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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통일에 대한 새로운 후천개벽을 기대하며
2012.8.28
19세기 말 20세기 초엽은 문명개화와 식민지화가 진행된 한국사회의 격동기였다. 당시 유교와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들은 자기 앞가림도 못해 자기 개혁에 정신이 없었고, 막 전래된 개신교는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던 시기였다. 종교로 보면 당시의 개신교는 일개 신종교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 격동기에 문명개화를 주체적으로 추진하고 식민지화에 저항하며 역동적으로 활동하던 우리사회 주도종교들이 바로 동학과 증산교를 비롯한 근대 신종교들이었다. 서세동점과 전통사회의 해체라는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한국의 지성들은 다양한 대처방안을 들고 나왔다. 마치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와 같이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이들 지성들 가운데 신종교 지성들은 하나 같이 현세의 종말과 미래 지상천국을 대망하는 후천 개벽사상을 들고 나왔다. 이 후천 개벽사상을 신앙의 기본 틀로 삼고 등장한 것이 바로 한국의 근대 신종교들이다. 민중의 애환만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가 그 속에 녹아 있다.
신종교의 핵심사상인 개벽사상은 전통적인 민중신앙과 참위론적(讖緯論的) 운세론(運世論)을 기반으로 형성된 우주론적 역사관이다. 인간의 상상력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 속에는 서구 근대성과는 전혀 다른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성향 즉, 성속융합(聖俗融合), 영육쌍전(靈肉雙全), 교정일치(敎政一致), 정신과 물질의 조화, 종교와 경제의 결합, 모든 종교와 사상의 통합 등 통합과 조화를 지향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는 초월적인 세계나 내세(來世)가 아니라 인간의 현세 삶의 공간에서 이상사회를 대망하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을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성향을 담은 근대 신종교들은 문명개화와 식민지화가 동시에 진행된 근대 공간에서 한편으로는 서구 근대성과 서로 충돌과 타협을 일으키며 식민지적 근대성이라는 독특한 수로를 타고 나름대로 흘러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 정체성 논리를 각성시키는 불씨로 작용하여 식민지 권력에 저항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전자의 흐름에서는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과 사회개화사상이 그렇고, 증산교의 천지공사(天地公事)와 해원상생(解寃相生)사상이 그렇다. 후자의 흐름에서는 대종교의 중광사상(重光思想)과 민족독립운동이 그렇고, 증산교의 원시반본(原始返本)과 조선중심의 개벽이 그렇다.
근대 신종교의 개벽운동은 각 시기에 따라 근대성을 수용하기도 하고(문명화의 시도), 그에 저항하기도 하면서(식민지화에 저항)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다. 개항기 사회변혁을 추구한 동학의 동학혁명에서부터 일제 침탈기 보천교의 왕정복고에 이르기까지 개벽사상은 민중의 열망을 반영하면서 자기 모습을 달리해왔다. 동학은 민중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변혁에 치중하였고, 정역은 선천과 후천의 교역과 새로운 이상세계의 도래에 대한 역리적 근거를 제시하였으며, 증산교는 동학혁명의 실패로 인해 실망한 민중들에게 희망을 부여하는 예언성과 강력한 종교성을 가진 민중종교의 역할을 하였고. 대종교는 일제가 조선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자 단군신앙을 체계화하여 민족종교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동학을 개신한 천도교는 문명개화의 물결이 밀려오자 근대 문명화된 종교를 지향하였으며, 원불교는 일제 통제 내에서 개벽의 이상을 실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실용적인 생활종교로서의 특성을 보여 주었다.
이 같이 근대 신종교들은 사회적 성격이 강한 변혁의 민중종교로 출발하여 근대적 종교로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문명화된 근대종교로는 정착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개벽사상의 집단 정체성 성향으로 인하여 일제가 정교분리의 명분으로 활동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와 유교와 같은 전통종교의 근대화나 기독교와 같은 근대종교로서의 정착은 아니지만 제3의 근대적 종교로 정착하여 이 땅에 저항적 민족주의 형성에 기틀을 제공하였다.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나 근대 개혁을 추진한 전통종교들이 포괄해 낼 수없는 영역, 즉 민족의 정체성을 종교화하거나 문화적으로 담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한편, 일제는 신종교를 민족적 성향이 있다하여 1915년 포교규칙 반포를 통해 유사종교로 규정하고 종교의 영역에서 배제하였다. 이에 저항하여 근대 신종교들은 문명화의 논리보다는 식민지 권력에 더 저항하게 된다. 근대 신종교들은 일제가 인정하는 불교. 기독교, 신도에 기생하거나 근대 종교개념에서 파생된 미신이나 유사종교로 취급받아 해체당하거나 지하로 잠복해 있다가 해방을 맞이한다. 그러나 해방을 맞이한 남쪽의 해방공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미소 전승국들은 패전한 일본을 분단시켜야 함에도 한반도가 일본을 대신해서 분단되었고 그런 민족 분단을 정당화한 것이 냉전체제의 논리였다. 그 냉전체제의 논리에 기독교가 선봉에 섬에 따라 기독교는 명실 공히 해방공간에서 한국사회에 주도종교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반공과 민족이라는 대립구조 속에서 민족적 성향이 강한 이전의 전통적인 근대 신종교들은 동족간의 6.25 전쟁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활동공간을 상실하고 민족 분단의 책임자를 찾아 투쟁하고 성토하는 동력마저 상실하고 만다. 그 반면에 개벽의 논리는 한국적인 기독교의 옷을 입고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비록 미국적인 기독교로부터 이단으로 시비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들은 당당히 개벽의 이상을 계승하며 당시 기독교계를 지배하였다. 전도관(박태선), 통일교(문선명), 용문산 기도원(나운몽) 등이 그들이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세계 10대 국가 대열에 들어섰다. 더불어 정치적으로도 사회 민주화를 성취한 남부럽지 않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00년 전 개벽의 꿈을 실현하지 못해 상처 받은 기억들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 동안 잠자고 있는 이 후천개벽의 꿈을 다시 일깨워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 항일에만 자신의 정당성을 찾을 것이 아니라 민족의 공동체를 생각하며 민족통일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에 자신의 정당성을 두는 한국 종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가. 지금이 미래 통일에 대한 새로운 후천 개벽이 필요한 때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본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논문으로〈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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