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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의 영어표기?
2010.2.16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우리는 주목하지 않는다. 이 문제도 우리가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은 것을 보면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은 지금까지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문제 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리말 학술용어를 사용할 때 그 용어가 외국어, 특히 영어로 번역 가능한가를 우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생소한 용어를 제시하면 우선 영어로 그 용어를 어떻게 번역할지를 생각해보고, 만약 영어로 그 용어가 쉽게 번역이 되지 않으면, 그 용어의 유용성을 다시 생각하곤 한다.
원래 ‘종교와 문화’는 신학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신학에서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종교학과에는 ‘종교와 문화(Religion and Culture)’라는 교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그런데 교과목의 구체적인 내용은 가르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제목(Religion and Culture)을 가진 책의 부제가 ‘종교인류학입문’이라는 책이 있는 것을 보면 ‘종교와 문화’는 ‘종교인류학’으로 이해해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신학적인 문제의식이 종교학에 수용되면서 ‘종교와 문화’라는 용어의 의미가 모호해 진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우리는 ‘宗敎文化’라는 용어를 사용해 오고 있다. 종교학 영역 밖에서도 이제 이 용어는 전혀 어색한 용어가 아니다. 한신대학교는 ‘종교학과’라는 학과 이름을 ‘종교문화학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연구소도 명칭이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이다. 놀라운 것은 최근에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한중일 삼국 학자들이 ‘동아시아종교문화학회’라는 학회를 창립하였다. ‘종교문화’라는 용어가 이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용어로 정착한 것이다.
좀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이기는 하지만 Religious Culture in Korea라는 책이 있다. 그런데 학과나 학회, 연구소의 영문 표기를 보면 ‘종교문화’는 대체로 ‘Religion and Culture’로 번역된다. ‘Religious Culture’이든 ‘Religion and Culture’이든 영어권의 학자는 이 용어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문화’로 이해하지는 않을 듯하다.
동아시아권에서 ‘종교문화’는 ‘종교’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용어로 사용된다. ‘종교’라는 용어의 외연을 넓히는 대신 동아시아권의 학자들은 ‘종교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연구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종교문화 〉종교’이다. 따라서 ‘종교문화’를 ‘Religious Culture’나 ‘Religion and Culture’로 번역하는 것은 많이 어색하다.
종교문화와 같은 맥락의 용어로 ‘00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곤 한다. 최근에 ‘음식문화’ 관련 논문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궁금했다. ‘음식문화’가 영어로 어떻게 표기되는지. ‘Food Culture’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경우 영어권에서 먼저 ‘Food Culture’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우리말 번역어로 ‘음식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르겠다. 이왕 동아시아권에서 ‘宗敎文化’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Religion Culture’라는 용어를 영어권으로 수출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어쨌든 나는 여전히 심란하다.
강돈구_
한국학중앙연구원 kang@aks.ac.kr
주요저서로 <<현대한국의 종교와 정치>>,<<한국종교 교단연구1-5>>,<<근대 한국종교문화의 재구성>>,<<한국문화와 종교적 다양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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