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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북한의 정치종교이자 국가종교?

2011.5.24


종교사회학자 에밀 뒤르케임에 의하면, 종교는 기독교와 같은 초월신에 대한 신앙이 아니다. 그는 종교를 초월신에 대한 믿음으로 간주하는 실체론적 종교정의에 반대한다. 종교를 신비 또는 초자연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를 “거룩한 것들-분리되고 금지된 것들-을 믿는, 그리고 교회라는 도덕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결합시키는 믿음과 의례의 체계”라고 기능론적 정의를 한다. 그래서 그는 종교의 구성요소를 신념체계, 의례, 공동체의 세 가지로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뒤르케임의 통찰에 힘입어 제시된 종교 이론이 시민종교론과 정치종교론이다. 이런 시민종교와 정치종교를 명확히 분리하여 정의하고 있는 학자는 에밀리오 젠틸레이다. 그의 주요한 개념은 ‘정치의 신성화’(sacralization of politics)인데, 그 ‘정치의 신성화’는 명백히 근대적 사회문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국가와 문화 양면에서 세속화가 이루어진 후 ‘전통적 종교의 정치화’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속화이후 ‘정치의 신성화’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와 정치종교(political religion)라는 두 가지의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시민종교’는 주로 세속적 실재를 숭배 대상으로 삼지만 때때로 초자연적 실재를 신격화하기도 하며, 정치 운동의 이데올로기와도 결합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집단으로부터의 개인의 완전한 자립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종교는 평화적인 선전 수단을 이용하여 특정한 윤리적 계율, 집단의식 등의 준수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에 호소하며, 전통적인 종교와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정치종교’는 다른 이데올로기나 정치운동, 전통적인 종교와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으며, 폭력을 그 반대자를 무찌르는 정당한 도구이자 재생의 수단으로 삼는다고 한다. 또한 개인의 자립성을 부정하며, 그것을 공동체를 최고의 가치로 격상시키고, 특정한 정치의식과 계율에 대한 복종할 것을 사회 기구를 통하여 강제한다고 한다. 젠틸레는 프랑스 혁명의 경우에서처럼, 시민종교가 특정한 환경에서 정치종교화 되어, 불관용적이고 전체적인 성격을 띨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시민종교와 정치종교의 구분은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파시즘, 나치즘, 볼셰비즘 등의 정치운동을 ‘전체주의’로 규정하고, 그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가 ‘정치종교’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학자들의 흐름을 ‘새로운 합의’로 정리하려고 한 사람이 바로 그리핀(Roger Griffin)이다. 그는 1998년 출간한 파시즘 연구 선집의 서문에서 파시즘 연구자들 사이에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처음 주장하였다. 그 새로운 합의는 파시즘, 나치즘, 볼셰비즘 등의 전체주의를 정의함에 있어, 신화와 극단적 민족주의라는 두 핵심 개념으로 그런 전체주의를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합의’에서 전체주의를 정의하는 개념의 하나가 신화이다. 전체주의에서의 신화는 상식적 의미에서의 잘못된 믿음이나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실재에 대한 비전과 이미지의 마력을 통해 강한 감정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힘이다. 신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철저하게 장악하고 그 감정을 자극하여 실제 행동에 나서게 하는 힘의 원천이며, 대중의 정서와 감정에 호소하여 이들의 온전한 지지를 확보하고 또 이들을 동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조지 모스(Gorge L. Mosse)는 전체주의 정치사상을 “숭배의 틀을 제공하는 일종의 신학”으로 간주한다. ‘새로운 합의’는 전체주의의 신화적 마력 때문에 압제의 힘에만 의지하지 않고도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합의’가 전체주의를 정의하는 다른 하나의 핵심개념은 극단적 민족주의이다. 전체주의는 자기 민족이 혁명적 변화를 거쳐 곧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민족의 재생과 부활에 관한 믿음은 민족을 유기체로 간주할 때만 가능하다.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민족은 집단적 정신, 공동의 운명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생활 과정(life cycle)을 지니는 것으로 상정된다. 민족의 각 구성원들은 마치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와 같이 오로지 민족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여야 한다는 믿음 역시 유기체적 민족주의로부터 도출되는 신화인 것이다. 전체주의에서 민족은 개인의 삶을 초월한 보다 높은 실재로 격상되며, 개인의 삶 역시 민족의 활력과 안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때에만 그 의미와 가치가 인정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전체주의의 신화는 명백히 자유주의, 개인주의, 다원주의 등과는 양립할 수 없는 극단적 민족주의로 표현된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정치종교로 규정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북한체제를 전체주의로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 정성장은 북한체제가 기본적으로 스탈린 체제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아 수립되었기에 양자간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장달중은 북한 정치체제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은 전체주의 체제의 성격이라고 파악한다. 맥코맥(G. McCormack)은 북한 국가체제의 성격을 분석하는 데 가장 유용한 모델은 전체주의 모델, 특히 고전적 전체주의론을 수정한 기든스(A. Giddens)의 신전체주의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스탈린 사후, 북한처럼 전체주의적 지배모델이 정확히 들어맞는 나라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북한사회만큼 철저하게 공식 교의의 주입으로 자발적인 성장공간을 빼앗아버린 곳은 없다. 요컨대 북한은 철저한 감시와 테러, 그리고 국가의식을 통한 대중동원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혼합된 전형적인 전체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기든스는 전체주의 지배의 특징으로, 첫째, 국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등의 감시활동의 중시, 둘째, 정치공동체로서 운명을 공유한다는 역사의식을 강조하는 도덕적 전체주의, 셋째, 경찰력의 극대화를 통한 테러, 넷째,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 등을 제시하며, 이 중에서도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를 전체주의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기든스의 전체주의 이해는 정치종교를 전체주의의 특성으로 간주하는 학자들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학자들이 최근 많은 관심을 가지는 주제 중 하나가 북한 주체사상이다. 에밀리오 젠틸레는 북한을 전형적인 전체주의 국가로 파악하고 있으며, 북한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정치종교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주체사상이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통종교들을 탄압하고 그 기구들과 예배당을 파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례와 신화에 기독교 전통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정치종교라는 것이다. 찰스 암스트롱은 주체사상의 언어, 상징, 의례를 분석함으로써 북한을 가족주의에 기초한 정치종교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가족 로망스는 ‘거짓’ 부모를 ‘진정한’ 부모로 교체하는 일종의 국가적인 집단적 대체를 통해 작동하며, 김일성은 처음에는 일본 천황을, 다음으로는 스탈린을 대체하였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가족 로망스는 동아시아에 전형적인 효와 모성애에 대한 내러티브라고 결론짓고 있다. 신은희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주체사상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단계를 거쳐 현재는 북한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주체사상이 북한에서 배타적이고도 유일한 공식 종교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정치학계의 지적에 대해서 이제는 종교학계가 대답을 해야 할 차례이다. 주체사상이 북한 헌법의 전문에 명기되어 있는 바와 같이 북한에서 절대적 신념체계로서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곧 주체사상이 북한에서 국가종교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종교지형을 연구한다면, 기존의 북한 종교정책 연구가 북한의 정권이 북한 내에 존재하고 있는 전통종교 단체나 기구들에 대해 취한 정책의 변천사를 연구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북한의 국가종교인 주체사상이 스스로를 정립해나가고, 제도화하는 과정 속에서 잠재적인 경쟁자인 기존 전통종교들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에 대한 종교간 경쟁 과정 연구에로 시야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며, 종교학계의 이러한 연구 성과는 다시 정치학계, 북한학계, 사회학계 등의 인접 학문분야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대일_

서울대학교


jungsca@hanmail.net


주요 논문으로 <북한의 공민종교>가 있고, 저서로《남북한 현대사의 제문제》,《남북한 비교경제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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