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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종말론 유행 현상과 종교 패러디 놀이

2009.12.29



지난 늦가을 개봉한 재난영화 <2012>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록 CG 효과일 뿐이긴 해도) 어마어마한 물량과 스케일로도 주목받았지만, 고대 마야인들이 예언했다는 2012년 지구 종말설이 유행한 덕에 더욱 유명했던 영화다. 제작사의 상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있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개봉 전후뿐 아니라 올해 벽두부터 일찌감치 2012년 종말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게 흥밋거리가 되겠다 싶었는지, 언론들도 종말설을 소개하거나 분석한 기사와 프로그램을 앞 다투어 내놓았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비슷한 일이 십여 년 전에도 있었다. 1992년 종말설을 주장하던 종교 단체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글쎄, 혹시 그 종교 단체가 1999년 종말설을 주장했다면 세기말 분위기를 타고 좀 더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당시의 종말설 붐은 세상의 이목을 잠시 끈 뒤 해당 종교 단체 신자들만의 해프닝으로 흐지부지 끝났다. 대신에 Y2K라는 테크놀로지 종말론이 세기의 전환기를 잠시 장식했다.

전에는 세상을 그토록 떠들썩하게 했던 종말론이 이번에는 어디서도 별로 관심을 끌지는 못한 듯하다. 왜일까? 당시는 20세기 말 세기의 전환기 직전이었고, 지금은 21세기를 한참이나 접어들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1990년대는 마침내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비로소 시민사회가 시작된 시기다. 1992년 종말론이 비록 소수 종교인들의 망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 그토록 많은 이목을 끌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세계의 종말과 소수의 구원에 대한 상상은 개인이 주체가 되는 시민사회가 출현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폭발한 종교적, 사회적 집단주의의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1992년 종말론은 세기 전환기의 사건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와 종교가 집단주의적 체질을 탈피하던 시대 전환기의 사건이었던 셈이다.

올해 유행한 2012년 종말론이 다른 점은 이 부분이다. 2012년 종말론에서는 집단주의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물론 세계 곳곳에 이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 신앙이 집단적 광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징후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저 ‘또 종말론이냐?’ 하는 시큰둥한 반응 속에 인터넷 가십과 패러디의 소재가 되거나, 재빠른 저술가들의 짭짤한 인세 수입원이 되거나, 블록버스터 영화의 소재가 되거나, 언론 기사와 프로그램의 밋밋한 소재가 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만큼 올해의 2012년 종말론은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며, 종교 집단의 교리나 신앙 또는 사회 전반의 문제라기보다는 혼자서 또 삼삼오오 모여서 노는 놀이와 오락의 성격이 짙다. 이제는 종교가 공동체에 뿌리박은 진지한 삶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문화적 코드와 개인적 소비 품목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래서 2012년 종말론 유행 현상은 차라리 2년 전 허경영 대선후보와 자칭 우주신 채널러인 빵상 아줌마 황선자 씨를 둘러싸고 유행했던 종교 패러디 놀이와 비슷하다. 종교적 요소를 묘하게 비틀어 차용한 놀이이기에, 종교 패러디 놀이는 우리로 하여금 종교의 진정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만든다. 또 한바탕 즐거운 패러디 놀이를 통해 종교는 물론 나아가 우리 사회의 현실에 피식 실소를 짓게 만든다. 냉소는 단순한 자조가 아니라 변화의 힘이다. 그렇기에 2012년 종말론의 유행과 이를 둘러싼 놀이적 현상은 현재의 병적 징후라기보다는 미래의 향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김윤성_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조교수 jssance@paran.com
공저로 <<종교전쟁>>, 공역으로 <<신화 이론화하기>>(브루스 링컨) 등이 있고, 논문으로 <인지적 종교연구, 그 한계와 전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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