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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 속에 비친 한국 종교의 현주소:

 

                 불교사회연구소 조사(2013.9)결과를 중심으로


2013.9.17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에서는 2011년부터 해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제기된 주요 쟁점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 세 번째로 실시된 사회여론조사에서는 새 정부의 국민통합 성과, 국정원 개혁, 원자력 발전의 안전 문제, 종교의 사회참여, 템플스테이, 힐링 욕구와 과제, 종교인의 수행법,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호국불교, 불교 발전 방안 등 정치, 사회, 종교 분야의 핫이슈들이 조사되었다. 그 중에서 사회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종교의 대응, 힐링 욕구와 과제, 종교인의 수행 등에 대한 조사는 종교사회학자로서 매우 흥미로운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는 각각의 조사 결과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에 대한 본인의 소회를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관심을 끈 것은 사회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종교(특히 불교)의 대응에 대한 인식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관심은 최근 들어 ‘갑을관계’로 대변되는 부정의하고 불공정한 ‘잘못된 사회적 관행’에 대한 사회적 비판으로 다시 한 번 표출된 바 있다. 종교의 예언자적 기능을 강조하는 이들은 당대의 부조리와 사회문제를 극복하는 전위대의 역할을 종교에 부여하곤 한다. 이와 관련하여 2013년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종교가 잘못된 사회적 관행을 방지하는 개혁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종교는 사회의 일에 개입하지 말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결과는 종교와 사회를 분리해서 인식하고 있으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거나 불국정토를 이룸으로써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종교적 사명이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의미한다. 나아가 종교와 사회를 분리해서 인식하는 경향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서도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종교의 종류나 유무와 관계없이 중립을 지키라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첫 번째 불편한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종교와 사회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어떤 종교문화가 이 같이 종교와 사회를 분리해서 인식하게 만들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한국의 종교들이 혹은 종교지도자들이 한국 사회의 정의와 공공선에 무관심했던 과보를 받는 것은 아닐까?

 

한편, 힐링 욕구와 과제에 대한 조사 결과는 종교의 예언자적 역할이 경시되는 이유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24.4%), 과열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22.9%), 경제적 궁핍(16.4%), 직장/삶에 대한 불만(14.6%), 고독감(14.4%) 등으로 인해 힐링이 필요하다고 한다. 불안, 스트레스, 궁핍, 불만, 고독 등 눈앞에 닥친 고통의 회오리로 인해 현재 한국인들은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할 만큼 여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우선 내 안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먼저가 되었다. 그렇기에 종교에 대해서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 프로그램을 개발해달라고 요구한다. 어찌 보면 그런 고통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이련만, 사회적 불합리를 해결하는 적극적 행동보다 힐링 프로그램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자. 눈앞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으니 종교의 예언자적 역할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것일까? 사회 구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서 파생되는 고통은 끝없이 되풀이된다. 고통의 악순환을 두고만 볼 것인가? 수레는 두 바퀴로 굴러야 하고, 새는 양쪽 날개로 난다. 개인의 고통과 그것을 발생시키는 구조적인 문제, 이 양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힐링’의 방법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종교적 수행일 것이다. 힐링을 위해서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수행을 하고 있을까? 불교 신자의 약 70%와 다른 종교 신자의 약 60%가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결과이다. 그리고 조사 결과는 30~40% 남짓한 수행 경험자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수행을 선택한 주된 이유는 방법이 쉬워서 일상생활과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나마 교회나 사찰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이 수행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를 수행의 종교라고 규정하는 불교 신자들의 수행 실태는 가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수십만의 신도 수를 자랑하며 세계적인 대형교회가 즐비한 개신교에서도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이 지점에서 또 다시 던져보는 불편한 질문 하나. 신도들에게 변변한 수행 방법조차 가르치지 못한 종교지도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종교는 스스로의 힘이든, 혹은 절대자의 권능에 기대든 사람들이 상처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그것이 신앙 대중들이 종교와 종교지도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 종교는 눈앞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기는커녕 변변한 위로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본인은 종교사회학 수업을 하면서 종교는 개인적으로는 위로의 기능을 수행하고, 사회적으로는 정당화와 변동의 담지자 역할을 한다고 가르쳐 왔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국 종교의 현실을 종합하면 ‘사람들은 종교에게 개인적 위안을 요구하고 있지만, 종교는 그러한 요구에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요구에서 비켜선 사회적 기능들은 방기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논리적 비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는 진단이다. 그렇다면 어떤 처방을 내놓아야 할까? 종교의 기능적 관점에서 위기에 빠진 한국의 종교 모두가 치열하고 냉철한 성찰과 전향적인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수호_
덕성여자대학교 지식문화연구소
foramita@naver.com
논문으로 <인터넷 열풍과 대인관계의 변화>, <아힘사를 통한 평화의 길>(공저), <종교정책을 통해 본 국가-종교 간의 관계: 한국불교를 중심으로>, <노동과 여가의 통합적 이해: 불교적 관점과 ‘좋은 노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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