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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51호-대재난과 ‘일본교’(박규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7. 16:09

대재난과 ‘일본교’

2011.3.29


상상을 초월하는 재난 앞에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일본인들에 대해 세계가 놀라워하며 경외심에 찬 격려를 보내고 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이런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이른바 ‘메이와쿠’ 교육을 철저히 받아왔기 때문이라든가, 평소 재난대책 훈련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는 등의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벼랑 끝의 위기 앞에서조차 침착성과 차분함을 잃지 않는 일본인들의 행동양식과 관련하여 그 배경으로서 일본문화의 특징에 궁금증을 품게 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상과 체념의 문화’이다.
일본문학사와 사상사는 무상을 무상 그대로 살아가면서 덧없고 모순에 찬 세상 속에서 그 덧없음과 모순을 음미하는 일본인의 불가사의한 체념관을 잘 보여준다. 이때의 체념이란 불의의 재난과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슬픈 감정을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과는 달리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죽음 앞에서 발작적으로 통곡하는 대신 눈물을 안으로 삼키면서 차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런 체념에 익숙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은 체념관은 일본의 전통종교라 말해지는 신도(神道)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도는 어쩔 수 없는 재난의 슬픔 또한 평온한 일상과 마찬가지로 ‘가미’(神)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며, 그런 슬픔 자체 안에 안심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많은 일본인들은 생사의 고통과 모순 앞에서 슬픔으로 인해 통곡하고 오열하기보다는 체념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고 ‘다음’을 생각하려 애쓴다.

이런 의미에서 ‘체념의 달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일본인들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위기대응방식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일본인의 미의식을 대표하는 개념 중에 ‘모노노아와레’(物哀)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일종의 일본적 애상감으로 슬픔 앞에서 “타자와의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자신의 마음을 갖다 놓는 감정이입의 미학적 감수성”이라는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모노노아와레의 공동체’라 할 만한 일본사회 내부에서는 “논리보다 감성이 더 일차적인 현실을 구성한다.” 위기 앞에서도 자신만큼이나 남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일본인들의 행동양식은 바로 이런 미학적 감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폐허 속에서 물과 기름을 비롯한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슈퍼나 주유소 주변으로 사람과 차량들이 길게 늘어선 광경을 영상으로 보았던 많은 이들은 일본인들의 침착하고도 성숙한 시민의식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시민성’은 서구적 의미의 ‘시빌리티’와는 다소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일본인들의 ‘시민성’은 역사적으로 중세 이래 특히 근세 도쿠가와 사회에 뿌리를 내린 미학적 연대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근세일본에서는 렌가(連歌)나 하이쿠(俳句) 같은 시가라든가 다도 등의 미적 전통에 있어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동우회 소집단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났다. 이와 같은 소집단의 활성화를 통해 일반인들 사이에 대중화된 미적 교양과 모노노아와레적 공통감각이 널리 확산되었고, 그것이 낳은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연대의식의 토대 위에 오늘날 일본인들의 성숙하고 역동적인 시민의식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미적 감수성에 입각한 연대의식만으로 가혹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감당하기란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보다 더 깊은 층위에 혹 무언가 종교적인 연대의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과 관련하여 필자는 ‘일본교’라는 기이한 종교를 떠올리게 된다. 1975년 이자야 벤더슨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된 이래 ‘일본교’라는 개념은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영속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일본인들의 공통감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종의 종교적 차원을 내포하는 이런 공통감각은 역사적으로 위기의 때마다 종종 ‘신국 일본’이라는 내셔널리즘적 담론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의식과 접목된 일본교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대재난 앞의 일본인들이 보여주었던 그런 풍경 말이다.

근래 원전 위기가 고조되면서 일부 동요의 조짐이 보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핵공포는 지진이나 해일과는 좀 다른 차원에 속한 문제이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바뀌든 일본인들이 보여준 성숙한 모습은 오랜 동안 우리 안에 잊을 수 없는 숙연한 감동과 경외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 속에서 일본교는 적어도 대재난을 하나님의 징벌이자 경고이며 심판이라고 함부로 재단하는 한국의 거대종교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것으로 이해될 만하지 않을까?

* 이 글은 지난 3월 1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박규태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편집위원장, 한양대교수 chat0113@paran.com


최근 논문으로 <고대 교토의 한반도계 신사와 사원 연구>, <스사노오 신화해석의 문제:한반도와의 연관성을 중심으

로>등이 있고, 주요저서로 <<동아시아 여신신화와 여성정체성>>(공저),<<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히메까지>>,<<일

본정신의 풍경>>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 <<일본사상사>>,<<국화와 칼>>,<<신도,일본태생의종교시스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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