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244호-성공을 권하는 사회(하정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3. 2. 20. 17:48

 

                            성공을 권하는 사회


2013.1.8

 


지난 해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힐링’ (healing)이다. 치유라는 의미의 힐링은 육체적으로 상처가 나거나 병이 들었다가 회복되는 것, 또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억압을 받아 괴로워하다가 평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즉 힐링은 몸과 마음이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힐링이라는 말의 대유행은 마케팅 전략이 한 몫을 했을 터인데, 그렇다면 힐링이 마케팅의 중요한 코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야흐로 우리는 무한경쟁의 사회에 살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의 일상은 경쟁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경쟁력을 키우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을 두고 경쟁을 위한 무장을 해제하고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처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욕망의 분출을 합리화하여 그것을 부추기는 사회구조적 측면의 작용을 간과하게 되면 파생되는 문제들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경제계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기업 경영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 개인도 소위 인생경영이라는 이름하에 자유경쟁 시대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일류경영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OO 신화’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신화의 뜻은 절대적이고 획기적인 업적을 비 적으로 이르는 의미이다. 특히 ‘OO기업의 신화’는 고난과 갈등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가 된 기업의 성공담을 비유적으로 표현할때 사용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사실이 확인된다. 즉 신화는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신화만들기’는 곧 ‘성공적 삶’이 되는 효과를 초래한다.

 

주지하다시피 신화라고 일컬어지는 이야기들은 태초 혹은 아주 옛날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이와 같은 신화의 고전적인 의미와는 달리 최근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기계발 담론과 연동하여 신화는 기업적인 성공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시장의 대폭적인 개방과 기업의 자유경쟁을 강조하여 경제적 지구화를 추구하였다. 한국은 1990년대이래 이러한 세계적 변화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자유주의의 능동적 주체로서 개인의 삶에서 나타난 특징은 성공학의 확산과 자기계발붐이다. 초기 성공학인 자조론은 스스로의 노력과 긍정적 사고방식, 그리고 부단한 자기 자신의 단련 등의 관점에서 사회적 혹은 경제적 성취를 한 인물들을 조명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했다. 이때 삶의 모델이 되었던 자수성가 이야기는 현대판 영웅신화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성공담론의 확산은 끊임없이 기록갱신을 부추기는 우리시대의 성공 강박증의 반증이기도 하다. 신화창조라는 표현 역시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기호이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경쟁에 시달리며 스펙쌓기와 자기착취적 이념에 사로잡힌 우리시대의 자화상의 비유적 표현일 수 있다. 이와 같이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성공에 이르지 못한 개인들은 실패자가 되어 그 자책감을 피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끝없이 부적격한 상(像들)을 창조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일종의 세속화된 종교와 같은 자기계발서들은 독자들을 불완전한 존재로, 혹은 어떤 근본적 요소가 결여된 존재로 전제하고 자신을 해결사로 자처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금도 성공신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새로운 기록 수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닦달할 것이다.

기호학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신화라는 기호에는 일반인들이 쉽사리 해내기 어려운 획기적인 업적이나 신기록을 수립함으로써 성공적 삶의 모델이라는 기의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숨겨진 이면을 들여다보면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개인의 능력, 주체의 능동성을 강조하여 위기를 극복하려는 개인의 욕망과 경제적인 효율성을 숭상하고 동시에 자기의 책임을 내면화하도록 한다. 즉 그것은 경제적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시장원리에 따라 극한적으로 개인을 경쟁하게 하고 그 결과를 고스란히 감수하도록 유도하는 억압적 신화(이데올로기)의 측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신화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심지어 신성화되기까지하는 측면이 있다.


극한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소재로 상품화된 성공 내러티브는 출판물이나 강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소비되어왔다. 과연 이런 이야기들이 현대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지향해야 할 전형으로 기능하는 것이 온당할까.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식의 양극단적인 평가에 따른 결과를 고스란히 개인이 책임지도록 하는 체제에서 위로나 치유의 담론은 일상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성공신화 담론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때이다.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jhha797@naver.com
논문으로 <1920년대-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 등이 있고, 저서로<<신화와 역사>>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