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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만을 위한 사회복지, 과연 정당한가
2012.12.18
Ⅰ.
종교와 사회복지는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말하자면 사회복지는 종교문화 가운데 전통적인 유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무심코 사회복지는 서구사회의 선진적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동양사회에서도 그동안 나름대로 종교인들이 이웃을 돌보는 일을 수행한 것이 사실이다. 산업사회의 자본주의적 폐해를 먼저 겪은 서구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동양사회에서보다 거시적이고 공공제도 성격의 사회복지 대책들을 보다 일찍 강구하게 되었을 뿐이다. 공식적인 사회복지시설의 개설이나, 지역사회 자원봉사활동의 법적 등록과 같은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예컨대 한국불교 사찰은 옛날부터 자기들의 방식대로 지역민의 救護와 扶助에 참여하였다.
지난해에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지원하여 사회복지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초조사 작업이 있었다. 그 때 필자를 포함하여 몇이서 개항기 전후부터 해방 무렵까지 각 종교계의 사회복지활동에 관한 조사를 하였고, 아직까지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원 사료들을 발굴한 바 있다.(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사회복지역사박물관 건립의 타당성 분석 및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2009.2) 특히, 개항이후 1910년대까지 불교사찰에서 설립한 지방의 보통학교가 20개소나 명시되어 있는 등, 일제강점기에 활발했던 사찰들의 육영사업들이 한국의 사회복지 역사로서는 처음으로 발견되고 논의되었던 셈이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불교사회복지를 전공한다고 하면서도 史料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당시 불교계의 역량과 기여도를 과소평가한 것이 상당히 미안할 정도였다.
더 나아가서 불교계를 포함한 모든 종교계가 과거 한국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사회복지적인 기여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단지 사회복지시설의 설립과 재정 투자의 수량적 측정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종교계와 일반사회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분석도 포함되어야 한다. 대개 사회복지는 체제수호적인 기능을 하여 왔다. 종교 역시 체제보수적인 기능이 있었다. 이 둘이 결합된 종교계 사회복지활동이 한국사회에서 종교계 안팎으로 미친 영향들을 새롭게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오래전 필자가 수행한 조사연구에 의하면, 종교인이 자원봉사나 사회복지 후원에 동참하는 행동은 신자 개인으로서나 특정종교기관 구성원으로서의 자부심에 상관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종교와 사회복지 관계성의 미시적 측면이라고 본다면, 거시적인 측면으로 특정종교가 종교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고 선교 확대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사회복지가 많이 이용된다는 점이 이미 주목된 바 있었다(강인철, 『전쟁과 종교』한신대 출판부, 2003. 참고). 그러므로 필자는 종교계의 사회봉사 및 후원 활동과 관련하여, 신자 개개인의 내면적 체험이나 종교기관의 조직적 경험에 대한 질적인 연구들을 수렴하는 것은 종교연구 혹은 종교문화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부분임을 차제에 강조하고자 한다.
Ⅱ.
종교와 사회복지는 본래부터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며, 실제로 그동안 서로를 이용하고 필요로 하는 측면을 앞에서 간단히 언급하였다. 오늘날의 경향을 토대로 해서 두 가지를 더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언제부터인가 종교계 사회복지활동이 정부나 기업의 공적 자금지원을 받게 되면서 사업비 중 순수 자기자본 투자비율이 매우 낮게 되었다는 점이다. 200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OECD 국가간 비교를 위하여 사회복지 총지출 가운데 민간투자부분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일반 사회복지시설의 정부지원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종교계 사회복지시설의 정부지원금 의존도는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고경환 외 4인, 『사회복지지출 추계를 위한 자발적 민간지출 수준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9 참고). 우리 주변의 많은 종교계 사회복지기관들이 정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되는 사실을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는 종교계가 신자들에게서 받은 기부금을 모아 사회사업을 하는 것이 관행이었겠지만, 요즘은 자체기금보다도 정부지원 즉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복지사업을 대리하면서 종교계의 체면을 내세우려는 경향이 커졌다는 점이 문제다. 순전히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사회사업을 설계하다가, 자신들이 지원조건에 해당되지 않음을 알게 되면 복지활동의 구상도 접어버리는 종교인들이 종종 있었다.
둘째로, 사회복지사업은 民官 중 누가 주체가 되더라도 공공성에 기초한 서비스 분야이다. 그러므로 복지 서비스 이용자들의 종교적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데, 특히 종교계 시설에서 응분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더군다나 종교계의 실제투자가 사업비의 대략 15% 수준(2004년~2008년 사이 종교계 사회복지시설의 총 세입 중 법인 전입금과 후원금은 도합 15% 선에 불과하다)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주체가 속한 특정종교의 상징물을 설치하거나 선교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 반성적 점검이 없는 것 같다. 사회복지사업은 소위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고 지원한다고 하면서 그 지원과 선교를 무조건으로 동반 제공하는 경우, 필자는 그것을 인권 유린에 더 나가서 정신적 학대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국내보다도 해외 사회사업 현장에서 더 공공연히 벌어지는 사태인 것 같다.
종교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신자 개개인의 자선행위는 그 바탕이 선량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집단(기관)이 자선사업에 나서게 되면, 대부분 선교측면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고 경쟁적으로 사회적 위세를 과시하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신앙심과 종교생활이 각자 삶의 의미 있는 변수요 자산일 수 있다. 신앙심으로 해서 인생에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사회복지 현장에서 서비스 지원을 매개로 主從의 관계에서처럼 강제되는 선교문화는 옳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와 사회복지의 묵은 연관성과 더불어 문제의식을 가지고, 필자 등이 2012년 11월 한국에서 ‘영성과 사회복지학회’를 발족하였다. 사회복지영역에서 종교는 외연의 좋은 울타리임에 틀림이 없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영성’을 돌보는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영성과 사회복지학회’에는 다양한 종교인들이 참여할 것이고, 종래 각자의 위치에서 가졌던 종교와 사회복지 관련 경험들과 다양한 전망들을 본격적으로 나누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종교계 사회복지 현장에서 관계자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복지영역 전반에서 ‘온전하고 영적인 복지’로 발전해갈 가능성을, 필자는 믿고 싶다.
금강대학교 객원교수
hesookl@hotmail.com
주요 저서로 <<종교사회복지>> 등이 있고, 주요논문으로 <불교사회복지 평가에 관한 연구>, <종교사회복지 현황과 과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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