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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파순은 타화자재천에 산다
news letter No.933 2026/5/5
정진에 전념하여 네란자라 강가에서 선정에 든 나에게, 나무치(Namucī, 那牟致, 놓아주지 않는 자)가 동정하는 듯한 말투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여위고 안색이 좋지 못하구려. 죽음이 그대 곁에 와 있소. 그대의 생명은 천 분의 일뿐, 이제 곧 죽게 될 것이오. 살아남으시오. 생명이 있어야 선행도 할 수 있는 법. 청정행을 닦고 불의 신(Aggi/Agni) 앞에 제물을 바치며 공덕을 쌓으시오. 그것이 많은 복을 가져다줄 텐데, 정진해서 무엇하겠소? 정진의 길은 험난하고 가기 어렵고 도달하기 힘든 법이오.”
마라(Māra, 魔羅, 파괴하는 자)가 부처님 곁에 서서 이렇게 말했을 때, 세존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방일한 자의 친족이며 악한 자(pāpima, 파순波旬)여, 그대는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가? 나에게는 아주 작은 공덕도 필요치 않다. 공덕이 필요한 자들에게나 가서 말하라. 나에게는 신념(saddhā)과 용기(vīriya)와 지혜(paññā)가 있다. … 내 마음은 욕망에서 벗어났으니, 이 존재의 청정함을 보라. … 신들을 포함한 세상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 너의 군대를, 구운 흙그릇을 돌로 깨뜨리듯 지혜로 부수어 버리겠다.” … 근심에 싸인 마왕의 겨드랑이에서 비파가 떨어졌고, 낙담한 그 야차(yakkha, 夜叉)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_ 《수타니파타》(Sutta Nipāta) 제3장 ‘대품(Mahāvagga)’, 제2 〈정진경〉(Padhāna Sutta)
보리수 아래 선정에 든 싯다르타 앞에 나타나 그의 정각(正覺)을 방해한 마왕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일설에 따르면 위기를 감지한 그는 세 딸을 보내어 수행자를 유혹하였고, 여의치 않자 군대까지 동원해 압박했으나 끝내 실패하여 물러났다고 한다. 유혹을 물리친 승리자는 그날 밤 자신의 과거생을 모두 기억하고[초저녁의 숙명명(宿命明)], 중생이 업에 따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생사윤회의 원리를 꿰뚫었으며[한밤중의 천안명(天眼明)],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해탈을 이룬 끝에[새벽의 누진명(漏盡明)], 12연기(緣起)와 사성제(四聖諦)를 완전히 깨닫고 성인(聖人)이 되었다.
관능적인 딸들과 악마의 군대[마군(魔軍)] 이야기는 대승불교의 태동 무렵 등장한 《불소행찬(佛所行讚)》에 실린 것이다. 부처의 생애를 전기(傳記)적으로 풀어낸 이 책에는 사실 마왕의 유혹이 하나 더 있다. 제일 먼저 수행자에게 화살을 쏘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일화다. 그러니까 마왕은 공포심과 애욕, 그리고 군사적 권위를 가지고 성인의 탄생을 방해한 것이다. 내게는 이것이 자아의 내면, 타자와 외물 즉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정치사회적 맥락이라는 세 층위에서의 방해로 읽힌다.
강의실에서는 이 일련의 유혹을 예수의 광야 40일과 비유하곤 한다. 사막에서 예수에게 들어온 빵과 도시와 불멸의 유혹은 각각 물질적 욕망과 권력욕 그리고 종교적 카리스마에 대한 욕구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는 본다. 비교하자면 사탄의 유혹이 외재적 신성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외적 대면의 느낌이 강한 데 비해, 마왕의 유혹은 수행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내면적 성찰과 투쟁에 가깝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모두 성인의 각성을 촉진하고 완성한 위대한 유혹이기에. 그리고 이 유혹들이 실은 인간 내면의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는바, 사탄과 마왕은 어쩌면 예수와 부처의 (실은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기에! 그래서 마왕의 방해를 묘사한 수많은 판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영화 《리틀 부다》(Little Buddha,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1993년 작) 속 장면이다. 전투의 끝에서 마군이 쏜 화살이 꽃비가 되어 떨어지자, 마왕은 부처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서로를 응시하다가 사라져간다.
모두의 인용문은 《수타니파타》의 내용이다.(빨리어 원문을 AI의 도움을 받아 번역했다.) 이 경전은 석가모니 사후 구전된 가르침을 집성한 것이기에, 인용된 내용이야말로 부처가 생생히 기억하고 묘사한 유혹의 실체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마왕은 대단한 기술을 부리지 않는다. 다만 죽지 말고, 청정행을 닦아, 공덕을 쌓으라고 말할 뿐이다. 목숨을 저버리지 말고 청정하게 열심히 살아가라는 이 따뜻한 권유가 어째서 유혹인가? 마왕은 또 세 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놓아주지 않는 자 나무치, 파괴하는 자 마라, 악한 자 파순. (야차는 귀신 또는 영적 존재라는 뜻의 일반명사이므로, 마왕에게만 고유한 명칭은 아니다.) 불자들이 이 마왕에게 마라, 파순, 또는 마라파순이라 이름 붙이고, 드물게 나무치라고도 별칭하는 근거가 된다. 그는 대체 누구를 놓아주지 않고, 무엇을 파괴하며, 어째서 악한가?
얼마 전 새삼스럽게 3계(界) 28천(天)을 복습할 기회가 있었다. 불교의 우주관을 이루는 이 세상의 세 가지 차원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 각각 욕망이 지배하는 차원, 욕망은 사라졌으나 형상이 남아 있는 차원, 형상조차 사라진 순수한 정신의 차원이다.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에서 시작되는 천, 즉 하늘나라는 밑에서부터 차례로 6개의 욕계와, 18개의 색계, 그리고 4개의 무색계로 이어진다. 당연히 위로 올라갈수록 과거의 업과 수행의 성취가 높은 이들이 거주한다. 욕계 6천 중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Para-nirmita-vaśavartin-deva), 즉 ‘다른 존재(para, 他)가 만든 것(nirmita, 化)을 마음대로 지배하는(vaśa-vartin, 自在) 자들(deva, 天)’이 사는 곳이다. 한 가지 사실을 더 확인했다. 이곳의 지배자가 바로 마라라는 것. 아, 마왕이 땅속이 아닌 하늘에 살고 있었구나. 그것도 욕계의 최상위층인 타화자재천의 지배자였다니. 새삼스러움에 깜짝 놀랐다.
욕계의 맨 위 제6천은 가장 미묘하고 세련된 욕망을 상징한다. 직접 생산하지 않고 타자의 생산물을 전유하는 타화자재천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쾌락까지 조종하고 지배하며 통제한다. 그러니 놓아주지 않는 자 나무치는 쾌락에 존재를 묶어 두고, 파괴하는 자 마라는 욕망으로 존재를 소모시키며, 악한 자 파순은 수행자의 정진을 빗나가게 만든다. 타화자재천의 지배자 마라파순은 뭇 존재가 지닌 쾌락과 욕망의 가장 정교한 층위에서 이 모든 파국을 빚어내는 힘의 총체이자, 끊임없는 생멸의 순환 속에서 꺼지지 않는 그 욕망들을 가동하고서야 비로소 존속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마라는 이처럼 가장 미묘하고 순수한 욕망의 결정체인 까닭에 일각에서는 그를 까마마라(kāmamāra) 즉 ‘욕망의 마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까마가 무엇인가? 바로 카르마(karma), 업(業)이다. 《카마수트라》(Kāmasūtra)를 흔히 성애의 교본이자 잠자리의 기술로 알지만, 나는 이 책의 뜻이 《업경(業經)》이라는 데에 주목한다. 저자인 바차야나(Vātsyāyana, 3~5세기?)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욕망(Kāma)에만 치우친 삶은 파멸을 부르고, 오직 다르마(Dharma, 도덕)와 아르타(Artha, 성공)가 조화를 이룰 때만 진정한 행복이 온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욕망을 삶의 신성한 일부로 받아들이되, 이를 무질서하게 탐닉하지 말고 도덕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카마수트라》는 업의 굴레 속에서 욕망을 통제하는 방법을 다루는 철학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욕망과 쾌락을 굳이 소멸할 필요가 있을까? 부처님의 취지를 안다. 욕망에 대한 최고의 통제란 그 본질이 ‘텅 비어 있음[무아(無我, anātman), 공(空, śūnyatā)]’을 통찰하고 나서야 얻게 되는 ‘집착하지 않음’ 이른바 ‘욕망으로부터의 탈피[이욕(離欲, virāga)]’로 이룰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욕망과 집착과 번뇌의 불이 꺼진 열반(nirvāṇa)에도 몸이 남는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몸까지 소멸되는 무여열반(無餘涅槃)이 모두 있음을 부처 본인이 몸소 보여주지 않으셨던가. 몸이 있다면 감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또 감각한다면 호오(好惡)의 구별이 없을 수 없는 것. 호젓하게 걷는 봄날의 남산길, 꽃이 어여쁘고 꽃다운 네가 어여쁘고, 청량한 개울 소리에 겹치는 네 음성이 귀를 간지럽히고, 꽃내음에 섞여 오는 너의 숨결이 향긋하다면, 꽃그늘 아래에서 너와 나눈 술맛에 혀끝이 아련하고, 손등에 포개진 네 살갗의 감촉이 사랑스럽다면, 도무지 그것을 어찌 막으랴. 도대체가 막을 이유도 없다. 그 모든 감각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서 찰나의 순간을 누리면 될 일. 아니, 도리어, 찰나에 영원이 있고 영원이 곧 찰나이니, 그저 이 봄 이 길이 귀할 뿐이다. 찰나찰나의 생멸 속에 구원(久遠/救援)이 있다.
따지고 보면 타인의 욕망조차 통제할 수 있다는 그곳이야말로 진실로 욕망을 조복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러니 욕계에서도 최상층에 있을 터. 이곳조차 넘어서야 욕망이 사라진 색계에 들어설 수 있다기에, 부처의 정각을 마지막까지 방해하듯 조력한 이로 타화자재천의 주재자가 선택된 것이다.(또는 그렇기에 마라파순을 타화자재천의 주재자로 앉혔거나.) 마라파순은 깨달음이라는 문턱을 넘기 직전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인 마지막 관문으로서, 부처와 대적한 자 바로 부처의 안티테제(antithesis)다. 부처가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자등명(自燈明)]’ 내면의 길을 찾아간다면, 마라는 ‘타인의 에너지를 즐기며[타화자재(他化自在)]’ 외부의 조건과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다. 하지만 안티테제인 마라가 존재함으로써 싯다르타라는 테제(thesis)는 비로소 부처라는 진테제(synthesis)가 될 수 있었다. 결국 세속적 성취를 완성한 마라파순은 진리의 깨달음을 이룩한 부처의 거울이자 그림자이며, 그의 궁극의 카운터파트(counterpart)인 셈이다. 부처의 성도가 확정된 순간 마라가 비파를 떨어뜨리며 사라진 것은 그가 카운터파트로서의 임무를 완수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치일 테다.
문득 수십 년 전 인상 깊게 읽은 엘리아데의 글이 떠오른다. “…명상에 돌입하기 전에 샤카무니는 마라Māra, 즉 ‘죽음의 신’의 공격을 받았다. 이 위대한 신은 임박한 구원의 발견이 탄생, 죽음 그리고 재생의 영원한 순환을 정지시킴으로써 자신의 왕국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이다. … 그러나 죽음인 마라는 또한 애욕Kāma, 사랑, 종국적으로는 생명의 정신이기도 하다.”(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최종성·김재현 옮김, 《세계종교사상사2》, 이학사, 2005, 106-107쪽.) 그리고 그 옆에 써 두었던 나의 메모―“마라는 윤회를 상징한다. 윤회는 무한한 반복이다. 마라는 죽음의 신이지만, 그는 죽음으로써 그리고 되-삶으로써 ‘재생의 영원한 순환’으로 규정된다.”
엘리아데의 저 글을 처음 읽었던 시절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불환(不還), 아나함(阿那含, anāgāmī)] 자신이 있었더랬다. 봄날의 남산길을 걸으며 이제, 나는 한 번은 다시 태어나도[일래(一來), 사다함(斯陀含, sakadāgāmī)] 좋겠다.
민순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박사학위 논문으로 〈조선전기 도첩제도 연구〉가 있고, 논문으로 〈조선 세종 대 승역급첩의 시작과 그 의미〉, 〈한국 불교의례에서 ‘먹임'과 ‘먹음'의 의미-불공(佛供)・승재(僧齋)・시식(施食)의 3종 공양을 중심으로〉, 〈불교의 자비행에 내포된 행복 메커니즘-진화심리학과 공리주의적 윤리학의 관점을 중심으로〉, 〈불교에서 점복이 다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일고찰-《점찰경》에 나타나는 방편의 위계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 법화계 불교종단의 역사와 성격〉, 〈여말선초의 승군 개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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