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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종교학적 탐구: 이 땅의 새 종교를 찾아서
- 2009 하반기 심포지엄 안내 -

2009.11.10



함석헌(1901-1989)을 20세기를 대표하는 한국 사상가로 꼽는데 크게 주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록 체계적인 저술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저작과 말씀 (저작집30권) 속에는 아주 다양하고 심층적인 사상의 스펙트럼이 펼쳐있다. 그의 사상은 민중/씨, 개혁/혁명/진화, 비폭력 평화사상, 전체주의(전체론 holism), 세계주의, 생명사상, 종교관/신관, 국가주의/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해석과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그가 역시 부각시킨 ‘민중’의 진화한 형태로서 내세운 ‘씨’ 개념 및 사상은 동서사상의 핵심을 융화시킨 구조를 나타낸다. 분야 면에서 그의 관심은 역사학, 종교학, 철학, 문학, 사회학, 심리학, 과학, 언론의 영역에 접하고 있다. 그야말로 진정한 고전적 인문학자로서 근래 논의되는 통섭과 융합의 마지막 고전적 모델이다.

나아가서 함석헌은 단순한 지식인으로 머물지 않고 민족이 겪어온 치열한 고난의 역사를 앞장서서 살아온 실천가였다. 그의 주장과 사상은 단순히 머리속에서 생각해낸 것이거나 남에게서 배우거나 읽은 것이 아니고 수난의 역사 속에서 길어 올린 경험론에서 나온 교훈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험난했던 20세기 후반부에 민중시대를 열면서 비폭력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서 시대정신을 펴고 몸소 보여준 시대의 양심으로 우뚝 섰다.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그를 넘어선 지성은 별로 없었다.

그런 함석헌에게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가치체계를 뽑으라면 그것은 단연코 종교이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모든 가치체계 중에서 궁극적이고 가장 중요한 가치를 대표한다. 그에게 다른 가치들은 종교적 가치에 종속된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는 ‘종교’의 차원에 접속하지 않고서는 그 본질적 근거와 가치를 잃는다. 동양전통에서 종교는 서양전통에서 분리된 철학, 종교, 신학을 다 아우르는 통칭이다. 유교와 힌두교, 불교, 도교는 철학이며 종교이다. 동양전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석헌을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그는 동양 철학/종교 전통의 근간인 종교들의 사상과 경전을 두루 섭렵하고 새로 해석하면서 기독교와 서양사상에 접목시켰다. 따라서 그는 동서를 아우른 철학자, 종교가, 종교철학자, 역사철학자였다.

함석헌은 그의 강설과 담론에서 무엇보다 종교에 관심을 크게 두고 종교적 가치관을 우위에 두었다. 그런 만큼 그에게 가장 적합한 칭호는 ‘종교인’이다. 실제로 그는 (기독교)신앙을 가졌지만 단순한 전통적인 신앙인은 아니었다. 어서 그는 개신교에 속했지만 나중에는 무교회주의, 퀘이커신앙에 몸담으며 신앙의 역정을 거치면서 실험했다. 함석헌의 신앙은 그만의 독특한 것이다. 그의 종교관, 신관, 생명관은 한 종교를 넘어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것이다. 외래종교인 불교가 원효를 통해서 토착화하였듯이 기독교도 함석헌을 통해서 토착화했다.

함석헌의 말씀에 깔려있는 논리와 윤리는 서양을 넘어 동양, 나아가 한국의 전통적 사유에 뿌리박은 보편적인 것이다. 그의 사유 속에서 동서를 대표하는 두 종교 즉 불교와 기독교가 회통, 조화된다. 서양 사람들이 이제 그 길을 걷고 있다. (한 미국 종교신학자는 “불교를 모르고서는 나는 기독교인으로 설 수 없다”(폴 니터)고 말한다.) 오늘의 표준으로 함석헌은 종교다원주의자에 속한다. 함석헌이 다원주의적 입장을 천명하고 강조했는데도 오늘 한국인의 종교의식은 다분히 배타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화하는 서양인의 종교의식에 한참 뒤져있는 게 현실이다.

함석헌은 현실에서 실천되는 종교전통에 만족하지 않고 참 종교, 새 종교를 모색하고 주장했다. 종교의 개혁/혁명/진화를 강조했다. 역사, 생명, 사회가 정체하지 않고 진행, 진화하고 있는 만큼 종교도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낡은 종교는 벗어서 역사의 박물관에 걸어라!”(「새 삶의 길」)

그 외침(1959)이 울린 지가 꼭 반세기가 지난 지금, 제도 종교와 종교인의 의식은 새로워지기는커녕 더 낡아졌다. 시대가 몇 번 바뀌어도 “새 술은 새 부대(술통)”라는 지시는 한갓 외침일 뿐이다. 마치 정치의식의 수준을 닮은 모습이다. 종교가 정치를 견인, 계도해야한다는 함석헌의 경고를 무시하고 거꾸로 부화뇌동하고 이끌려가는 현실이다. 나아가서, 교리화한 조직종교가 과연 우리를 행복과 구원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인가? 종교가 그 목표인 인간 해방과 구원으로 이끄는 디딤돌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고 자유를 빼앗는 걸림돌이 되어있지나 않은지 물어야 한다.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종교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벌인다. 스쳐지나가는 말로만 듣던 함석헌의 종교관이 그 전체 모습을 전문가의 눈으로 재구성, 평가 되는 마당이 다. 명망있는 종교연구 두뇌집단과 함석헌 연구의 중심에 섰던 학자들이 모여서 하는 본격적인 집단연구는 거의 최초이다. 그동안 함석헌 연구는 그를 한 종교나 교파신학의 울타리에 가두어놓은 셈이었다. 이제 좁은 교파나 종파의 테두리를 넘어 함석헌을 객관적인 큰 맥락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번 마당이 그 단초를 열 것이다.

이 평가과정에서 함석헌이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가 극명하게 들어나고 새롭게 해석될 것이다. 함석헌이 늘 강조한 정신과 영성이 빠진 이 물질만능 물신주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함석헌이 이미 가리켜 준 길 말고 딴 대안이 있는가.

김영호_

인하대 명예교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자문위원 yohokim@hotmail.com

주요 논문으로 <함석헌의 비폭력 평화사상과 그 실천전략>,<평화,화해,통일의 원리를 찾아서-틱낫한과원효의 불교사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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