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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50호-다문화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7. 16:08

다문화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2011.3.22


*이글은 <종교문화비평>19호(3월31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


10년, 20년 전쯤만 해도 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외국인은 거의 대부분 파란 눈에 금발을 한 백인이었다. 고궁 근처에서 단체관광을 하는 일본인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식당에서는 북한 말씨를 구사하는 연변 아주머니, 공단 지역에서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동남아 계통의 노동자, 농촌에서는 베트남이나 필리핀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대학 캠퍼스에서는 머리에 베일을 두른 무슬림 여대생, 그리고 매스컴에 의하면 서비스 업종에서는 러시아 여성을 접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마침내 정부는 국내 거주 외국인이 1백 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하였고 다문화정책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다문화센터, 다문화교육, 다문화가정 등과 같은 새로운 용어가 급격하게 부상하였고 각급 지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시민단체도 앞 다투어 다문화 관련 정책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학계 역시 뒤질세라 교육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여성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학자들이 다문화 관련 논문과 저서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다문화 담론의 홍수 속에 종교에 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판단이 들어 이번 호에서는 <다문화사회의 종교를 묻는다>라는 제목 하에 총 5편의 글을 특집으로 마련하였다. 두 편의 글은 해외 사례를 다루고 세 편의 글은 국내 사례를 다루었다.

오영훈의 글 <다문화사회 독일의 종교교육>은 독일 함부르크시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의 중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종교교육을 설문지 분석의 방식으로 다루었다. ‘모두 함께 하는 종교수업’이라 불리는 이 수업은 기독교, 이슬람, 무종교 등 서로 다른 세계관을 지닌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종교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장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오영훈은 이 수업이 아직 실험 단계이지만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독일은 터키계 이민의 증가로 최근에야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반면, 캐나다는 이민국가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초기부터 ‘다문화’를 화두로 삼았다. 다문화주의를 국가의 정책으로 공식 선포한 최초의 국가가 바로 캐나다이다. 문영석의 글 <다민족 다문화사회에서의 종교: 캐나다 사례를 중심으로>는 건국 초기 영국계과 프랑스계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등장한 다문화주의가 원주민과 유색인종 이민자에게까지 확장되어 간 역사를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종교가 이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를 규명하고 있다. 이 논문은 특히 캐나다의 다문화주의가 인종적 다양성만이 아니라 동성애자를 포함한 기존 사회의 소수자 집단의 인권을 포함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다문화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해외의 사례를 다룬 앞의 두 논문과 달리 유기쁨의 글 <결혼이주여성과 종교>는 최근 국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국제결혼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영혼과 마음과 몸매가 어여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국가별로 선택을 기다리며 웃고 있는 사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기쁨은 ‘행복한 국제결혼의 신화와 의례화의 전략’이란 관점에서 국제결혼을 추동하는 판타지와 욕망, 그 배후에 작동하는 자본의 힘과 권력의 메커니즘을 풍부한 사례를 동원하여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는 이주여성을 희생자의 관점에서 조명하면서도 그들이 행위주체로서 현실의 제도종교와 맺는 관계도 동시에 주목하고 있다.

박문수의 <다문화사회의 도전에 직면한 한국 천주교회의 진로>는 다문화사회에 대한 한국 천주교의 인식과 대응양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가톨릭교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사목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공식 지침과 다문화사회 담론의 본령에 기초하여 한국사회와 천주교회가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문화권(文化權)의 인정, 포스트 콜로니얼(post colonial) 대안, 소수문화 존중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천주교가 나아가야 할 보다 구체적 진로로 이주민들의 종교와 대화 준비, 정치 영역으로의 활동영역 확대, 다문화사회 교육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내부 메커니즘을 잘 아는 교회개혁자의 시선이 돋보이는 글이다.

이진구의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 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는 다문화시대의 도래에 대한 개신교의 인식과 대응을 전반적으로 살피기보다는 최근 한국 개신교계에서 급격하게 확산된 이슬람포비아 현상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최근 개신교계의 일부 언론은 “이슬람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는 선동적인 구호 아래 이슬람의 국내침투설을 제기하면서 이슬람권 국가 출신 노동자와 한국 여성의 결혼, 이슬람권 국가 유학생의 캠퍼스 침투, 오일머니의 진출 등을 그 구체적 사례로 제시하였다. 이진구에 의하면 이러한 주장들은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교동력’을 상실한 한국 개신교가 자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카드로서 여기에는 ‘희생양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

이번 호의 일반논문으로는 4편의 글이 실렸다. 헌법학자 민경식의 글 <2010년도 종교법판례의 동향>은 20여 개의 종교관련 판례를 사건의 개요, 쟁점 및 주요 판시사항 등을 중심으로 매우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2010년도 종교법판례의 특징으로 헌법 정신과 이념에 대한 사법기관의 존중,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경향의 판례 증가, 종교단체 내부 분쟁의 빈발, 법원의 판단에 대한 종교단체의 비판 증가, 하급심의 법리오해에 따른 파기 환송의 증가 등을 꼽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국가와 종교, 종교와 종교의 갈등이 더 심화되고, 국민의 권리의식 증진으로 종교법 판례가 더 늘어나고 복잡화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고병철의 <한국 종교계 사회복지의 쟁점과 과제>는 종교학이 그 동안 종교계의 사회복지 참여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하면서 종교계 사회복지에 대한 종교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사회복지와 종교사회복지의 개념, 종교계 사회복지의 최종 지향점, 종교계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국가 지원의 타당성 문제를 쟁점으로 제기하고, 그 맥락에서 사회복지 개념에 대한 성찰과 정립, 종교활동과 사회복지의 연관성에 대한 성찰과 사회적 합의, 각종 장애요인의 검토 및 공유를 통한 상호 연계를 과제로 제시하였다.

박진규의 글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저널리즘의 기대:《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종교면 분석을 중심으로>는 저널리즘의 시선에 포착된 종교의 사회적 이미지와 역할을 양적 분석 방법에 의해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종교면을 분석한 이 글은 2년간의 기사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드러내었다. 하나는 두 신문사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차이가 종교면 기획기사 서술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권력화된 개신교에 대해서는 양 신문이 이념적 차이를 넘어 부정적 비판적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윤용복의 <대한성공회의 종교교육>은 성공회의 종교교육이 지닌 성격과 특성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성공회 성직자가 어떠한 교육과정을 통해 임명되며, 일반 신자는 어떠한 교육과정을 거쳐 입교하게 되는지, 그리고 입교 후의 교육은 어떤 것이 있는가를 인터뷰 등의 방법을 통해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특히 일반 신자의 경우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어떠한 자격과 교육이 요청되는지를 자세하게 규명하고 있으며. 성직자의 경우는 부제와 사제 서품을 받는 과정이 천주교와 다름을 보여주고, 수사나 수녀와 같은 수도자 교육의 경우는 천주교의 경우와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다.

논문 형식의 틀을 벗어난 글로는 <이미지 기행>, <설림>, <주제서평>이 마련되었다. 박종천의 글은 세 번째 <이미지 기행>으로서 이번에는 <금기와 욕망의 변증법: 광고와 성스러움의 소비>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글은 현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가 신화와 주술을 이용하여 현대인의 소비 욕망을 극대화시키고 상품을 물신화시켜 가는 메커니즘을 분석하였다. 그는 아이스크림, 휴대폰, 나이키 등의 광고에 금기와 욕망의 변증법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규명하는 한편, 현대사회에서 ‘광고로서의 종교’와 ‘종교로서의 광고’가 맺게 될 새로운 관계 양상에 대해서도 종교학자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 호 <설림>란은 장석만의 글 <토끼, 모기, 그리고 좀벌레>으로 채웠다. 왜 제목에 토끼, 모기, 좀벌레가 등장하는가는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면 될 것이다. 장석만은 1년여 동안 독일 보훔의 루어대학에서 종교연구와 관련된 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깨닫거나 느낀 점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발표자들의 논문 제목들만 들어도 현재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종교연구가 매우 새롭고 신선함을 알 수 있다. 귀국하면 좀더 자세한 현황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호 <주제서평>으로 선정된 책은 최중현의 <메시아운동사>이다. 윤승용이 <한국적인 기독교, 메시아운동을 통해 복원하다>라는 제목으로 이 책에 대한 장문의 서평을 실었다. 2010년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학술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기독교계 신종교’로 흔히 분류되는 기독교계 소수 집단의 계보를 치밀한 분석방법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윤승용은 정통/이단의 틀 속에서 규정되어 온 이 종교집단들을 ‘서구 기독교’와 구별되는 ‘한국적 기독교’의 흐름으로 재조명하면서 이 책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

시절이 하수상하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생매장되는 아픔을 겪었는데 이제는 이웃나라 일본에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엄청난 인명이 희생되고 있다.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은 더욱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구제역과 원전 폭발이 ‘우리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이웃나라 일본이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실장 jilee80@dreamwiz.com


최근논문으로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 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최근 한국사회의 종교정당 출현과

그 의미>, <현대 한국종교의 정치참여 형태와 그 특성>등이 있고,주요저서로 <<현대사회에서 종교권력, 무엇이 문제

인가>>,<<아메리카나이제이션>>(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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