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95호-중세는 ‘암흑의 시대’였나?(박주영)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5. 17:01

중세는 ‘암흑의 시대’였나?

2010.3.2


중세를 전공한 내게 사람들이 종종 던지는 질문이 있다. 왜 하필 중세철학을 전공했느냐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중세’라는 용어를 들으면 뭔가 막연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색채로 비유하자면 검정 색, 또는 비오기 직전의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같다고나 할까? 중세의 절정을 이루는 토마스가 살았던 기간이 1224년에서 1272년이니, 중국으로 치자면 성리학이 왕성하던 때일 것이고 우리나라로 보자면 고려 23대 고종(재위 1214-1259)과 24대 원종(재위 1259-1274)의 시대로서 고려가 대체로 확고한 왕권을 유지하고 있던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왜 하필 중세 철학을 전공했느냐고 묻는 말은 시대적인 관점만을 놓고 보면, 왜 하필 성리학을 하며, 왜 하필 고려 시대의 어느 한 사상가를 전공했느냐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양 중세 시기, 더욱이 중세 철학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중세’라고 하면 생각나는 검정색을 밝은 색으로 바꾸고, 하늘의 먹구름을 걷어 낼 수 있을까, 그래서 서양 중세 철학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중세를 연구한 사람들의 과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중세”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중세는 암흑시대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중세가 암흑시대라고 "지칭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인간 이성에 근거하고 인간 이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철학 체계나 이론보다도 그리스도교의 세력이 우세했고, 따라서 철학은 다만 신학의 시녀로 치부되었고 이로 인해 발생된 여러 가지 부수적인 사건들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인간 이성의 관점에서 보면 중세에 대한 판단은 틀리지 않다. 맞다. 이것은 중세를 뒤따라오는 철학 사조인 합리주의나 계몽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평가이다. 중세에는 많은 사건들이 발생했었는데, 이 사건들은 사실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중세가 일반적으로 암흑시대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평가인가하는 물음을 우리는 제기해야 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찾아보려고 시도해야 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지칭되었던" 이라고 표현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라도 중세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믿으며, 이로써 그 시대를 더 이상 단지 암흑의 시대로 남겨 놓아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상사의 맥락에서 중세의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 더욱이 그 시대를 무시한다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중세는 1,000년이 넘는 시간대에 걸쳐있다. 역사에서, 더욱이 사상사에서 천년을 뛰어넘고 역사나 사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런 역사는 절름발이 역사이다. 더욱이 시간적으로 나누는 시대 구분에 앞서 사상적으로 나누어본다면 중세는 보에티우스에서 시작하여 근대철학의 기원을 이루었다고 시작되는 데카르트에 이른다. 중세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 데카르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좀 과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중세 사상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면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철학의 위안』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Boethius는 480년 경에 태어나 524년에 사망했고, 데카르트는 1596년부터 1650년까지 생존했었다. 이렇게 본다면 중세는 거의 1,200년에 걸친 장구한 시간을 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시대였던 중세가, 아니 중세가 이렇게 중요한 시대라면 어째서 우리나라 철학계나 신학계에서 중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였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중세의 사상은 전적으로 신학이었지, 철학은 아니었다는 일종의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세의 사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조건 철학적인 아무런 사유 유산이 없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경솔한 행태가 아닐까?

중세의 여러 사상가들 -나는 이 시대의 신학자와 철학자를 굳이 구분할 이유는 없다고 보고, 이들을 묶어 사상가라고 지칭하려고 한다- 에 대한 이해나 연구가 꾸준히 있어왔던 유럽의 사회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세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는 아주 적었다. 중세 사상은 신학의 분야에서 사제들에 의해서 연구된 것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제는 지구촌의 시대다. 편식은 위험하다. 인류의 문화와 사상을 올곧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세에 대한 철학적 반성의 작업이 필요하다.

* 이글은 제1차 서구 신비주의에 대한 학술연찬을 마치고 평가하는 자리에서 위디오니소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 중세철학을 전공한 박주영선생에게 청탁한 것입니다.

박주영_

한국외국어대학교 parkpia617@htomail.com


주요 저서로 <<중세와 토마스 아퀴나스>>(살림), <<아구구스티누스>>(살림)등이 있고, 역서로 <<아구구스티누스행복론>>(누멘), <<삶의 목적인 행복>>(가톨릭출판사)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