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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뛰게 하는 변화, 지리산의 야단법석

2009.9.1




지난 8월 중순, 지리산 실상사에서는 한여름의 열기만큼 뜨거운 열린 토론이 4박5일간 마라톤으로 이어졌다. '정법불교를 모색하는 지리산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는 이름의 이 세미나에는 불교계의 폐단과 실상을 지적하고 한국불교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전국에서 출ㆍ재가, 불자ㆍ비불자의 구분 없이 수백 명이 참석하였다. 내노라 하는 조계종의 무비ㆍ향봉ㆍ혜국ㆍ도법 스님이 차례로 짚어나가는 발제에 노장ㆍ소장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어울려 자유롭게 공개 토론하는, 현대불교사에서 전례 없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 법석에서는 간화선(看話禪) 수행법과 선방풍토, 종단 정치판과 승가의 세속화, 총림의 인적 폐쇄성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짚어졌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으로서 지난 5년간 전국을 발로 누빈 도법스님은, “해답을 찾으려면 우리 문제를 드러내야 했다. 곰팡이는 덮어두면 계속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출가자끼리 모여 속닥거리다 재가자가 있으면 양어가추(揚於家醜:집안의 허물을 드러냄)하지 말자 한다. 논란이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를 정직하게 드러냈다는 점이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성과다”라고 말했다.

삼보(三寶)의 하나로 존경받아야 할 스님들이 재가자들 앞에서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었듯이 이번 법석은 출가자들의 뼈아픈 반성을 촉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재가자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프론트에서 발언한 실상사 법인스님은 “신도들이 스님을 망치고 있다”며 정법불교를 바로 세우고 싶다면 비법을 하는 스님에게 공양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행자는 재가자에게 법을, 재가자는 밥을 주는 것”으로 수행자와 재가자의 관계를 밥과 법의 수수관계를 통해 설명하면서 “정법을 하는 쪽을 공양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신도들의 바른 공양운동을 제안했다. 정법과 비법의 구분은 수행을 하고 있는지, 대중을 현혹하고 있지 않은지 등 상식적 수준에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재가자에게는 불ㆍ법ㆍ승 삼보를 추앙하고 따르면서 복을 구하는 수동적 존재만이 아니라, 함께 불법을 가꾸고 정진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우는 자리였고, 참석한 재가신도들의 반성도 이어졌다. 한국불교의 문제는 사부대중의 공동책임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돌아볼 때 상대에 대해서도 참된 애정과 신뢰, 격려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불교는 본디 부처와 제자의 끊임없는 질의응답에서 탄생한 대화의 종교였다. 야단(野壇)은 중생의 삶 속이자 열린 마당을 상징한다. 도법스님은 올해 동안거 기간에 지리산 8백리를 도보로 묵언순례하며 선 수행의 새 틀을 모색할 '움직이는 선원'을 세우고, 조실로 무비스님을 추대했다고 한다. 4박5일간 펼쳐진 지리산 야단법석은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걷다가 자리를 깔고 승속의 구분 없이 허심탄회한 법석(法席)을 펼친 불교전통이 되살아난 현장이었는데, 무엇보다 그것이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긴 행보의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가슴이 뛴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꿈틀거리는 차분하지만 거대한 움직임을 보면서 한국불교의 새로운 불씨가 지펴질 것 같아 당분간 나의 촉수는 지리산을 향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얼마 전에 만난 일본 동양대학교의 이노우에 교수는 일본불교가 쇠퇴하고 있어 한국불교의 변화상을 연구하여 일본불교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털어놓은 바 있다. 한국에 ‘유교신자’라는 말이 없듯이 일본에는 ‘불교신자’라는 말이 없고 불교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생활화된 채 역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일본에 비해 그다지 세속화되지 않고 선불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불교가 신선하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다음에 그녀를 만날 즈음엔 한국불교의 변화상을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구미래_

성보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실장 / 동국대학교 강사
futurenine@hanmail.net

주요논문으로 <‘사십구재’의 의례체계와 의례주체들의 죽음 인식>, <한국불교 천도재의 중층적 위상>, <‘옷’을 매개로 한 불교 상례의 의례구조와 특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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