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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에 관한 단상
news letter No.935 2026/5/19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이나 이화여대 스크랜튼대학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선교사는 한국 개신교에서 중요한 아이콘이자 문화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언더우드와 스크랜튼은 아펜젤러와 함께 1세대 선교사를 대표하는 초기 선교사다.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 개신교의 초석을 닦았고 교회 안팎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해방 이후에는 한국인이 교회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선교사의 영향력과 위상은 대폭 축소되었다. 해방 직후 미 군정하에서 등장한 선교사들의 ‘고문정치’나 ‘통역정치’는 정치사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1960년대에 시작하는 군사정권 시기 선교사의 활동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대부분 학교, 병원, 복지시설 등에서 활동하였는데 그 무렵 미국에서 들어온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활동과 일부 겹치기도 하였다. 평화봉사단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미국 정부의 원조 프로그램인 것처럼, 당시 선교사들의 활동도 가난한 한국을 돕기 위한 봉사 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당시 선교사들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활동해야 했기 때문에 한국인과 친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주어진 소임을 다하였다.
그런데 군사정권에 의한 독재체제가 점차 강화되면서 한국인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지정학적 안보를 인권보다 중시하였기 때문에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에 대해 대체로 묵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료 한국인들이 시국 문제와 관련하여 구속되는 사태가 빈발하자 선교사들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을 돕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선교사들이 빠졌던 무력감을 훗날 어떤 선교사는 알콜중독자의 처지에 비유하였다. 미국의 알콜중독치료모임(AA)은 12단계에 걸친 회복 절차를 마련하고 있는데 그중 첫 단계는 알콜중독자 자신이 ‘술에 무력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술’ 대신 ‘정치적 상황’, ‘한국 정부’, ‘유신 헌법’에 무력했고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들은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복모임을 모색했다. 그 선교사의 표현에 의하면, “그들은 무기력했기 때문에 함께 했고, 정보에 굶주렸기 때문에 모였고, 개인적 경험담을 말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모였다.” 그들은 월요일 밤마다 모였기 때문에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으로 불렸다.
월요모임 선교사들은 정치범으로 구속된 인사들과 그들의 가족을 도왔다. 구속자 재판 참가를 비롯하여 구속자 가족 후원, 구속자의 고문에 관한 기록, 공개적인 항의 집회 참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와 동시에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해외로 보내거나 해외의 한국 관련 기사를 국내로 유입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포하였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은밀하게 이루어졌지만 군사정권의 감시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월요모임 선교사들은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감시의 대상이 되어 미행을 당했다. 그들을 괴롭힌 것은 군사정권의 감시만이 아니라 동료 선교사들로부터의 비난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다수 선교사는 월요모임으로 인해 자신들의 선교활동이 위태로워졌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를 화나게 한 일부 선교사들 때문에 대다수 선교사의 비자 갱신, 거주 허가, 세금 혜택 등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불평이었다.
대다수 선교사가 월요모임을 비난할 때 사용한 무기는 “선교사는 손님”이라는 논리였다. 손님은 초대받은 사람이므로 주인집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이러한 손님론에 대해 월요모임은 몇 가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방식으로 반박하였다. “만일 선교사들이 손님이라면 그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소수의 통치자인가 아니면 대다수 국민인가? 주인의 명령이 하느님의 뜻에 위배될 때에도 그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가? 주인에 대한 손님의 책임은 무엇인가? 주인이 병에 걸리거나 죽어가고 있는데도 손님이라는 이유로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가?”
이러한 물음들과 함께 성서를 근거로 대다수 선교사의 손님론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아모스는 남왕국 출신이지만 북왕국에서 예언자로 활동했음을 강조한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말로 유명한 아모스는 손님의 입장에서 타락한 북왕국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든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에게 멸시와 모욕을 받았지만 길에서 강도를 맞고 쓰러진 유대인을 구해 준다. 만일 착한 사마리아인이 “저는 당신 나라의 손님이므로 관여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신과 당신을 해친 강도를 위해 기도는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는 대다수 선교사가 지니고 있던 손님론에 대한 준엄한 비판인 셈이다.
사실 이러한 손님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만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미국 해외선교본부, 그리고 대다수 선교사는 이러한 손님론에 근거하여 식민통치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해방 이후 군사정권도 이와 동일한 논리를 전개하였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도시산업선교회나 인권단체의 활동을 돕거나 지지할 때, 군사정권은 선교사들이 손님의 본분을 망각하고 정치개입과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실제로 감리교 선교사 오글(George E. Ogle)은 목요기도회에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했고, 시노트(James Sinnot) 신부도 인혁당 사건이 날조된 것이라고 법정에서 외치다가 추방당했다.
사실 선교사에게 부여된 ‘손님’이라는 지위는 일종의 특권이기도 했다. 선교사는 외국인이고 더 나아가 종교인이기 때문에 군사정권은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 외국인을 처벌하게 되면 외교 마찰이 일어날 수 있고 종교인을 구속하면 종교탄압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정치활동을 할 경우 감옥에 갈 수 있지만 선교사들은 기껏해야 추방으로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신분상의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국인들을 돕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활용하여 고통받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자 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인들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군사정권의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심지어는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불의에 저항하는 동료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손님이라는 보호막을 지닌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을 변화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변화했다. 그런데 그들은 매우 소수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주요 저서로 《한국 개신교의 타자인식》,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 《한국종교학: 성찰과 전망》(공저), 《세속주의를 묻는다: 종교학적 읽기》(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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