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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습니다
2010.1.5
새해를 맞습니다. 이 ‘새로움’이 단절을 획한 이어짐인지 이어진 이어짐인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를 캘린더가 구분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마음결이 이를 아니라 하면 어쩔 수 없이 캘린더도 이를 나누어 밝히기가 난감할 일이고 보면 잣대로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마음이 잣대를 부려야 할지 이야말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무튼 끝난 세월 분명하고, 새 날들 펼쳐진 것 어김없으니, 늘 하던 대로 ‘새로움’을 새삼 다짐하지 않으면 관성의 법칙에서 일탈하는 비운을 맞을 것 같아 공연한 생각들일랑 다 접어야 옳을 듯합니다.
돌이켜 쉬운 일이었다고 회상하기란 사람살이에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종교문화연구소도 참 어렵게 그렇게 한 해를 보냈다고 회고하게 됩니다. 모임을 애썼지만 넘치기는커녕 차기도 힘들었습니다. 돈을 모았지만 있던 것 야금야금 꺼내 보태도 살림이 빠듯했습니다. 주인은 없고 객만 있는 듯 하기도했고, 가족은 모두 출타하고 두 양주만 덜렁 남아있는 집안 같은 휑함도 없지 않았습니다. 공부하고 살피고 다듬는 연구주제들도 ‘이거다!’ 싶으면 사람이 없고, 사람이 있으면 판을 벌리기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면 마지못해 내키지 않는 주제들을 그저 원만하게 다루면서 자족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룬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뿌듯한 일 없지 않습니다. 형편이 앞에서 말한 그런 판인데도 이제까지 하던 것 못한 것 없고, 하지 않던 새 일들도 했고, 마음 기울이고 몸으로 뛰면서 애쓴 회원들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서고 주저앉는 일이 예사롭게 벌어지는 사람들 모임 중에서 우리만큼 뚜렷한 ‘이념’과 ‘전통’과 ‘문화’를 이룩하여 살아 숨쉬는 ‘모임’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조(自助)’ ‘자립’ ‘자율’까지 우리 모임 앞에 수식어로 단다면 우리는 조금은 나르시시즘에 빠져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이렇게 되돌아보면 마냥 좋습니다.
그런데 새 비롯함이든 이어진 새 마디든 우리는 지금 한 고비를 또 넘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계기에서 되살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식이기도 하고, 애비이기도 하고, 제각기 주어진 역할을 통한 자기정체성을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학도이고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회원이기도 하고, 적어도 그 모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후자의 맥락에서 우리를 되생각하는 일이 새해의 우리 관심의 표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학도는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 사람인가 하는 물음이 그것입니다.
종교학사는 종교사의 일부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종교문화비평을 문자적으로 읽는다면 종교학사는 종교사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종교학자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한다면 종교학은 종교사에 마땅히 수용되어야 합니다.
한데 해답은 이론(theory)에 있지 않습니다. 종교학도라는 자의식을 가진 학자들의 실천(practice)을 사람들이 어떻게 수용하느냐하는데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용을 결정하는 것은 학자들의 소통능력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더 나아가 말한다면 소통능력은 학자의 성(誠)에 달려 있습니다.
새해는 우리의 학문하는 성(誠)의 온전함 여부를 살피는데서 비롯하여 우리 모임인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우리의 성의 원천으로 있을 수 있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뇌하는 해에 이르는 그러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진홍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mute93@hanmail.net
주요 저서로 <<종교문화의논리>>,<<경험과기억-종교문화의 틈읽기>>,<<열림과닫힘-인문학적 상상을통한 종교문화읽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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