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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연구자의 독백
2009.9.8
대체로 학위를 받은 종교 연구자는 종교 현장에 나가 활동도 하지만 대체로 종교 연구를 통한 학문적 활동을 하며, 그냥 자위한다. 일부 연구자는 그런 자위 상태에 머물지 않고 대학에서 종교 관련 강의를 하기도 한다. 이미 특정 교육기관에 자리를 잡은 종교 연구자에게 강의가 직업이라고 쳐도, 그렇지 않은 종교 연구자들에게 학교 강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되물어본다. 우리는 도대체 왜 대학에서 학생에게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고, 또 강의를 하려고 하는가? 나름대로 종교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방법 등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대학 강의라는 제도적 장치를 활용하여자신을 사회적 안전망에 편입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야말로 종교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 때문인가?
종교연구가는 신앙공동체에서는 자신의 신앙을 해체시킨다는 비난을 받고, 학문공동체에서는 객관적인 학문을 왜곡시킨다는 비난에 자주 직면한다. 그런 협공에서 자기 정당성을 어떻게 세워나가야 할 것인가? 종교 연구자가 강의하는 이유에도 제도적 차원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나름대로 복잡한 이유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종교 연구자가 대학 강의에 참여해야 하는 모종의 현실을 우리가 인정해보자. 그렇다면 종교 연구자는 종교학 관련 강의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을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종교 연구자가 대학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강의 목적 또는 교육 목적을 정하고 그 강의 내용과 교수-학습 방법과 평가 방법을 정한다. 이것을 강의 설계라고 하자. 그런데 강의 설계가 강의에 참여할 학생들의 다양한 상황을 점검해보기도 전에 이루어진다. 아니 대체로 강의 설계는 학생들을 만나보기도 전에 정해진다. 종교 연구자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강의 설계를 하는 것인가? 또 도대체 왜 강의 목적, 강의 내용, 교수-학습 방법, 평가 방법 등을 그렇게 정한 것인가?
종교 연구자는 자신의 강의 설계, 즉 강의 목적, 내용, 교수-학습 방법, 평가 방법 등을 스스로에게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는가? 가령 자신의 강의 설계 자체에 학생이 모종의 가능성을 개발할 수 있을 만한 지식이 담겨져 있는 것인가? 학생들의 경험이나 생활에 유용한 것이 담겨져 있는 것인가? 강의 설계에 향후 다양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지식의 구조가 담겨 있는 것인가? 종교라는 연구대상이 너무 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명확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종교 연구자가 강의 설계 이전에 학생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한 강의 목적, 내용, 교수-학습 방법, 평가 방법 등에 대해 스스로에게 모종의 정당성을 부여해서 자위 상태에 돌입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학생들에게는 강의 설계에 대해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종류의 문제의식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물론 이 외에도 종교교육과 관련하여 제도적으로 지적할 부분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이쯤에서 물음을 잠시 접어두자. 다만 종교 연구자가 강의를 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과 학생과 강의 설계 삼자 사이에 연관성을 감안하여, 그 틈새에 다양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지적해본다.
고병철_
한국학중앙연구원 03250@hanmail.net
주요논문으로 <한국 종무행정의 역사적 경향과 전망>, <중등학교 종교 교과의 교수-학습 방식>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현대 한국의 종교와 정치>>(공저),<<한국 종교교단 연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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