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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와서
2009.11.3
우리를 싣고 갈 차가 좀 늦게 도착을 했지만 전라도 해남으로 향하는 길은 깊어가는 가을날의 풍경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기나긴 시간 달려 도착한 대흥사는 매표소에서 산사로 향하는 길이 맑은 시내와 굽은 산등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넘어 길을 곧 가야하는 가을 석양이 산허리 7부 능선 위를 비추며 우리를 산사로 빨리 오라 재촉하였다. 석양과 단풍이 함께 연출한 황홀함에 우리 모두는 서방정토의 구도자가 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산사의 옛길을 따라 송림과 잡목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걷자니 한나절 차를 타고 오며 느꼈던 피로가 한순간 날아가는 듯하였다. 계곡사이에 있던 출렁다리는 속세의 출렁거리는 시름들을 계곡물 속에 잠시 버려두라는 게 아니었을까.
숲길을 따라 처음 도착한 곳은 대흥사의 일주문이다. 세간과 출세간을 가르는 경계에 선 일주문은 세상의 번뇌를 끊고 사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통로이다. 속(俗)과 성(聖)을 가르기도 하지만 안과 밖을 연결하기도 하는 이 문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으며 늘 열려있는 문이기도 하다.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 입구로 들어서는 길은 여느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다. 어느 사찰이나 악귀와 잡인들을 물리치기 위한 사천왕들이 절 입구를 지키고 있지만 대흥사 입구에는 문수보살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두륜산 아래에 위치한 대흥사는 두륜산과 월출산이 좌청룡 우백호의 역할을 하여 잡귀들이 들어올 수 없는 지형이라고 한다니 새삼 다시보이기도 하다.
템플스테이를 위해 우리가 묵은 숙소는 심검당(審檢堂)이었다. 마음을 두루 살펴 깨달음에 이르라는 장소에서 묵을 생각을 하니 발을 들이미는 순간부터 마음가짐이 곧게 서는 느낌이다. 황토색으로 염색한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모두를 마주하자니 바깥에서는 서로 다른 개인이었으나 이곳에서는 너와 나가 구분이 없는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갖가지 나물반찬에 슥슥 비벼 간소하게 저녁공양을 마치고 드린 저녁 예불은 조용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함께 시작되어 저마다의 상념을 싣고 고요히 하루를 마감하였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우리를 맞이해주신 무인스님과 차담시간을 가졌다. ‘발없는 덕성의 향이 천리를 날아 사람을 불러 모은다’고 했던가. 무인스님께서 다관을 기울여 우린 녹차를 따르자 은은한 향에 옹기종기 둘러 모여 잡담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역사는 불교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이야기하며, 임진왜란 때 승병들을 모아 역사를 세우는데 함께 했던 서산대사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초의선사의 이야기가 오가고, 무인스님은 템플스테이에 기독교인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스스로 수도하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들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사회는 이미 외래적 심성이 지배해 한국적인 맛이 갔다는 무인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종교문화의 현실과 종교학도로서의 책무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저녁 9시경에 첫날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지만 자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산사에서의 밤은 고요하고 청명하여 쏟아지는 별들을 보고 있자니 우주의 중심에 내가 서있는 듯하다. 아름다운 밤하늘에 어느새 기분이 좋아져 낯선 곳에서 뒤척이지도 않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새벽3시가 되어 맞춰둔 알람이 울리고 밖에서는 청아한 목탁소리가 산사의 정적을 깨운다. 새벽예불 시간, 새벽을 알리는 도량석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 둘씩 법당에 모였다. 법고(法鼓)를 비롯한 사찰 사물소리가 멈추자 예불이 시작되었다. 다게(我今淸淨水...), 칠정례(지심귀명례....), 독경(반야심경, 천수경), 참석자에 대한 축원과 발원, 108배를 마치고 ‘모두 성불합시다’라는 인사로 아침 예불을 마무리하였다. 아마도 스님이 우리를 위해 많은 축원과 발원을 하느라 평소와는 달리 꽤 많은 시간(1시간 반이나)을 잡은 것 같다.
이후 아침공양을 마치고 이른 아침 일지암(一枝庵)으로 향했다. 심검당에서 동남으로 난 오솔길을 30분쯤 걸어 들어가면 차의 명인이라고 불리웠던 초의 선사가 기거한 일지암이 나온다. 차문화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일지암에서 무인스님과 함께 방금 덖어낸 차를 마시자니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그 맛에 마음의 시름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일지암에 서 차를 마시고 북미륵암을 들러 미륵상과 부처님손바닥위에 세워진 삼층석탑 그리고 호랑이 두 마리가 있는 산신각을 둘러보고 하산하였다. 하산하는 길에 대웅전에 들러 김정신교수로부터 공포랑 단청 등의 한국사찰 건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번 탐방에서 김교수님의 이야기는 변규백 선생님의 한국불교음악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쉽게 들을 수 없는 불교문화에 대한 것이기에 나는 한 몫에 불교문화 상식이 많이 늘은 것 같았다. 새벽3시에 하루를 시작해서인지 다시 숙소로 돌아와 준비해간 불교관련 세미나까지 마쳤을 땐 겨우 점심때가 지났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입었던 수련복을 각자가 손수 빨아 널고 내가 다녀간 자리를 무(無)의 자리로 만들고 나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대흥사에서 보낸 1박2일은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체험이었다. 이곳에서는 너라고 불리웠던 내가 있었고 새로운 나의 만남은 새로운 문화와 종교를 만나는 체험이기도 하다. 타자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같은 심성을 갖고 있다면 ‘다름’이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종교간의 분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교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내가 있어 우주가 있고 관계가 생긴다는 말이다. 내 마음 가짐이 어떠냐에 따라 주변과 세상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
김진경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간사 mysky2k@naver.com
한신대 종교문화 석사. <『삼국유사』에 나타난 관음의 여성적 이미지>라는 석사학위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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