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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43호-새해 타령(진철승)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6. 16:35

새해 타령

2010.2.1


또 새해다. 설이다. 신정에 이틀 놀고, 구정에 사흘 논다. 이중과세라 하여 논란이 많지만, 어쨌든 노니 좋기는 좋다. 보통 새해라 하면 양력, 음력 각 1월 1일을 친다. 그러나 더 넓게 보면 새해에는 동지와 입춘도 포함된다. 우리는 동지, 양력 신정, 음력 구정(설), 입춘 해서 새해를 네 번이나 맞고 지낸다. 동지와 입춘은 해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의 24절기에 속한다. 양력 신정은 공휴일(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지정된 날)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나 우리 사회에서는 세시명절로서의 의미가 거의 없다. 이하에서는 동지, 설, 입춘에 대해 약술한다.

동지는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시에 다시 길어지니 마지막과 처음이 같이 하는 날이다. 그래 아세(亞歲)라고 하여 설에 버금가는 날로 여기기도 한다. 동지가 음력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동지에는 어디에서나 팥죽을 해먹는다. 팥을 삶아 으깨거나 체에 걸러서 그 물에다 찹쌀로 단자를 새알만큼씩 만들어서 죽을 쑨다. 이 단자를 새알심, 옹시미, 옹실내미라고 한다. 이 새알심은 나이 수만큼 아이들에게 먹인다. 애동지에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팥죽을 쓰지 않고 대신 팥떡을 해먹는다. 그러나 절에서는 애동지임에도 구애받지 않고 팥죽을 쑤므로, 민가에서는 절에서 팥죽을 얻어먹는 풍속이 있다. 동지 팥죽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설은 동지를 설로 여기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은 사대부가에서는 먼저 사당에 놓아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광, 또는 부엌의 조왕신에게 한 그릇씩 떠다 놓으며, 대문이나 벽에는 조금씩 뿌린다. 이렇게 하는 것은 팥죽의 붉은 색이 귀신이 두려워하는 색으로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 준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팥죽을 동네에 있는 고목에도 뿌리는데 이것도 역시 팥의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절에서도 아침예불 때 각 단에 팥죽을 올리고, 신도들과 점심공양을 팥죽으로 한다.

고려나 조선에서는 담당 관청에서 달력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이를 주요 관원에게 나누어준다. 달력을 받은 관원은 이를 본으로 한 달력을 만들어 친지, 지방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달력 제작은 주로 아전들이 담당했다. 단오의 부채와 동지의 달력을 합해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한다.

한편 동지는 예수의 탄일인 크리스마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수의 생일은 특정되지 못하고 있다가 4세기 기독교 공인 과정에서 선교의 방편상 로마 이교도들이 태양신 미도라의 복귀를 축하하는 축제일인 12월 25일로 정해졌다. 즉 이 날(동짓날)을 미도라 대신 ‘의(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생일로 정한 것이다. 이는 현재 서방 기독교에서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정교회, 그러니까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에서는 그레고리우스력(CE 1582년, 일년이 365.2425일이다, 현재의 역이다) 이전의 율리우스력(BCE 45년, 일년이 365.25일이다)을 사용하여(역법의 차이로 점차 날짜가 벌어져 13일이 차이 난다) 1월 6일을 예수의 탄일로 기리고 있다. 현재는 날짜 차이가 더 벌어져 1월 7일이다. 한국 개신교 일각에서는 최근 크리스마스의 대중 풍속이 쇠미해지자, 기독교 토착화 운동의 일환으로 동짓날과 크리스마스를 결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세시란 해(歲)와 때(時)의 합성어다. 여기서 해는 일 년 혹은 사시(四時)를 뜻한다. 이에 세시란 일 년 중의 때때를 의미한다. 그러나 세시는 무시(無時)의 반대말의 의미가 더 크다. 무시는 무상시(無常時)의 준말로 수시, 혹은 명절이 아닌 날을 가리킨다. 따라서 세시란 무시가 아닌 특별한 날, 곧 명절(名節)이다. 절은 마디다. 따라서 일 년 중 특별한 마디날(節日), 매듭을 짓는 날인 것이다. 일 년이라는 순환반복의 시간 중 중요한 마디로는 당연 새해가 으뜸이다. 새해는 설이다. 당연히 이 새해에는 각종 특별한 행사가 있기 마련이다. 가정에서는 차례, 세배와 덕담, 집안 대모(垈母)님들의 고사가 이루어지고, 마을에서는 마을신, 동신에게 정성을 드린 다음 줄댕기기 등 대동놀이를 벌인다. 또한 다가올 농사를 대비하여 농기구를 정비하거나, 풍농을 기원하는 각종 의례적 행위를 연출한다. 설 풍속은 보통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역법을 음력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순수한 음력이란 중동 등 몇 지역을 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는 태음태양력을 써왔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서양식 역법인 양력이 강제되면서 음력은 미신과 관계가 많은 비과학적 역법으로 매도되었다. 태음태양력을 입증해주는 대표적인 존재가 24절기이다. 24절기는 사계절에 6개씩, 각 달에는 두 개씩 배당되어 있다. 절기 개념을 좀 더 정확히 하면 24절기의 절기란 원래는 절기(節氣)와 중기(中氣)의 합친 말로서 12절기와 12중기로 나뉜다. 그리고 12개의 절기는 월초(月初)에, 12개의 중기는 월중(月中)에 들어 있다.

24절기의 첫째가 입춘이다. 입춘은 양력으로 2월 초에 드는데, 한해의 시작을 알린다. 그래서 각종 행사와 풍속이 집중되어 있다. 일반에서는 입춘체(立春帖, 春帖, 春祝)이라 하여 한해의 평안과 길복을 비는 대구어(對句語, 對聯)를 써서 문설주나 대문에 붙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등이 그것이다.

불가에서는 입춘에 입춘불공을 올린다. 본디 불가의 행사는 아니지만, 한해의 첫 시기에 연중의 길복을 비는 대중의 소망에 부응하기 위해 조선 중기 이후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조 때에는 부모은중경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라는 진언을 인쇄해 나누어주었고, 이를 문설주에 붙여 재앙소멸과 만복도래를 기원한 것은 입춘과 불교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절에서는 이날 사시불공을 마치고 삼재풀이를 한다. 쌀 한 말, 밥 세 그릇, 내의 한 벌, 백지 한 권, 삼재부적과 각종 부적 등을 중단(中壇)에 올리고 법주스님이 륙모적살경과 불설삼재경을 읽고 축원한다. 이후 헌식과 소지를 하면 삼재풀이가 끝나는데, 삼재부적 외에는 모두 태운다. 신도들은 삼재부적을 갖고 가서 집 문설주에 붙인다.

액막이타령은 “...정칠월 이팔월 삼구월 사시월 오동지 육섣달 내내 돌아가더라도 일년하고도 열두달 만복은 이리로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대유전을 비옵나니다”로 맺는다. 거북이하고도 잘 지내는 신묘년 토끼해가 되길 빌어본다.

진철승_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원장 jcs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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