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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불교” 발견과 창안

- 오리엔탈리즘 산물로서의 ‘부디즘’-

 

 

 

2012.8.21

 


불교의 영어표현으로서의 부디즘(Buddhism은 ‘부처라는 인물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형성된 방대한 사회적, 문화적 현상’의 지시어이다. 그것은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a recent invention)이다. 18세기 세속적 학문의 영역 아래 종교를 포괄하고자 했던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열망으로부터 나온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부디즘'으로서 불교를 통칭하게 되는 것은 19세기 초반, 더 정확하게는 1810-2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유럽에서 출판된 붓다에 관한 최초의 저술은 프랑스 출신 미셸 장 프랑수아 오즈레이(Michel Jean Francois Ozeray)와 독일 출신 클라프로트(Jules Klaproth)의 저술이었다.


서구에서 불교를 연구하여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1884년 뷔르누프가 ‘불교는 사실상 ‘하나의 단일한 전통(a single tradition)’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난 이후부터이다. 그는 동아시아, 티벳, 인도,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유럽의 탐험가와 무역상들이 만났던 일련의 유사한 종교형태들의 뿌리가 인도에 있는 단일한 전통에서 뻗어나간 여러 가지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불교를 기독교나 이슬람과 같은 하나의 단일하고 독특한 종교(a single religion)로서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기독교가 개신교, 가톨릭, 동방정교회 등을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은 뷔르누프의 발견이후 한 세기 동안에 불교를 연구하는 서구 학자들은 그 공통분모의 핵심(that common core)에 해당하는 불교의 본질적 특징을 묘사하려 노력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서구 유럽은 두 개의 불교 즉 ‘이상적인 불교’와 ‘현장의 불교’를 창안해냈다. 빅토리안 불교의 창시자들은 ‘이상적 불교(the ideal Buddhism)’을 전개시켜나가기 시작했고, 그 불교는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불교문헌들에 의해 구성되어 서구에 의해서 규제되었다. 그 결과 불교에 대한 독창적인 빅토리아식 이해가 출현하게 된다. 말하자면 서구에서 불교는 19세기 중반 ‘발견’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혹은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불교”는 새롭게 창조(created)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상적 불교의 창안은 문헌에 대한 편집, 번역, 연구가 계속 되면서 동양의 현지 불교의 낙후함과 비교되었다. 그래서 문헌상의 불교는 긍정된 반면, 동양에서의 불교의 현실은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불교에 대한 서구의 이 같은 담론은 19세기 전반부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불교를 본 서구 사람들은 문헌이 말하는 불교와 비교하여 현실의 불교를 평가하였고, 그 속에서 현실의 불교는 결핍, 쇠퇴, 후퇴, 타락뿐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리하여 문헌적으로 비춰진 붓다의 종교는 거의 보편적으로 호감을 주는 반면, 현실의 불교는 너무나 대조되었다. 이는 서구학자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양극화된 불교관과 거의 유사하다. 이 같은 서구의 ‘이상적인 문헌적 불교’의 창안과 현실의 불교에 대한 인식은 현실의 동양의 불교를 거절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고, 동시에 이 허약한 불교와 비교할 때 보다 진보적이며 번성하는 기독교를 선교하는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한편, 이러한 두 개의 불교의 구축(consctuction)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미부여가 가능했다. 우선 이 두 개의 불교의 생성을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산물로서 보는 견해가 있다. 로페즈는 그것들이 지닌 왜곡된 점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서구의 불교 발견은 독점적으로 문헌들(texts)로부터 이끌어내 온 개념이고, “original"한 불교를 위해서, 아시아의 실제 불교도들이 제한적, 도구적 중요성만 가지게 되었으며, 그들이 창안한 ”고전적“ 불교는 주로 승원의 엘리트 승려들사이에서만 유통되고 생산된 철학들로서, 그 ”original" 불교는 의례(ritual)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창안된 유럽의 “고전적” 불교가 이제 다시 아시아의 ‘근대적(modernist)" 불교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베이에세케 등이 지적했듯이, 스리랑카의 테라바다 불교도들은 영국의 지배와 기독교의 선교사들의 압력에 대한 저항으로 서구의 개신교를 도용하고 변형시킨 “개신불교(Protestant Buddhism)"를 전개했다. 이 모든 방법을 통해 ”불교“는 ” 특히 서구의 관심, 흥미, 아젠다를 반영하는 방식으로서 서구의 상상력에 의해 재현된“ 것이라는 것이 명확해 보인다. 그리고 서구의 관심, 흥미, 아젠다들은 근대 제국주의 권력관계 속에 내장되어 그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빅토리아 시대 유럽의 불교의 재구성은 한국의 근대불교의 재구성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검토가 부족하다. 사실상 식민지시대 일본을 통한 서구 유럽의 불교개념의 유입으로 인해 근대 한국불교는 개혁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전통의 일부를 부정해야 하고, 새로운 이상에 맞춰 갱신해나간 것이 아닌지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이 때 작동한 이상적 불교의 이미지와 부정해야 할 자기 스스로의 부분이 어떻게 상정되는지, 그 내면에 작동하는 기제가 바로 서구에서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적 불교의 이상을 자기에게 스스로 투영하고 있지 않은지를 면밀하게 살펴볼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두 개의 불교의 구성은 단지 불교가 하나의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적 산물로만 볼 수 없으며, 다른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필립 알몬드는 유럽에서 발견되는 불교에 대한 시각은 당시 영국의 세속화와 다원주의의 풍조의 도래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불교가 단지 동양의 심성이라고 하는 서구의 이미지를 통해 구축되거나 해석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불교는 빅토리안 유럽의 19세기의 이상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불교에 대한 담론은 빅토리안들의 창조론과 우주론, 성서와 생물학, 유신론과 무신론, 허무주의와 불멸성, 그리고 인간 본성의 본질과 같은 주제에 대한 논란을 반영하기도 하고 또 그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에서의 불교(부디즘)의 발견 혹은 창안이 동양의 전통적 불교인들에게 가져다 준 변화와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불교’라고 하는 전통적 용어에 미친 의미의 변일 것이다. 본래 아시아의 불교도들이 그들의 종교를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했던 불교를 의미하는 용어들(terms)은 훨씬 제한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즉 Dharma, Buddha's message, Buddha's way 등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를 부처의 가르침과 삶의 길로서 간단하게 생각했다. 최초의 불교자료들은 그것을 Dharma-Vinaya, Doctrine and Discipline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 동양의 불법과 계율(Dharma-Vinaya)은 삶과 실천의 길을 장려한다는 의미에서 규범적인(prescriptive) 반면, 서양의 Buddhism은 서술적(descriptve)인 것이었다. 즉 ‘불교’는 과거에 하나의 규범적 용어로서 자신이 따라야 할 바른생활의 준칙, 윤리적 덕목의 개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불교’는 하나의 서술적 개념으로서 세계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존재하는 사회적, 문화적 실체를 일컫는 통칭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더구나 서구사회에서 형성된 불교의 개념을 들여다보면 경전과 그 경전의 창시자인 붓다를 중심으로 한 매우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내면의 정신을 강조하는 불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동양에서 오래 지탱되어 온 수 많은 의례적 요소와 재가신도들의 역할을 감소시키는 현실과 동떨어진 불교개념인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암시하는 것은 여러 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아시아의 불교도들에게는 유럽 학자들이 다루었던 문헌들은 접근 가능한 것들이 아니었으며, 의례행위에서 그다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유럽이 주도한 불교 개념은 사이드가 부른 “패러다임적 화석화”거나 ”불교“라고 부르는 상상적 단일체의 지식으로서 표상될 수도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이 고급문헌의 해독 능력에 의거한 불교만이 바른 불교요, 본래의 불교라고 하는 의식은 일본 불교학을 통해 오늘날 우리 한국의 불교이해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근대 한국불교의 형성에도 역시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창안한 이상적 불교와 현실의 불교의 대비는 아시아와 피식민지의 불교도들이 자신의 전통을 ‘종교와 미신’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스스로를 비판하고, 그 일부를 개혁하려고 한 주요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텍스트 중심으로 불교담론이 발전하면서, 살아있는 다수 민중들의 의례 중심성, 실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그것을 비불교적이며 미신이라 비판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근대 한국불교의 개혁과 재구성 노력이 일정 부분 한계가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서구의 시각에 의해 주도된 불교담론을 통해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용운의 불교개혁 담론은 오리엔탈리즘에 저항하면서도 오히려 그 틀에 의해 규정되었음을 드러내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songcloud@naver.com


논문으로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현대 한국불교에불의 성격에 관한 연구>등이 있고, 저서로《봉암사결

사와 현대 한국불교》,《근대 한국 종교문화의 재구성》(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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