ‘authenticity’는 특정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본질이나 진정성, 고유성 등을 주장하는 담론의 허구성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된 용어로 ‘진정성’이라는 용어가 ‘순수성’보다 적절하며, 다만 일부 맥락에서는 ‘순수성’이라는 용어가 더 잘 이해된다고 느꼈다.

 

2) 이 책의 모두에 실린 <감사의 글>에는 제3장의 내용이 “The Discourse of Civilization and Pan-Asianism”(Journal of World History 12, March 2001)라는 제목의 글로 이미 발표되었던 것임을 밝히고 있다. 본서의 3장과 비교해 보면, 주요 논지는 같다고 해도 문장상으로는 보완이 꽤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3) 이들 단체나 신도 수에 대한 통계는 다양하게 남아있으나 편차가 커서 신뢰하기 어렵다. 邵雍의 《中國會道門》(上海, 人民出版社, 1997)에 의하면, 1918년 湖南의 한 곳에서만 同善社 신도수가 2만명이 넘었다거나, 1938년 河南, 山東, 安徽省의 신도수를 합하면 100만명이었다거나, 또 1936~37년 만주국에서만 道德會의 신도 수가 무려 800만이 넘었다는 등의 기록이 있으나, 일본의 조사인지, 중국의 조사인지에 따라 편차는 매우 심할 것이라고 두아라는 말한다.

 

4) 이는 1930년 이전의 어느 시점에 대표적인 구세단체 중 하나인 道院의 지도자와 일본 조사관 스에미쓰 다카요시(末光高義)가 나눈 인터뷰에서 요약된 것이라고 한다.

 

 

 

 

이연승_
서울대학교 교수
논문으로〈서구의 유교종교론〉, 〈이병헌의 유교론: 비미신적인 신묘한 종교〉, 저서로 《동아시아의 희생제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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