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종교학의 ‘The End’
- 신학(神學), 신학(新學), 신-신학(新神學)
2010.2.2
종교학의 위기. 이런 문제를 말하는 것은 위기의 문제를 너머서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고, 하나의 저주일 수도 있다. 혹은 과장된 허풍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이 글의 문제의식은 첫 번째 해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다시 ‘위기의 서술’은 어떻게 가능한가? ‘현대 사회에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생산해 내지 못하는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론은 이 분야의 ‘공통의 유기적 이론’의 결핍으로 제시된다. ‘과학적 이론’의 부재나 ‘체계적이고 권위를 가진 학문적 방법론’의 부재를 거론하게 된다. 이를 학자들의 수준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종교에 해당하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이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묘사는 이 학문의 ‘학적 동력’을 또한 고려해 볼 때, 좀 더 구체화 될 수 있다. 이제까지의 동력은 크게 특정 종교 재단과 국가나 제국(큰 국가)과 대중이었다. 첫 번째는 호교론을 위해서, 두 번째는 종교단체 통제를 위한 정책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서나 자국 문화의 특수성을 확립시키는 언어 계발을 위해서, 세 번째는 두 번째 버전의 확장판이지만 ‘특수성’의 언어와 연결된 ‘보편성’의 문제를 다룬, 첫 번째 경향과 더불어 종교학이 학문 분야로 확립되는 데에 필수적인 동력이었던, 제국 경영을 위해서, 마지막은 좀 더 폭 넓은 관심이면서도 학문의 존립에는 그 다지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종교들에 대한 정보나 혹은 세속적인 종교적 삶에 대한 대중적 욕구가 하나의 동력이 될 것이다.
‘보편의 언어’ 안에서 태동한 이 분야가 걸어간 길은 신학에서 ‘신과학’으로의 탈출이었고, 제국주의와 유럽에서 민족과 지역으로의 탈출이었다. 연구 대상 자체가 학자의 관점에 의존적인 실체라는 점은 이렇게 당대의 사조에 휩쓸리는 실체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궤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종교 개념의 서구적 구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신성과 오류의 교차로에 떠 있는 ‘종교’라는 구름.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뮐러도 예외적인 우위를 고려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기독교 중심적 배경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는 종교학을 비교신학과 이론신학으로 나누는 부분에서 보인다. 이 용어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비교종교학’과 ‘종교철학’ 유의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기획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는 당시 학자들 모두의 공통점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학‘들’을 비교하려는 시도는 그가 ‘이론신학’이라 부르는 작업에 선행하는 것이면서 그가 명시적으로 지적하는 바 이론신학은 비교신학의 성과에 기초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므로 당장의 종교학의 작업은 아니라고 한다. 비교신학은 동시대의 소쎄이의 역작에서도 ‘종교사’로서 중시되었다. 그의 Manual도 기본적으로 여러 종교들의 역사를 개괄 비교하는 것이었다. 개별 종교의 역사는 뮐러에게는 일개의 신학으로 표현된 것이기에 그가 말하는 ‘비교신학’은 메타신학이다. 이것이 새로운 학문의 비전이다.
메타신학이 과학적 연구가 된다는 생각은 서구적 종교라는 개념을 보편 개념으로 상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뮐러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적 자질에 주목해서 “모든 언어의 역사적 형태로부터 독립하여 말하는 능력이 존재하듯이, 모든 역사적 종교로부터 독립하여 인간의 내면에는 신앙의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신학‘들’에 대한 학문은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 능력이 발휘된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신학으로부터의 탈출, 그렇게 기획된 비교신학, 이를 체계화하는 시도로서 인용된 제국의 통치 전략을 표현한 Divide et impera라는 말이 포개어지는 지점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보를 정리하고 이를 소화해 내는 ‘새로운 인간’의 비전을 발견하게 된다. 이 ‘인간’의 삶은 그렇지만 인류 보편의 것은 아니었고, 때문에 정복과 피정복의 갈등을 수반하는 복잡한 정치적 게임이었다.
지식의 정치학: 정복과 저항. 제국의 통치 전략과 새로운 지식 체계의 유비는 묘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모두 권력관계를 형성시키는 활동이다. 제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구성하는 데에 모두 일조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통치 도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이러한 방향에서 도구가 된 학문이 이 분야의 주요 흐름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분명한 경향이 존재했다. 한편 반향이 존재했고, 이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두 이데올로기의 자장 위에서 이루어졌다.
어폐의 실체라고 한다면, 은폐된 파워 게임의 수면 위에 얼굴을 내민 학문적 세계의 ‘세계 그림’이었다. 이것은 서구의 일부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외 지역에서 이는 각자가 부딪치고 있는 현실에서 후원자로서 국가와의 관계와 그 학자가 겪어낸 근대화-서구화의 분위기에서 지식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 뒤섞인 지적 파워 게임으로 나타났다. ‘종교적 사실’이라는 관찰되는 현실의 그림은 사실은 세계의 역학관계가 투영된 현실화될 혹은 현실화된 그림이었다. 세계 내 인간의 ‘종교적 능력’을 규명하는 노력은 모범적 예로서의 ‘세계인’/‘제국인’과 이에 대항하여 근대화의 후발 주자로 나선 민족의 제국에 ‘저항’하는 ‘자국인’/‘자민족인’의 특성과 정체성을 묘사하려는 노력으로 대체되었다. ‘저항’은 말 그대로 저항이 아니고, 롱의 표현에 따르면 일종의 침묵까지 수반하는 것이었다. 때론 적극적으로 자신들에게 부여된 의미를 전유하는 것이었다.
근대 국민국가의 체제 하에서 종교학의 비전은 그렇게 변형되었다. 뮐러에게서 뿐 아니라 인류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종교를 다룬 타일러, 프레이저 등이나 그 후세대 종교학자 엘리아데에게 이러한 틀에 입각한 비판은 ‘서구 중심적’, ‘기독교 중심적’이라는 식으로 나타났다. 특히 엘리아데는 스스로 이러한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후학들로부터 ‘존재-신학적’ 내지는 ‘비역사적’이라고 비판을 받거나 젊은 시절 활동 경력이 거론되며 ‘파시스트’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분명 인간의 보편성이라는 전제를 품고 있다. 더욱 그것이 현대인의 실존적 물음과 맞닿게 될 때, 학자의 해석은, 어떤 유의 사항도 제시되지 않는다면 독단론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서구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세계에서 ‘보편인’이라는 관념은 구시대의 폭력적 잔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식은 ‘의미작용’의 정치학이라는 지평 위에서 여전히 정복과 근접한 표현이다. 여전히 유지되는 동력과 제한적인 이 분야의 의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가해지는 일반적인 ‘제한 사항’을 고려할 때, ‘특수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나의 종교에 대해서 천착하는 것조차도 한 개인 학자에게는 지난한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향은 이 분야의 정초 과정에서 제시된 비전과 역행하는 것이다. 위기는 애초의 목표가 좌초되는 지점에서 명백해졌다.
학문적 성화聖化와 추락 혹은 타락(fall). 위기의 언어는 바뀌지 않았다. 이 분야의 남겨진 비전은 중립적이고도 객관적인 과학성을 담보하는 ‘종교’에 관한 지식이다. 금칙어는 ‘존재’, ‘신학’, ‘보편’ 등이다. 막스 뮐러의 꿈은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음의 표현은 시간을 두고 음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구시대의 유산으로 그리고 근래의 금칙어로 배제하고 있지만 말이다.
옛날의 귀금속과 마찬가지로 고대의 종교는 여러 시대의 녹이 지워진 후에는 그것의 순도와 광채를 드러낼 것이다. 그것이 드러내는 형상은 아버지의, 즉 지상에 있는 모든 민족의 아버지의 형상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그 표제를 읽을 수 있을 때, 그것은 유대의 언어에서 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인종의 언어에 있을 것이다. 그 언어가 오직 드러날 수 있는 곳에서 즉 인간의 마음에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일 것이다[Mller: 67].
하느님에 조금 덜 현혹되고, 모든 인종의 언어에 주목할 때, 메타신학의 가능한 현실태를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음미의 시간은 결코 짧아서는 안 된다.
*이 글은 2009년 6월에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6차 한일차세대포럼의 종교 분과에서 발표했던 것과 같은 제목의 글을 수정 축약한 것이다.
심형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회원 zeekfrid@gmail.com
서울대 박사과정. <종교 개념의 적용과 해석에 대한 연구>라는 석사학위논문이 있다.
'뉴스 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93호-‘종교문화’의 영어표기?(강돈구) (0) | 2011.04.15 |
---|---|
92호- ‘한국’ 과 ‘종교(문화)’ - 두 의미소(意味素)의 관계는?(김영호) (0) | 2011.04.15 |
90호-“낙태아 천도재 조사”를 마치고(우혜란) (0) | 2011.04.15 |
89호-서양 신비주의에 대한 연찬 - 신플라톤주의를 중심으로-(고명선) (0) | 2011.04.15 |
88호-2010년도 총회를 앞두고 (윤승용) (0) | 2011.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