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흙으로 news letter No.861 2024/12/17 죽음을 대면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가장 근본적 본질과 마주하는 일이다. 이는 인간이 겸손해질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계기이기도 하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성공의 욕망 속에 살아온 한 개인이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적 가식과 허영을 벗어던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죽음의 임박함 가운데 일리치는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모순을 깨닫는다. 과시를 위한 삶, 화려했으나 죽음 앞에서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 공허한 삶을 돌아보며 고통스러운 독백을 이어간다. 이는 단지 개인적 회한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진정한 인간성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리치가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은 “죽음의 끝”, 즉 죽음이란 더 이상 없는 ..
술사와 선거브로커, 변란과 친위쿠데타 news letter No.860 2024/12/10 전근대 종교사라는 영역은 연구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재미있지만 현재적인 시의성을 따지자면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이것은 종종 초학자 시절의 필자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필자의 전문분야인 조선후기 변란에서 나타나는 도참신앙, 미륵신앙 등은 과거 ‘민중종교’라는 주제 속에서 다루어졌다. 1970년대 후반 이후 학술장 내에서 민중 담론이 유행하면서 전근대의 반란이나 혁명에서 드러나는 종교성은 사회 변혁을 일으키는 동력 가운데 하나로서 주목받았다. 민중신학자 서남동과 같은 일부 지식인들은 당시 활발하게 연구되던 동학농민전쟁이나 저항적 미륵신앙 등을 ‘민중전통’이라 부르며 이것이 성서 및 교회사 전통과 ‘..
‘종교의 공공성’에 대한 재고(再考) news letter No.859 2024/12/3 지난 11월 30일 한국종교학회 추계 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탈종교 시대의 종교, 그 의미와 역할’로, 이와 직접 관련해서는 ‘탈종교 시대와 한국의 종교’ 제1 분과와 ‘한국 사회와 종교의 공공성’ 제2 분과의 발표가 있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이 두 분과가 – 다른 두 개의 분과와 함께 - ‘문화체육관광부 특별 분과’로 소개된 것이다. 물론 문체부 종무실이 본 학술대회를 지원하였다고 하나 보기 드문 경우로, 이는 사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 학술대회의 제1 특별 분과 첫 발표에서 “종교가 오늘 겪고 있는 위기는 종단에서 그치지 않고, 종교학, 정부 조직, 시민단체 등 ..
토테미즘에 관한 단상 news letter No.858 2024/11/26 최근 중국 상대(商代) 토테미즘 설을 검토하는 중에 국내 사정이 궁금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보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동양철학 관련 학회지에 실린 어떤 논문에서 지적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굳이 이 논문의 서지사항을 밝힐 필요는 없을 듯싶고, 현재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윤리나 한국사 교과서에서 한국사상의 연원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거기서 도출된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 글이었다. 흥미롭다고 여긴 대목은 다름이 아니라 이들 교과서를 보면 동양사상의 연원은 유불도 삼교에서 찾고, 서양사상의 연원은 그리스 사상과 헤브라이즘에서 찾으면서도 한국사상의 연원은 단군신화에 근거하여 샤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