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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3호-석전일과 공자 기일(이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7:06

석전일과 공자 기일

2009.5.12



봄의 생동하는 움직임은 전통적인 종교력에 잘 나타난다. 기독교의 부활절이나 불교의 석가탄신일은 그 교리의 차이를 떠나 봄의 축제와 연관시키지 않는다면 이들 의례가 해당 지역에 정착되는 과정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잘 알려진 불교와 기독교 외에 유교에서도 봄은 의례로 풍성하다. 5월 4일에는 종묘대제가 봉행됐으며, 5월 11일에는 성균관에서 석전제(釋奠祭)가 거행되었다. 이러한 제례의 역사는 매우 깊은 것이지만 최근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석전제이다.

석전제는 성균관과 향교의 사당인 문묘(文廟)에서 거행하는 제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미 지난 3월 3일에 석전제를 거행한 향교들이 많이 있다. 원래 석전은 음력 2월과 8월에 처음으로 ‘정(丁)’자가 들어가는 날에 지내도록 되어 있는데 올 3월 3일이 이에 해당하는 정미일(丁未日)이었다. 그러나 성균관 석전은 이날이 아닌 5월 11일에 진행되었다. 전통적인 제향을 변경한 것인데 5월 11일은 양력으로 공자의 기일(忌日)에 해당한다.

근대에 들어와 석전의 날짜는 여러 번 바뀌었다. 1937년부터 춘추 석전은 양력 4월 15일과 10월 15일로 변경되었고, 1949년에는 다시 공자 탄일인 음력 8월 27일로 정해지고, 그 명칭이 기념석전으로 변경되었다. 1953년 이후 제향일은 다시 춘추 상정일로 복원되어 2006년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성균관에서는 2007년 가을 석전부터 성균관에서 석전제를 공부자의 기신일인 양력 5월 11일과 탄강일인 양력 9월 28일에 봉행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양력 중심의 사회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며, 이미 양력을 기준으로 석전을 거행하는 국제적 관행에 동조하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석전 날짜의 변화는 음력과 양력의 변화보다 자연의 순환에서 개창자의 생몰일(生沒日)로 전환한 데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석전은 공자 이전부터 학교에서 거행되었던 의례이다. 공자 사후 문묘에 주공이 공자보다 높은 자리에 모셔졌던 시기도 있었다. 즉, 석전은 공자의 일생보다 학교의 정기적 주기에 맞추어 선사(先師)에게 올렸던 예식이었다. 유교의 고대 경전에 의하면 개인의 탄생과 죽음이 의례일로 정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상에 대한 제사 역시 사시(四時)의 순환에 맞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경전에 없는 기제사를 사시제보다 더 중시하였다. 보편적 순환보다 탄생과 죽음의 특별하고도 개별화된 시간이 의례에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 이후 유교를 서양 종교와 비교하면서 창시자가 불명확하고 그에 대한 존숭이 약하였던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유자들의 바램이 문묘 석전일을 공자의 탄강일과 기일에 맞추도록 했을 것이다.

나는 유교의 세시력(歲時曆)을 볼 때마다 동양의 산수화처럼 사시의 흐름 속에서 개별적 존재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매력으로 느꼈다. 창시자에 대한 강조가 이런 매력을 훼손하지 않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욱_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leewk99@paran.com

주요 저서로<<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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