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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주의와 민주주의
news letter No.921 2026/2/10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네 글자로 표현된다. 반면에 ‘천황’이라는 존재는 일본의 제국주의나 우경화 현상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주로 등장한다. 그런데 세계사적으로 근대화와 제국주의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일본의 근대화와 천황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의 TV나 매스컴에서는 ‘천황가 이야기’가 매일 보도되고 있다. 그만큼 천황이라는 존재가 일본인들의 에토스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천황’이라는 존재는 매우 낯설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시작된다. 반면에 일본의 헌법 제1장은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이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 국민의 총의(総意)에 기초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천황주의’로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의 헌법에서 ‘천황’이라는 말을 찾을 수 없듯이 일본의 헌법에서는 ‘민주’라는 말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서문」은 ‘朕(짐)’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짐은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하여… 제국의회의 의결을 거친 제국 헌법의 개정을 재가하고, 여기에 이것을 공표한다.” 헌법의 첫머리에 ‘천황’이나 ‘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에 걸쳐 한국에서 전개된 촛불집회의 슬로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게 나라냐?”였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였다. “이게 나라냐?”는 국가의 형태, 일본식으로 말하면 ‘국체(國體)’를 묻는 물음이다. 그리고 헌법 1조는 그 국체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라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정치의 현실은 헌법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자학적으로 말하면 헌법 1조라는 ‘理’(이념)와 한국 정치라는 ‘氣’(현실)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이 「헌법 1조」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반면에 일본 국민은 헌법 1조에 명시된 천황이라는 존재로부터 모종의 ‘안도감’을 얻는 것 같다. 천황가의 단란한 모습이 국민의 롤모델이 되고, 그 모델을 본받음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헌법 1조가 저항의 상징이라면, 일본에서는 헌법 1조가 통합의 상징이다. 저항의 주체는 ‘시민’이고, 통합의 중심은 ‘천황’이다.
일본의 천황이 통합의 상징일 수 있는 것은, 그 역할이 유교의 군주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군주는 백성을 자식처럼[赤子]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토착화했다고 평가받는 퇴계 이황(16세기)은 어린 선조 임금에게 “하늘은 군주는 자식처럼 사랑하고, 군주는 그 사랑을 백성에게 보답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하였다(「무진육조소」). 마찬가지로 일본의 천황 역시 국민을 자애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일본 국민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천황으로부터 모종의 위안과 평화를 얻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근대 일본의 천황제는 ‘유교제(儒敎制)의 일본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조선 유학, 그중에서도 특히 퇴계학으로부터 빌린 바가 크다(小倉紀蔵, 『朱子学化する日本近代』, 269쪽).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러한 국가 형태를 ‘가족국가’라고 명명하였다(『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한길사, 78쪽). 마루야마 마사오의 뒤를 이은 후지타 쇼조 또한 “(천황은) 온정에 넘치는 최대 최고의 ‘가부장’으로서, 인간 생활의 정서 세계에 내재해서, 일상적인 친밀감을 가지고서 군림한다.”고 하였다(『천황제 국가의 지배 원리』, 논형, 36쪽).
오구라 기조에 의하면, 메이지 시대의 유학자이자 메이지 천황의 시강(侍講)이었던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는 “천황에 봉사하는 데에 (…) 국민의 모든 도덕의 근원이 있다.”라고 하면서, “천황 중심의 유교 국가”를 만들려고 했다(小倉紀蔵, 270~271쪽). 그리고 미타니 타이치로에 의하면, 「교육칙어」의 원형을 만든 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 ) 역시 도덕의 종교적, 철학적 기초를 배제하고, 그것의 본원을 황조황종(皇祖皇宗)으로부터 찾았다(미타니 타이치로, 『일본의 근대는 무엇인가』, 268쪽). 이러한 도덕 개념은 유교적 도덕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서구적 도덕도 아니다. 오구라 기조의 표현을 원용하면 ‘신유합일적(神儒合一的)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小倉紀蔵, 167쪽).
이것은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천황에 의한 도덕의 독점’이자 ‘도덕의 세속화’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근대는 이러한 도덕의 세속화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역사였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동학은 유교의 세속화 경향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도덕’ 개념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天’을 인간 내면에서 발견하여, 유교적 ‘민본주의’에서 동학적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꾀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관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그 역할을 그리스도교가 대신하였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신’에 의해 뒷받침된 ‘초월적 도덕’으로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였다.
반면에 천황제 국가에서는 천황을 견제할 수 있는 ‘초월적 도덕’은 부재하다. 천황이 초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과 일본은 모두 ‘도덕국가’를 지향했지만, 그 도덕의 성격은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도덕은 혁명을 ‘지향’하지만 일본의 도덕은 혁명을 ‘지양’하기 때문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천황 관념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적어도 사상적으로 보면 일본의 근대는 ‘혁명 없는 근대’이자 ‘전통복고의 근대’였다. 이것은 중국이나 한국과 비교하면 정반대 방향의 근대화이다. ‘왕정’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복고’하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격화된 천황제’로 근대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한편 존재론적으로 보면 천황은 ‘무’와 같은 존재이다. 하나의 ‘상징적 존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식론적으로 보면 ‘신성한 물 자체’이다. 일반 국민은 알 수도 없는 영역이고, 접근 가능하지도 않은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보통의 인간과는 존재 방식이 다르고, 그래서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데 헌법 제1장이 말해주듯이, 일본 국민의 정점에는 천황이 있다. 따라서 일본 국민 역시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이른바 ‘전쟁책임’ 문제에 대해서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탈아입구”라는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화(유교화)이기도 하고, 일본화(천황제)이기도 하며, 서구화(입헌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의 주자학도 아니고, 원래의 신도(神道)도 아니며, 서구식 입헌군주제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융합된 것이 ‘일본의 근대’이고, 그것들을 통합시키는 것이 ‘근대식 천황제’이다. 그래서 일본의 근대는 ‘천황제 근대’라고 명명할 수 있다.
조성환_
원광대 철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 근대의 탄생》,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한국의 철학자들》, 《K-사상사》,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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