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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종교의 세계화를 선도한 문선명 선생
2012.9.4
통일교를 창시한 문선명은 경신년(1920)음력 1월 6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제국주의가 팽창일로에 있던 때 어느 나라도 생각할 수 없었던 3.1운동이라는 저항의 불꽃이 타오르는 일제 식민지치하의 한국에서 태어났다. 새 하늘 새 땅을 약속하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이 예견되는 시대의 조짐이라고 할 수 있다. 온갖 시련이 불어 닥친 가계의 고난은 종조부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게 하였고, 선생 또한 어릴 적부터 기독교회의 신령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체험하였다. 선생은 16세 되던 해 부활절 예수와의 영적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해원(解寃)해방성사라고 하는 소명을 받게 되었다. 유학시절 일제의 만행을 일본의 심장부에서 경험한 선생은 일제 말 귀국과 함께 신앙을 위한 고난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해방 직전 일본에서의 지하 독립운동에 관련한 혐의로 경기도 경찰부에 연행돼 일본 경찰로부터 혹독한 문초를 받는 것으로부터 선생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해방 후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탕감(蕩減)이라고 하는 고난의 길을 자초하여 평양의 대동보안서에서 반사지경에 이르도록 문초를 받는가 하면, 또 흥남에서는 2년 5개월의 참혹한 수형생활을 겪었다. 유엔군의 흥남 탈환에 의한 수감으로 부터의 극적 구출은 하나님의 섭리를 성취시키는 재출발할 수 있는 소명이 다시 주어진다. 이것을 두고 통일교인들은 현재에도 하나님 섭리에 의한 구명이었다고 신앙고백하고 있다.
이후 6.25의 동족상쟁의 참상과 피로 물든 조국강산을 보고 제3 이스라엘이 되어야 할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이해한 선생은 한 서린 민족의 수난사 한 가운데서 피눈물을 흘리며 마주하였다. 선생의 남하 노정은 물론 부산에서의 부두노동, 초야은신, 범냇골 토담집 시절로 이어진 피난 생활은 재림의 소명을 받은 선생의 고난의 길이었다. 서울로 환도한 이후 선생은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면서 공생애의 출발을 시작하였다. 민족 현실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불같이 일어난 진리의 바람을 타고 당시 기독교 지식인들이 대거 입교한 것이 선생에게 또 한 번의 수난을 안겼다. 이는 동란 후 한국사회의 붕괴가 몰고 온 상실과 절망을 희망으로 맞이하기 위한 시대적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통일교인은 이를 두고 하나님의 시대경륜에 따른 피할 수없는 수난이었다고 신앙 고백한다.
그 후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그 실현을 위한 선생의 생사결단 길은 1960년 참부모님으로서의 성혼 이후 간단없이 계속되었다. 통일교인과 함께 21년간 노정의 길을 걷고, 또 걸어서 세계적인 선교에 단연 돋보이게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상가정의 완성을 통한 평화이상세계의 실현을 위해 노심초사, 종횡무진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비록 기성 기독교로부터 이단시비에 휩싸이기는 했으나 한국의 신종교로서는 최대의 성업(聖業)을 이루었다. 또한 선생 스스로가 세계적인 문제아였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세상의 이목을 받았지만 평생 펼친 평화 이상사회의 구현을 위한 세상 공사(公事)는 필설로 다하기에는 부족하기만 하다. 세상의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92 년간의 평생을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늘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참부모가 되어 참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데 매진하였다. 이제 그 힘이 소진되어 성화(聖和) 곧 영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애석한 일이나 영원한 삶을 말씀한 선생의 유지를 믿어 지금 여기에서 무형실체로 선생을 모시고 살아가고자 한다.
문선명 선생이 성화한 즈음 짚고 싶은 성찰이라면 통일교는 세계 많은 나라에서 신앙하는 세계적인 종교이지만, 통일교는 분명 ‘한국의 신종교’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에 연원을 두고 신앙의 대상은 물론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기독교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설명의 양식일 뿐 신앙 내용은 한국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통일교의 종교적 이상은 한반도 중심주의이며 한민족 중심주의적이다. 이는 한국을 하나님의 조국으로 선포하고 후천개벽을 외친 선생의 말씀뿐만 아니라 국가 간 교차축복결혼을 통해 세계적 통합을 이루고자 한 선생의 뜻이 한국적 가정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것에서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적 가정주의 나아가 하느님 혈통주의는 선생의 삶의 자리인 한국의 사상과 역사를 반영하고 있음을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다.
김항제_
선문대학교
hjbuli@hanmail.net
주요논문으로 〈통일교의 생명사상와 생명윤리〉,〈한국 신종교 창교자의 위격〉등이 있고 주요저서로 <<통일교의학
연구>>등이 있다.
* 편집자주. 문선명 선생의 업적을 되새겨보기 위해 본 연구소는 신종교 학회 부회장이면서 통일교 내부에
계시는 김항제 선생과 본 연구소의 이사장님이신 정진홍 선생의 글을 연재하기로 하였다. 정진홍 선생의
글은 다음 주에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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