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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종교”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며

 

 

2010.10.30

 

 


<종교문화비평> 22호(특집: 한국 "근대종교"의 탄생) 권두언


지령 22호를 맞이하는 본지는 “근대종교”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하였다. “종교와 근대성”의 주제는 《종교문화비평》의 첫 물음이었다. 2002년 4월에 발간된 본지의 창간호 특집 주제가 “한국사회의 근대성과 종교문화”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종교 문화에서 근대성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허례허식, 종교 자유, 시간성, 여성에 대한 근대적 담론 등을 다루었다. 그후에 2003년 제 4호의 ‘종교와 근대성’, 2005년 제 7호의 ‘한국 근대와 종교적 지식의 형성’ 등과 같이 근대성에 관한 논의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근대성이란 주제는 특집에서 사라졌다. 그 동안 사이버 공간, 스포츠, 원시종교, 비교, 인권, 정치, 인지과학, 죽음, 신화, 동물 등이 다양한 주제들이 특집의 창을 두드렸다. 개항의 시점에서 벗어나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적 문제와 조우하면서 비평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였다.


이런 가운데 다시 등장한 ‘근대’라는 주제에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호기심과 기대를 감출 수 없다. 이전과 동일한 물음인가? 근대성에 갇힌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날기 위한 하나의 도약일까? 이러한 물음을 읊조리며 근대 종교의 지평을 열어본다.


이번호의 주제인 “한국 ‘근대 종교’의 탄생”은 근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세계 종교’에 관한 반성적 이해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종교일반이나 근대성에 대한 논의보다 ‘불교’, ‘유교’, ‘기독교’ 등 개별 종교 전통의 아이덴티티 단위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맥락, 그리고 효과에 관한 탐색이다. 그리고 ‘탄생’이란 표현에서 짐작하듯이 이러한 종교의 정체성은 근대 이후에 생긴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기독교, 불교, 도교, 유교 등 각 종교들은 원시시대로부터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금 당연시 여기는 세계 종교의 모습들이 이전의 전통과 구별된 근대라는 새로운 아버지에 의해서 태어난 것임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장석만의 < ‘종교’를 묻는 까닭과 그 질문의역사: 그들의 물음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던지는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 개념이 근대에 생긴 것이라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이어지는 ‘종교’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서구의 종교 개념에 거부하며 반성하고자 했던 월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조나단 스미스(Jonathan Z. Smith), 러셀 맥커쳔(Russell T. McCutcheon), 리처드 킹(Richard King), 아사드(Talal Asad), 피츠제랄드(Timothy Fitzgerald), 케빈 쉴부라크, 발라강가다라(Balagangadhara), 만다이어 등 여러 학자들의 문제의식을 소개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근대 이전에 널리 통용되었던 ‘교(敎)’와 근대 이후 종교 개념과의 상호비교를 통해 근대 종교의 창출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진구의 <한국 개신교 지형의 형성과 교파정체성: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를 중심으로>는 근대 기독교를 가톨릭과 개신교라는 기존의 전형적인 분류에 머물지 않고 여러 교파로 이루어진 개신교의 내부의 교파 정체성을 고찰하였다. 즉, 해방 이전 한국 개신교의 주요 교파였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가톨릭에 대한 인식과 상호 인식을 다루었다. 개항 이후 내한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교파교회’의 배경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에 의해 이 땅에 교파교회가 성립되었다. 이들 교파교회는 ‘근대종교’의 모델로서 한국의 종교 문화를 변화시키는 주역이었다. 개신교 교파들은 가톨릭에 대해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자기 우월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상호 인식에서는 연대와 경쟁의 긴장관계를 보여주었다.


김순석의 <근대 유교계의 지각변동: 대동교 만들기를 중심으로>는 조선시대 사회 지배이념으로 있었던 유교가 국권 상실의 위기 속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구 과학 문명을 수용하고 부국강병의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대동교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필자는 개항 이후 유교계의 흐름을 위정척사파, 개화파, 동도서기파로 구분하고 대종교를 동도서기파의 주요 운동으로 위치지었다. 그리고 대동교 운동의 주요 인물인 박은식과 장지연의 종교에 대한 이해와 사회인식, 그리고 대동사회의 이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송현주의 <서구 근대불교학의 출현과 ‘부디즘’의 창안>은 유럽인들이 아시아의 불교를 접하고 연구하면서 만들어낸 불교학의 정체와 그 파급 효과를 고찰하였다. 이에 의하면 부디즘이란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서구에 의해 1810-2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문헌을 중심으로 이해한 유럽의 불교학은 ‘고전불교, 순수불교, 원시불교, 근본불교’ 등으로 명명되는 이상적 불교를 창출하였는데 이것은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의 결과물로 해석될 수 있다. 상상을 통해 ‘이상적인 불교’를 재구성하고, 그 결과 동아시아 ‘현실 불교’를 낙후하고 변질된 불교로 간주하는 관점을 생산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유럽에서 창안한 이상적 불교와 현실 불교의 대조는 아시아와 피식민지의 불교도들이 자신의 전통을 비판하고 개혁하는 주요 근거가 되었음을 필자는 밝히고 있다. 또한 ‘불법(佛法)’, ‘불도(佛道)’, ‘불설(佛說)’ 등의 용어와 같이 사용된 근대 이전 아시아 불교와 근대 이후 서양에서 형성된 ‘불교’의 의미상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윤승용의 <한국의 근대 신종교, 근대적 종교로서의 정착과 그 한계: 개벽사상을 중심으로>는 한국 신종교의 개벽사상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 전개 과정을 살핀 논문이다. 개벽 사상은 동학, 증산교, 대종교 등 근대 한국 신종교를 발흥시키고 이끌어온 중심 교리이며 에너지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집단 구원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는 개벽 사상은 정교분리를 강요하는 근대사회와 근대 종교담론에 저항하면서 생존해야 했다. 전통 종교들이 담아내지 못한 민족의 정체성을 어떻게 담아내었는지 이 글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호에는 두 편의 연구 논문을 실었다. 먼저, <최근 한국 기독교의 아버지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착한’ 가부장주의를 중심으로>는 현대 한국 기독교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육친의 아버지’ 재교육 프로그램에 나타난 아버지상을 다룬 논문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경제적 위기와 탈산업화 과정에서 아버지의 위상이 흔들리자 가정의 문제를 아버지의 문제로 간주하고 실추된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하고 바람직한 아버지상을 찾기 위한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새로운 아버지상은 ‘착한 가부장’, ‘온정주의적 가부장주의’로 규정하고 여기에 잔존한 가부장제의 문법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고 사회 모순을 가족에 전가하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착한 가부장을 재생산하면서 교회 질서를 유지하는 개신교의 보수주의적 담론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성스러운 폭력과 희생제의의 탈신화화>는 종교 내 폭력을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모방 메커니즘과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폭력을 설명하였던 르네 지와르 등의 이론을 소개하고, 이어서 종교적 근본주의와 폭력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특히 이슬람이나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들이 폭력을 생산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폭력에서 벗어난 상생의 덕목을 논의하였다.


설림에 실린 <나의 ‘책방 서재’>은 ‘책방’이란 단어만큼이나 정감이 있으면서도 독자의 공부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다보면 분류에 둔해진다. 도서번호를 기억하고 구분된 갈래를 따라 가면 책을 찾기보다 서명이나 필자의 단어를 통해 검색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글을 통해 종교학 코너의 분류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종교 관련 책이 사라져가는 나의 서재를 바라본다.


마지막 “종교와 성물(聖物)”이란 주제는 그 동안 연재되었던 이미지기행의 후속 시리즈이다. 성물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서 종교현상을 서술하고자는 바램에서 이 주제를 선택하였다. 이번에는 그 첫 시도로 신주(神主)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성물을 통해서 그 동안 빠뜨리거나 소홀히 했던 종교 현상을 반추해보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글은 <종교문화비평>22호(9월30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



 

이욱_

 

종교문화비평 편집위원,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


leewk99@daum.net


주요 저서로는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가 있으며, 〈조선후기 전쟁의 기억과 대보단(大報壇) 제향〉,

 〈조선후기 종묘 증축과 제향의 변화〉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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