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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사회와 정치
2008.7.8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한 종교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다종교 국가이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가 있기는 해도 중심적인 종교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어느 종교가 그 나라의 대표적인 종교인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 한 종교가 주도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수의 종교가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모습은 그리 흔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다종교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의 종교적 중립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의 양상은 그렇지가 않다. 새 정부가 들어선 것을 계기로 하여 특정 종교의 종교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면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게 되었다. 특정 교회의 사람들이 다수 정부의 중요한 지위에 진출하여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와 관련하여서도 종교 편향적인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청와대의 한 비서관이 했다는 말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사탄의 무리라고 하면서 “이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고위 공직자가 특정 종교의 표현으로 자기의 반대 세력을 사탄이라고 지칭하여 비난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인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 특정 종교의 수사법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직자의 이런 발언은 당연히 타종교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예컨대 불교계에서는 곧바로 비난 성명을 발표하였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도 개인으로서는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신앙을 갖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종교에 편향된 태도를 갖고 발언하거나, 정책을 세우고 집행한다면 이는 큰 문제이다.
일찍이 한용운은 불교가 망한 것이 권력자와 결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 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는 항상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리고 권력자와 결탁하여 스스로 권부가 되었을 때 타락의 길로 나아갔다. 우리나라는 현재 정교분리를 표방하고 있기에,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국가는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종교인은 오로지 종교에만 전념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오로지 종교적 실천에만 전념하는 훌륭한 종교인들도 많다. 하지만 종교도 국가나 사회의 한 구성 요소로서 종교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또 한편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종교인이 정치인에 의존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정치인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종교인을 이용하고자 하는 식으로 종교와 정치가 결탁하는 모습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종교가 궁극적인 영역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종교는 그런 자리에 서서 정치에 발언을 하여야 할 것이고, 정치는 종교의 영역을 지켜주되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법을 집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종교와 정치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최유진(경남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choiyi@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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