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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90호-“낙태아 천도재 조사”를 마치고(우혜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5. 16:18

“낙태아 천도재 조사”를 마치고

2010.1.29


낙태아 천도재를 연구프로젝트로 진행한지도 어연 3년이 되어간다. 이미 공식적인 연구년도는 종결되었지만 아직도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 진행 중이고 이에 대한 여러 잔상들이 쌓여가고 있다. 그 연구조사 덕분에 지방의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좋은 풍광도 보고 맘씨 좋은 스님 네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몇몇 주지스님은 내가 떳떳이 내 놓을 명함 한 장 없어서인지 완전 초짜 취급에 인터뷰도 쉽지 않아 허락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 저녁 밖에서 떨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인상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낙태아 천도재 참석자 특히, 젊은 여성들이 고개 떨구고 눈물 흘리던 모습이다. 이들의 그 애잔하고 창백한 모습이 왜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는 잘 설명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내가 여자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삶의 고단함과 생명의 허무함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구담사 경내에 조성된 동자상들로 여성들은 아이를 형상화하고 있는 이 동자상에 대하여 특히 깊은 애착심을 보인다. 손수 뜬 모자와 망토를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철따라 갈아입히고 장난감, 신발, 과자 등을 동자상 앞에 놓으면서 얼굴 표정은 그리도 편안해 보인다. 지난 번 방문 때는 어느 젊은 여성이 동자상을 열(列)에서 들고 나와 가슴에 품고 얼르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아기를 달래고 있듯이... 또한 몇몇 여성들은 “이제 날씨가 추워지니 우리 아이에게 좀 더 따듯한 외투를 입혀주어야 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사실 나는 매우 착잡한 감정을 느낀다. 잃어버린 아이에 대하여 그 동안 숨겨왔던 애정과 감정이 표출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런 유사양육’(類似養育)과 애착심이 지속된다면 어찌 이 아이들을 진정한 의미로 천도(薦度), 즉 죽은 이를 이 세상과 분리시켜 다른 삶의 영역으로 보낼 수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태아 영들은 이들 여성에게 죽어도 죽지 않은 그래서 그림자처럼 언제나 여성에게 드리어진 존재란 말인가?

사실 스님들과의 인터뷰도 이들 여성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추적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이들 여성들과의 심층인터뷰다. 그러나 완전한 이방인인 나에게 인터뷰를 허락하는 여성은 없었다. 나를 친절하게 대하였던 여성도 인터뷰 얘기만 나오면 싸늘하게 얼굴색이 변하면서 도망가기 바빴고 일부는 적개심까지 보였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먼저 이들과 친구 내지 동지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의 조급함과 이들 여성들의 소극성을 탓하면서 결국 나는 설문조사라는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조사가 연구자 뿐 아니라 해당 사찰에도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즉,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나의 ‘꼬임’에 넘어간 주지스님과 신도회장의 도움으로 나는 두 사찰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할 수 있었다.

이 설문조사의 결과를 도출하면서 나는 이론과 실제의 커다란 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낙태아 천도재는 흔히 생각하듯이 여성들이 낙태 (직)후 경험하는 트라우마나 죄책감을 상쇄 내지 극복하기 위해서 행하는 의식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의례 참석자 중에는 최근에 낙태를 한 여성들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데 반해 참석자 대부분이 45세부터 60세 이상으로 중장년과 노인층이었기 때문이고 이들의 낙태경험 또한 1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낙태아 의례는 여성의 성과 생산력을 통제하기 위한 가부장제의 전략이라는 많은 여성학자들의 주장도 빛을 잃고 만다. 이들 대다수가 이미 생산력을 상실한 중장년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설문조사 결과는 여성학자들의 또 다른 주장 - 즉 이 의례가 낙태 영령이 끌고 온다는 재앙을 차단하거나 제거하기 위해서 비싼 비용을 들여 의례를 행하게 함으로서 감정적, 재정적으로 이들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비난 - 역시 뒷받침하고 있지 않았다. 이들 여성들은 낙태 영의 탈이라고 일컬어지는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자식의 문제, 부부간의 불화, 자신의 건강 등)을 해결하기 위함이라기보다 낙태아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낙태에 대한 참회를 위해 해당 의례에 참석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천도재의 성격상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참석자 대다수가 비용을 ‘적절하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것은 왜 낙태의 경험이 오래된 중장년과 노년층 여성들이 이 의례의 핵심 구성원인가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다. 우선 불교신자의 고령화를 들 수 있으며, 또한 중년이후 이들 여성들이 이 의례를 행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 특히 여성들의 갱년기 증상과 낙태 영의 탈이 흔히 관련지어지고, 낙태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죄책감이 불교성직자들의 언설이나 대중담론을 통해 새롭게 자각되었다는 등등.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필요조건에 해당할 뿐 왜 이 여성들이 이 의례를 통해서 오래된 자신들의 낙태경험을 새롭게 대면하고 있는가에 대한 충분한 답을 제공하고 있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낙태’는 여성들에게 있어 단순한 지나간 의학적 혹은 육체적 사건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해 본다. 그것은 아마도 여성의 육체와 영혼에 영원히 새겨져 있는 기록이며 이에 대한 기억은 다양한 계기에 의해서 새롭게 기억되고 재해석되며 자기성찰을 새롭게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닐까. 단 문제는 여성들의 ‘낙태의 기억’이 ‘낙태’에 대한 성직자들의 준엄한 정죄로 인하여 ‘살인의 기억’으로 재인식될 경우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 보다 험난할 것이며 또한 긍정적 자기 이미지를 (재)구축하는 작업도 쉽지 않을 것이라 걱정이 된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주요논문으로 <한국사회에서 여성 종교지도자의 카리스마 구축구조>,<천도재의 새로운 양태-낙태아를위한 천도재>,<현 한국사회에서 합동 천도재의 복합적 기능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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