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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땅에도 법열(法悅)의 바람이...
2009.12.8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와 함께 서구의 문명을 일구어온 유럽대륙에 지리상의 발견 이후 낯선 아시아의 종교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17세기부터 전래되기 시작한 불교가 그 중의 하나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인은 유럽인으로 불교인은 아시아인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구도는 현대로 접어들면서 놀랄 만큼 바뀌었고 또 바뀌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그리스도교만의 대륙이 아니며 아시아는 더 이상 불교나 유교만의 땅이 아니다.
불교전통의 한국에 유럽의 그리스도교가 대중의 종교로 등장하게 된 것과 유사하게 20세기가 지나면서 그리스도교 전통의 나라 독일에 아시아의 불교가 시민종교로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종교를 수용하는 방법이나 동기가 같을 수는 없기에 그리스도교에서 불교로 불교에서 그리스도교로 전환되는 종교의 이동은 흥미로운 비교의 대상이 된다. 독일 불교의 역사는 크게 다섯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단계는 불교가 이성적 종교로 받아들여진 시기다.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17세기 이후 19세기 까지는 유럽과 아시아 간에 여행로가 개척되면서 세일론, 버어마, 타일랜드 같은 남방의 상좌불교 (테라바다)가 독일에 수용되었다. 당시 불교를 소개한 주역들은 대체로 철학자, 학자, 예술가 등으로 대학교육을 받은 중산층이었다. 그들에게 불교는 이상적인 철학과 윤리로 이해되었고 불교의 세계관과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의 대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기서 근본불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모토 아래 '신불교(Neubuddhismus)와 고불교(Altbuddhismus)'라는 '독일 불타론'이 나오게 되었다.
둘째 단계는 1946-1964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강압에 의해 폐쇄되었던 불교 공동체들이 재정비하여 일어났던 시기다. 재건에 중점을 두었던 이 단체들은 역술사업에 매진했고 강연회나 세미나를 통하여 불교를 대중 속으로 가져갔다. 당시에 다양한 불교 공동체가 결성되었고 현재 가장 큰 규모의 독일불교연합회(Deutsche Buddhistische Union)도 그때 창설된 것이다.
셋째 단계는 1964-1977년으로 불교가 명상과 수행의 종교로 대중화된 시기다. 이때 선불교와 팔리불교, 그리고 아리야 마이트레야 만달라(Arya Maitreya Mandala) 공동체를 통하여 불교의 명상과 수행이 독일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중산층 시민들이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요가·명상·선수행 등을 실천하였다. 이 시기에 불교 신자들이 크게 늘어났는데 자본주의 경제가 낳은 영성의 빈곤이 불교의 명상과 수행을 통해 회복된 시기였다.
넷째 단계는 1977-1991년으로 티벳불교가 발전한 시기다. 티벳불교는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 전래되었으나 독일에는 1973년 달라이 라마가 독일을 방문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77년부터 독일에 들어온 티벳 승려들이 강연회·세미나·명상코스 등을 통해 티벳 불교를 독일 전역에 알렸다.
마지막 단계는 1992년 이후로 앞에서 살펴본 불교의 여러 다양한 종파들(상좌불교, 대승불교, 티벳불교)이 초종파적인 이해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발전한 시기다. 이 시기의 특징은 불교개념의 독일화 작업에 있다. 불교전래 초기부터 시작한 불교의 독일화 운동은 이 시기에 이르러 문서와 문화를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된다. 불교의 팔리용어가 독일어로 정착되었고 수입된 불교가 아시아 문화의 옷을 벗고 원시불교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고 있다.
독일의 불교역사는 독일인들 스스로가 만든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즉, 독일에 불교가 수용되고 전파된 것은 독일인들의 자발적인 관심에 힘입은 것이다. 필자도 뮌헨에 있을 때 경험했지만 독일에 있는 불교공동체의 신자들은 종단의 전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자가 된 사람들이다.
간디는 종교는 장미꽃과 같다고 했다. 벌과 나비는 향기를 맡고 꽃을 찾아온다. 따라서 향기가 없는 꽃은 벌과 나비를 초대할 수 없다. 21세기 게르만 땅에는 어느 때보다 강한 영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법열(法悅)의 향기를 실은 바람이다.
김명희_
서강대 종교연구소 연구원 myonghee3014@yahoo.co.kr
주요 논문으로 <종교간 대화에 관한 폰 부뤽의 해석학>,<원효 화쟁론의 해석학적 접근-종교대화원리를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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