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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화한 불교정치’에서 불교 스스로 홀로서기?

2011.5.17

또 한번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고 그 의의를 되새기는 날이다. 매해 되풀이되는 경축의 날이지만 그때마다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개창주들의 메시지야 한결같겠지만 그 의미를 새겨듣는 종교인들의 마음가짐과 받드는 태도마저 한결 같을 수는 없다. 작년의 메시지가 오늘의 현장에 그대로 적용될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금년 불탄일에 느끼는 나의 불교에 대한 감수성은 격별하다. 혹 나만의 과잉된 반응일까?

한국은 다종교사회여서 종교적 잇슈와 사회, 문화적 현상들이 항시 맞물려있다. 따라서 한 종교의 어설픈 행태가 종교 상호간의 갈등을 유발시키고, 사회적 물의, 정치적 문제마저 일으키고 있다. 아직 종교전쟁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종교 간의 충돌은 종교적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소리 없이 침투해 있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종교 간의 대화비율을 넘어서 멀리 지나쳐있다. 주로 개신교의 생존방식과 영역확대에서 빚어진 문제가 대부분이다. 한국 기독교의 영향력은 세속과 초세속이라는 도식적인 영역으로 구분시켜 다룰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더 지나쳐있다. 이른바 세계종교사에서 보는 ‘종교의 정치화’의 전형을 목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종교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다른 종교들의 세속의 장에서의 활동을 자극시키고 있다. 즉, 다른 종교들마저 정치화시키고 각개의 종교들에게 세속에서의 자기 영역확보를 부추기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행태를 따라 닮는 모습을 불교에서 보고 있다. 그 동안 한국불교는 항시 정부시책을 종속적으로 따랐고 정부의 의도를 그대로 수용하며 현실 사회와의 소통과 조화를 꾀해왔다. 이러한 자세가 지나친 현실 영합적이라는 비난을 들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금년 들어 갑자기 한국불교는 정치적인 간여를 차단한다는 태도를 표명한다(주로 최대의 종단인 조계종단의 입장이다) 전국 사찰의 일주문이거나 산문(山門) 앞에 현수막을 치고 정치인들의 출입을 금지시킨 웃지 못할 해픈닝이 연출된 것이다. 불자 정치인들이거나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산문을 들락거리는 행위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마치 그것이 정치계가 불교를 간여하는 전범(典範)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이 아닌가. 이 유치할 정도의 소박성이 현재의 한국불교가 지닌 현실 참여의 태도다. 더구나 이런 소박성의 발로가 한국불교 역사 이래 스스로 서기를 표방한 초유의 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면,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지난 날 서경수 교수가 한국의 불교의 역사를 “순교없는 박해사“의 연속이었다고 명명했겠는가?

현 종단의 논리라면 역사적으로 귀찮게 따라붙은 문화재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불교가 떠안게 된다. 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기독교계가 이해하는 대로 불교에 대한 정부의 편향된 지원이건 아니건 그것은 이미 공지된 사항이다. 이번에 정부가 문화재를 빌미로 한 불교지원 정책의 실상이 드러났고, 그것을 고리로 하여 불교계를 편향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기독교계의 주장이다. 따라서 그런 지원은 차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도 동등한 혜택을 부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정치적인 해석이나 문화재적 해석의 선을 넘어 훨씬 버린 것이다. 기독교의 전형적인 자기 영역 확충의 시도이다.

그렇다면 불교는 문화재, 문화유산에 대한 권리를 반납하던가 아니면 그대로 껴앉고 독자적인 행보를 걸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산문에 내건 정치인 출입 금지라는 전대미문의 웃지 못할 광경이고, 불교의 현실 참여이고,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을 준수하는 불교의 입장이 되었다. 어떻든 이런 식의 홀로서기 독립선언을 환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결국 정부의 시혜 단절이 기독교와의 기싸움에서 패배한 불교의 홀로서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또 한번 한국의 기독교 정치화와 불교의 기독교 닮아가기 모습의 결과가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 지역의 불교를 어떤 이는 “개신교화한 불교(Protestant Buddhism)”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여하간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은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이었다. 법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금 네가 보고 느끼는 것’, 그것 이외에 또 다른 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금년의 불탄일은 부처가 ‘기독교화한 불교정치’에서 스스로 홀로서기의 메시지를 주신 것 같다.


이민용_
한국불교연구원
minyonglee@hotmail.com
주요 논문으로 <불교학 연구의 문화배경에 대한 성찰>,<서구 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고, 역서로《성스러움의 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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