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탁의 춤: 예언과 질문의 사이공간 news letter No.883 2025/5/20 고대 그리스 파르나소스 산 남서쪽에 위치한 델포이(Delphoi)의 아폴로 신전에는 아폴로 신의 예언을 전하는 예언자 피티아(Pythia)가 있었다. 피티아의 예언은 모호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모호하지 않은 말로 예언했던 트로이아의 왕녀 카산드라의 말은 그러기에 누구에게도 예언으로 가닿지 않았다. 예언의 모호성은 단지 예언의 맞고 틀림을 비켜가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 아니었다. 예언의 언어는 즉각적인 진실의 전달이 아니라, 청자의 해석이 개입하는 일종의 시적 언어이자 그 안에는 여러 해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도된 공백이 존재한다. 이러한 모호성은 피티아의 예언이 닫혀진 것이 아니라 해석과 토론을 통해 다양한 방향..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 news letter No.882 2025/5/13 이 글은, 근래 필자가 목매고 있는 반성 가운데서도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자 쓰는 것이다. 나의 인지(認知) 회로가 뒤죽박죽 엉켜버린 느낌으로 몇 개월을 지내다 보니, PTSD 유병이 의심된다.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란, 그 진단기준이 되는 증상으로서 무력감 · 감각 및 의욕 저하 · 집중력 저하 · 수면 장애 · 짜증 및 분노 증가 · 자주 놀람 등등이 상당기간 반복되는 경우이다. 지난 12월 이후 비슷한 증상을 토로하는 친구들이 여럿이다. 그간 나라 밖에서는 수시로 어떤 종교들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종교계가 정치권력과 야합하는 세계사를 충분히 학습하였다. 그럼에도 ..

옛한글 목판본 종교 문헌 읽기 news letter No.881 2025/5/6 요즘 젊은 벗들과 공부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3월부터 한 학기 동안 종교 문헌 강독 수업을 하고 있다. 지난 겨울 방학 때 강독 자료를 정했는데, 선정 조건은 네 가지였다. 시기는 대략 19세기에 나온 것으로 잡았다. 아래아가 잔뜩 들어가고 초성에 합용병서를 남발하며, 띄어쓰기가 없을뿐더러 구개음화가 전혀 안 되어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옛한글로 적힌 문헌을 택했다. 목판에 새겨서 찍은 것을 골랐다. 여러 종교의 문헌을 골고루 뽑는 것이 마지막 조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19세기에 만들어진 옛한글 목판본 불교, 천주교, 동학 문헌 읽기가 이번 학기 수업의 주제이다. 3월에는 1795년 양주 불암사에서 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