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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종교문화비평학회 하반기 심포지엄 후기

 

 

2012.12.11


쌀쌀한 십이월 초하루,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주관하는 하반기 심포지엄이 열렸다. <종교와 섹슈얼리티>라는 어떻게 보면 낯선(?) 주제를 가지고 여섯 명의 발표자와 세 명의 토론자가 열띤 논의를 펼쳤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으며, 예정 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긴 시간까지도 대부분 자리를 지키면서 발표와 논평을 경청하고 토론에 참여해서 자리를 빛내주었다. 그 날의 발표와 논평, 토론을 간단히 스케치하고자 한다.


제1발표는 김윤성, <종교, 섹슈얼리티, 그리고 욕망의 두 극: 금욕주의와 탄트리즘의 경우>였다. 김윤성 발표자는 종교 전통이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해 취하는 상반된 태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금욕주의와 탄트리즘에서 성적인 욕망의 극대화와 극소화가 각각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 대조적 양상을 살피고자 하였다. 특히 김윤성의 글은, 탄트리즘이든 금욕주의든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위하여 몸과 섹슈얼리티가 중요한 관심의 초점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본문은 대부분 탄트리즘의 분석에만 할애되었으며 금욕주의는 거의 다루지 않았는데, 이후 금욕주의와의 비교와 대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윤성의 글에 대해 이현재 논평자는, ‘종교적인 것’, 혹은 ‘성스러움’과 ‘섹슈얼리티’를 같은 수준에 놓고 마치 각각이 밀접한 관련 하에 비슷하게 작용하는 것처럼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또한 신탄트리즘이 과거의 밀교 형태에서 연인, 부부관계에서 수행되는 것으로 변화된 것에 대해, 그렇다면 신탄트리즘에서 신성성은 제거되는 것이 아닌지 물음을 제기했다.


제2발표는 심형준, <섹슈얼리티의 성스러움 : 금기 너머의 더럽고 위험한 성스러움과 정상(正常) 섹슈얼리티>였다. 심형준 발표자는 최근 사드의 저서 《소돔의 120일》을 둘러싸고 일어난 해프닝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 뒤, 성스러움의 양가성에 관한 기존의 논의에 착안해서 섹슈얼리티 문제를 성스러움의 역학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특히 섹스를 둘러싼 금기 위반에 주목하면서, 여기서 소위 ‘부정의 성스러움’이라 말할 수 있는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심형준의 글에 대해 이현재 논평자는 과연 성적 음란성이 체제전복적 성격을 지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또한 발표자의 말대로 집단의 감정변화가 섹슈얼리티의 탈성화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섹슈얼리티의 인식적 탈성화가 집단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볼 수 없는지를 물었다. 또한 발표자가 최근의 경향을 탈성화(성적 해방)으로 명명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또 다른 성적 규범이 성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3발표는 박규태, <‘일본교’와 섹슈얼리티 :미시마 유키오, 천황제, 에로티즘>이었다. 발표자는 ‘일본교’ 개념을 소개하고, 일본 사회의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일본교의 미학과 섹슈얼리티의 관계양상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특히 발표자는 미시마 유키오라는 인물의 할복자살 사건을 통해 일본교의 에로티즘과 죽음의 미학을 조명하였다.

이에 대해 장석만 논평자는 이 논문에서 사용되는 주요 개념어들(일본교, 모노노아와레 등)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그것들이 생겨나게 된 맥락을 살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가령, 일본문화와 사상 전체를 일본교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서 바라보기 이전에, 그 개념과 담론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 맥락을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모노노아와레’ 개념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일본문화의 핵심으로 여겨지게 된 과정을 검토함으로써 그 개념과 경쟁했던 또 다른 개념은 없었는지 살피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제4발표는 이창익, <사랑이 조각하는 죽음의 공간>이었다. 이창익 발표자는 우선 종교가 섹슈얼리티와 갈등하는 경향을 그리스도교 수도사들과 중세교회의 사례들을 통해 살핀다.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제거를 추구하는 종교에서는 인간 관계의 모든 에너지를 종교 안으로 응집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근대사회에서는 사랑과 섹스와 결혼이 일치하는 일정한 관계형태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한 사람에게도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양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의 여/남에게 자신의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총체적 충족을 요구하는 관계는 ‘성적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결국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종교적 섹슈얼리티든 근대적 섹슈얼리티든 한쪽 방향으로 지나친 극단에 서 있기에 죽음의 공간에 근접해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장석만 논평자는, 양극단의 섹슈얼리티의 특징을 ‘과도함’에서 찾으면서 죽음과 연결시키려는 발표자의 기획이 타당한 것인지 물음을 제기했다. 또한 발표자가 ‘종교’라고 일반화하는 대상이 주로 서구 그리스도교임을 지적하고, 우리의 현실적 맥락에서는 이러한 논지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물었다.


제5발표는 안연희, <“섹스 앤 더 시티”: 섹슈얼리티, 몸, 쾌락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 다시 읽기>였다. 발표자는 아우구스티누스야말로 그리스도교가 성과 욕망에 대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심화했다는 일반적인 비판의 주된 표적이었지만 그러한 비판은 표면적 비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몸, 쾌락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당시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려고 시도하였다. 발표자는 특히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적 순결을 거룩한 이상으로 여기면서도 현실적으로 결혼이 차지했던 사회적 의미를 간과할 수 없었기에, 이러한 미묘한 긴장을 조화시킬 수 있는 신학적 틀을 수립하려고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충범 논평자는, 고대 말의 지성사, 종교사를 고려할 때, 초대기독교가 주변세계와 구별되는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강한 반-섹슈얼리티의 도구를 작동시켰다고 볼 수는 없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결혼생활과 동정생활의 위계질서, 동정의 우위를 지지하기 위한 신학과 교회위계조직의 발전과의 연관관계에 대해 질문하였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의를 다시 읽어보더라도, 결국 아우구스티누스는 섹슈얼리티 문제를 원죄 및 영적인 문제로 환원시켰고 따라서 인간을 정욕과 영원히 투쟁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 존재로 그렸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물음을 제기했다.


제6발표는 최화선,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 남장여자 수도자들과 젠더 지형>이었다. 발표자는 고대 말부터 중세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성인전 전통에서 흔히 등장하는 ‘남자 옷을 입고 남자처럼 살아가게 된 여성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당대의 사회 문화 속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유통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다각도에서 분석한다. 우선 발표자는 남장 여자 성인전들이 금욕주의의 젠더 지형 안에서 형성되었고 기존 질서를 흩트리지 않는 선에서 유통되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발표자는 그럼에도 이러한 남장여자의 이야기들이 중층적인 차원에서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에 위치함으로써 모호성을 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하였고, 그러한 의미에서 남장여자 이야기들이 기존 질서를 미세하게 균열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불러일으켰으며, 기존 금욕주의 젠더 지형을 재확인하면서도 미세하게 흔드는 이중적인 성격이야말로 이 이야기들이 지니는 텍스트로서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충범 논평자는 남장여자 성인전 가운데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인/추악한 여인’ 구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기존의 젠더구조를 흔드는 것인지 질문하였다. 또한 남장여자 이야기들이 고정된 젠더 질서를 견고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논평자는 고대교회 남장여성 이야기들이 이후 그다지 확장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발표자의 견해를 물었다.


종합토론시간에는 종교와 섹슈얼리티를 나란히 놓고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종교와 섹슈얼리티의 연결점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가령, 여섯 명의 발표자들이 ‘종교와 섹슈얼리티’라는 대주제를 놓고 서로 너무나 다른 이야기들을 전개하기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어떠한 과정에서 이러한 심포지엄이 기획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었다. ‘섹슈얼리티’나 종교 혹은 ‘성스러움’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도 제기되었다. 종합토론시간에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이후 식사시간과 뒤풀이시간까지 자유롭게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서로 동떨어진 듯한 주제들을 연결해서 살핌으로써 어떤 현상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층위를 발견해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종교학의 작업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앞으로 관련 연구들이 탄생할 수 있는 일종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참신하고 깊이 있는 연구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유기쁨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ntolose@hanmail.net
최근논문으로 <결혼이주여성과 종교>, <인간과 종교,그리고 생태 -더 큰‘이야기’속으로 걸어가기->,<애니미즘의 생태주의적 재조명- 믿음의 방식에서 삶의 방식으로>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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