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전능신(全能神)’과 나사(NASA):
종교와 과학, 그리고 합리성의 안과 밖
2012.12.25
Ⅰ.
2012년 12월 21일이 지났다. 아무 일도 없이! 그날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었는데. 일부에게는. 이번 지구종말론은 고대 마야의 달력에서 비롯했다. 마야 달력은 기원전 3114년 8월 13일을 원년으로 시작해 2012년 12월 21일로 끝난다. 지구멸망설을 믿었던 사람들은, 마야력의 마지막 날에 외계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거나, 태양을 비롯해 태양계 행성들이 십자로 배열되어 일어난 강렬한 태양폭발이 지구를 삼킨다고 주장했다.
지구멸망설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를 과학적으로 반박했다.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크기의 행성이 있다면 이미 관측되었을 것이고, 태양 폭풍 역시 수없이 자주 발생하지만 지구 대기권마저 바꿀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이날을 준비하는 행사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수백만 신도의 ‘전능신(全能神)’이라는 신흥종교가 세계종말을 주장하면서 공개적인 포교 활동을 하다 당국으로부터 된서리를 맞았다.
21세기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오래전 문화의 흔적에서 비롯한 이상한 믿음에 여전히 혹해 있다. ‘전능신(全能神)’의 자녀들은 NASA가 제시하는 과학적 설명은 이치에 닿지도 않는 듯하다. 지구종말론 소동을 보면서,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가?’를 다시 질문한다.
II.
지난 12월 8일에 《과학, 종교, 그리고 합리성의 안팎》이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한신대 종교와문화연구소와 과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합리/비합리’를 키워드로 종교와 과학, 일상을 넘나들면서 한국 사회의 비합리적 징후들을 진단하고 ‘합리성’을 다시 생각하는 시도였다. 자연과학, 종교학, 종교철학, 과학철학, 신학 등 다양한 배경에서 융합적, 다학문적, 통섭적인 맥락에서 종교와 과학,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씨실과 날실로 직조하는 학술행사였다. 그 직조물의 문양이 만든 사람들이 우희종, 김윤성, 김희수, 장대익, 현우식, 구형찬, 이렇게 여섯이었다.
우희종은 〈풍요로운 삶을 위한 과학의 탈신화화와 종교의 탈과학화〉라는 제목으로, 과학이 합리성을 독점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합리성을 이성적 합리성과, 감성적 합리성, 영적 합리성으로 구분하면서, 과학은 이성적 합리성의 범주에, 그것도 객관적 합리성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통해 과학과 종교의 적절한 위상을 자리매김하면서, 과학이 세속 종교화 되는 것과 종교가 과학을 모방하는 것을 멈추고, 둘 모두 자신의 영역 안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통합적인 삶을 주장한다.
김윤성은 〈기이한 믿음의 욕망 구조〉에서 ‘사이비 과학’과 결합된 믿음의 구조에 주목하고, 혈액형 인간학, 신종 종말론, 과학적 창조론을 사례로 삼아 이들 현상의 이면을 제시한다. 혈액형 인간학에서는 위계에 따른 분류와 차별의 기제를, 신종 종말론에서는 이것이 과학을 전유해서 종교의 빈틈을 채우는 과학-종교의 잡종임을, 과학적 창조론에서는 창조과학을 과학-신념의 합성물로 과학에 형이상학 덮어씌우기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그 믿음의 토대가 되는 지식을 산출하고 유통시키는 욕망의 구조를 드러낸다.
김희수는 〈한국 개신교회의 문자적 성서 해석과 적용의 비합리성〉에서 한국 개신교가 문자주의적 성서해석과 적용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점 세 가지를 검토한다. 비과학적 성서해석과 현대과학의 배척,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사회참여의 기피,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비합리적 정죄와 혐오와 차별이 그것들이다. 그는 이 주제들에 관련된 성서 구절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이 적절한지 다시 검토한다. 이른 통해 한국 개신교의 ‘합리성’이 결여된 상황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을 포용하고, 사회 정의 실현에 기여하고,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을 주장한다.
장대익은 〈왜 한국 개신교는 과학이 되려하는가?〉에서 최근에 벌어진 과학교과서 진화론 개정 사태를 분석한다. 그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윈회’의 주장 내용을 진화학적 관점, ‘과학과 종교’의 관점, 과학철학적 관점에서 각각 분석하고 논박한다. ‘교진추’의 주장은 현대 고생물학계의 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으며, 종교와 과학의 관련성에 대한 어느 범주로부터도 정당성 부여받지 못하고, 게다가 과학의 본성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이비과학이라고 평가한다. 그 뿌리에는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근본주의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우식은 〈수학, 종교, 자기성찰의 논리〉에서 과학과 종교와 합리성 사이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을 검토하기 위해, 수학과 종교의 논리를 중심으로 합리성의 문제를 논의한다. 그는 수학과 종교를 일종의 시스템으로 해석하고, 종교의 논리로 보는 수학 시스템과 수학의 논리로 보는 종교 시스템을 다룬다. 그는 종교의 논리와 수학의 논리를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교차분석을 시도한다. 이어 자기 합리성을 다루는 시스템으로서 수학과 종교가 갖는 한계 논리의 상관성과, 동시에 자기 성찰의 논리가 우리 시대에 갖는 함축성을 제시한다.
구형찬은 〈멍청한 이성〉에서 합리적인 인간이 어떻게 비합리적 믿음을 만들어내고 유통하고 존속하는가를 다룬다. 그는 먼저 이성과 합리성에 대해 서양 철학사적 맥락에서 논의를 검토한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합리적 이성’에 대한 자연주의적 반론을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을 중심으로 제시한다. 그는 인간의 인지 체계가 합리적이지 않는 믿음, 예를 들어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인지 법칙에 따라 발생하며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는 메커니즘을 인지종교학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III.
여섯 발표자와 여섯 논찬자로 구성된 심포지엄은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느낌이었다. 참여자의 학문적 배경도 그렇지만 다룬 주제가 아주 다양했기 때문이다. 합리성의 기원과 종류에 대한 거시담론부터 성적 소수자에 대한 성서해석의 합리성이라는 미시담론까지, 사이비과학과 창조과학, 수학, 인지과학 등 구성이 화려했다. 종교와 과학과 합리성의 안과 밖을 살펴보려는 이 날의 시도는 ‘합리성’과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기존의 ‘과학적’ 합리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다양한’ 합리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엄밀한 절차와 기준에 따른 합리성보다, 종교를 비롯해서 인간의 특정 활동 영역 또는 시스템이 독자적으로 합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다. 기존에 비합리적이라고 인식되는 문화와 삶 속의 활동들을 다른 층위의 합리성 또는 다양한 종류의 합리성이라는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들은 합리성의 확장이라는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신성한’ 합리성의 기원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의 도전이다. 합리성에 대한 논의 자체가 근대적 산물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합리성/비합리성을 인간이 오랜 전 진화과정에서 수렵 채집기에 형성한 인간의 인지 과정에서 나온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합리성이 인지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주장에 따른 합리성의 위상 저하처럼 느껴진다. 기본적으로는 ‘합리성’을 서구적 현대성에 근거한 합리성을 넘어서, 탈현대를 살아가는 일상에서 필요한 새로운 합리성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합리성의 확장과 합리성의 위상 약화가 종교 담론 구성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신재식_
호남신학대학교
jshin0440@hanmail.net
논문으로 <한국 기독교 신학자들의 종교와 과학 담론>, <한국사회의 종교갈등의 현황과 구조탐구> 등이 있고, 저서로 <<종교전쟁>>(공저), <<한국신학, 이것이다>>(공저) 등이 있다.
'뉴스 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4호-성공을 권하는 사회(하정현) (0) | 2013.02.20 |
---|---|
243호-癸巳年 새해 인사 (0) | 2013.02.20 |
241호-선교만을 위한 사회복지, 과연 정당한가(이혜숙) (0) | 2012.12.26 |
240호-2012년 종교문화비평학회 하반기 심포지엄 후기(유기쁨) (0) | 2012.12.14 |
239호-영성과 사회정의,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최현주) (0) | 2012.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