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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함석헌이 본 종교, 종교가 본 함석헌>

 

제 1발표

 

제 목: 함석헌의 물 한 모금과 숨 한 모금

 

발표자: 김대식(대구가톨릭대)

 

논평자: 최종석(금강대)

 

제 2발표

 

제 목: 함석헌의 사유체계에서 <바가바드기타>와 불교의 위치

 

발표자: 송현주(순천향대) 

 

논평자: 루제동(금강대)

 

제 3발표

 

제 목: 함석헌과 종교다원주의

 

발표자: 신재식(호남신학대)

 

논평자: 이찬수(종교문화연구원)

 

제 4발표

 

제 목: '새종교'와 '낡은 종교':함석헌의 눈에 비친 한국 기독교 -

 

발표자: 이진구(한국종교문화연구소)

 

논평자: 신광철(한신대)

 

제 5발표

 

제목: 함석헌의 종교 이해

 

 

<발표문 요지>

 

-제1발표: 함석헌의 물 한 모금과 숨 한 모금 (김대식)

하늘의 마음은 빈 마음, 빈 마음-결이다. 함석헌은 그러한 비워내는 마음을 ‘버림’으로 일축한다. 버려야 하는 것이 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아니던가. 함석헌의 말-바람은 참으로 매섭고 적확하다. 아니 오늘날의 해체구성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하늘의 맘-결이 곧 씨의 맘-결이 되고, 씨알의 맘-결이 곧 하늘에 이르기 위해서 그가 말한 외침은 씨을 맞이하기 위한 말맞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장사상에서도 ‘도’(道, 로고스)는 우주와 인간의 삶을 풀어가는 말-매듭이다. 말의 매듭을 잘 풀어야 하늘의 소리와 땅의 소리가 만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말-겨룸만 무성할 뿐이다. 함석헌의 언어는 바로 이러한 시대에 제대로 말-열기 위한 몸부림의 산물이다. 그의 말은 하늘의 뜻이 이 땅의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산-숨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일하시는 운동성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장사상의 도의 운동성과 함석헌의 말값은 비견할 만하다. 결국 이러한 말-농사는 단순히 인간의 삶의 현실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환경세계에게도 깨달음의 언어로 다가온다. 함석헌의 말의 알(말-알)이 깨어난 것이다.

 

-제2발표: 함석헌의 사유체계에서 『바가바드기타』와 불교의 위치 (송현주)

함석헌은 기독교 중심의 종교다원주의자로 한국 종교사상사에서 선구적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전통적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그는 스승 유영모와 함께 기독교를 동양사상과의 회통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했다. 그의 종교적 삶은 무교회주의자로 출발하여 퀘이커교도로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는 교회제도 중심의 정통 기독교 신앙과 거리를 두었으며, 교리적으로도 정통 신관 및 기독론과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그의 사상은 스승 유영모와도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적 사유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함석헌의 사유체계를 형성하는 기본 틀의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고, 그 좌우 한편에는 간디를 통한 인도사상, 특히 『바가바드기타』의 사상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동양의 노장사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함석헌은 간디를 통해 인도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아 『바가바드기타』를 번역하고, 간디야말로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장 잘 체현한 사람이라고 극찬하였다. 그는 바가바드기타 사상의 카르마 요가의 구원론에 심취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만년의 오랜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노장사상을 강의하였다. 노장 사상의 무위의 행동철학은 민주화시기의 힘든 시절을 극복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저작을 꿰뚫는 키워드를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사유체계의 지향성은 주체성, 자유, 자발성, 저항성, 생명성, 개방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지향성 속에서 그에 걸 맞는 다양한 종교사상을 종합한 것이라 보인다. 특이한 것은 그가 특별히 불교를 그의 사상의 핵심에 놓고 사유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이 유영모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그는 불교를 허무주의와 개인주의적 특징, 특히 현실 면에서 저항적 사상과 행동을 유발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종교로 보는 듯 하다. 물론 그도 불교를 기본적으로는 참된 종교로 평가하였고, 그의 사상 속에는 불교적으로 읽힐 수 있는 많은 사유의 특성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불교 보다 도가의 무위자연, 즉 상선약수(上善若水)로 대변되는 비저항의 활동성, 평화주의, 생명성에서 궁극적 이상형의 상징을 본 것 같다. 또 바로 이 점에서 『바가바드기타』의 비폭력의 행동주의와 도가사상이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제3발표: 함석헌과 종교다원주의 (신재식)

이 논문은 함석헌의 종교다원주의를 4측면에 초점을 두고 다룬다. (1) 함석헌 종교다원주의의 형성 및 발전 과정을 밝힌다. 함석헌의 종교다원주의는 언제, 누구의 영향을 받고 시작되었는가? 함석헌의 사상 안에 어떤 종교 전통들이 어떻게 들어왔으며 그는 언제, 어떤 계기로 종교다원주의자가 되었는가? (2) 함석헌 종교다원주의의 내용과 실천을 규명한다. 함석헌의 신 개념 및 씨알 개념은 다종교 상황과 어떻게 결합되어 있으며 그는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함석헌은 종교다원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웃종교인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3) 현대 종교다원주의 이론의 입장에서 함석헌을 평가한다. 함석헌의 종교다원주의는 현대 종교다원주의의 다양한 입장(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 상대주의) 중 어느 것과 유사하며 어떤 학자들(파니카, 힉, 캅 등)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가? (4) 함석헌의 입장에서 현대 종교다원주의를 평가한다. 함석헌은 종교다원주의를 어떻게 보았으며(규범적, 이론적) 그의 사상은 종교다원상황에 어떻게 공헌하는가?

 

-제4발표: '새 종교'와 '낡은 종교' : 함석헌의 눈에 비친 한국 기독교 (이진구)

함석헌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는 ‘새 종교’로 출발하였으나 ‘낡은 종교’로 전락하였다. 수용 초기의 기독교는는 유교나 불교와 같은 ‘무기력한 노대종교들’을 대신하여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원할 유일한 ‘생명의 종교’로 등장하였으나, 교회의 제도화와 더불어 초기의 신선한 바람을 잃고 ‘낡은 종교’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식민지 치하인 1930년대에 ‘병든 기독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무교회주의 신앙에 입각한 진단과 처방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전은 당시 제도교회에 의해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무교회주의 진영은 한국교회에서 사실상 고립되었다. 해방 후 함석헌은 다시 한번 한국교회에 나타난 교회분열, 성령운동, 성장주의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국교회를 비판하였다. 특히 가톨릭의 윤형중 신부와 벌인 지면 논쟁은 한국기독교의 문제점을 교회의 영역을 넘어 일반 사회에 알리는 효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1930년대 무교회주의와 제도교회의 논쟁, 그리고 1950년대 함석헌과 윤형중 신부의 논쟁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고, 이러한 논쟁의 성과가 최근 한국교회에서 등장하고 있는 ‘교회개혁’ 운동의 논리에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규명한다.

 

-제5발표: 함석헌의 종교이해 (김경재)

사람이란 ‘종교인’(homo religius)이라는 명제를 함석헌은 긍정하는 입장이다. 종교란 취사선택의 사항이 아니며, 종교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자유의지의 결과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모든 종교들에 대하여 ‘반종교적 입장’이 될 수는 있지만 ‘비종교적 인간’이 될 수 없단 말이다.

왜 그런가? 함석헌은 인간이 진화단계에서 인격과 자기초월의식의 단계에 도달한 이상, 인간은 필연적으로 ‘뜻’을 찾고 추구하는 존재라고 본다. 종교는 뜻을 묻고 뜻을 추구하고 뜻을 이루려고 하는 인간적 생명활동의 정신현상이다. 삶의 의미와 뜻을 부정하고서는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와 도덕윤리 규범을 부정하는 ‘무정부적 허무주의’(anarchistic nihilism) 일지라도, 그가 그런 입장을 취하는 ‘의미와 뜻’을 떠날 수는 없다. 함석헌에서 하나님, 뜻, 하나, 종교, 역사는 거의 상호 대치가능한 의미를 지닌다.

함석헌의 종교이해에서 ‘궁극적 대상’은 ‘주체와 객체’라는 인식론적 상호관계성을 초월하는 관계이다. 뜻을 추구하는 사람은 ‘궁극적 실재’에게 말걸어 가지만, 동시에 그 ‘신비자’(The Mystery)는 말걸어 오는 존재이며, 초월자이면서 동시에 내재자이다. 함석헌에게서 ‘궁극적 실재’는 ‘초월과 내재’의 변증법을 넘어서 ‘창조적 과정’ 속에 존재하는 영원한 미완성자요 새로움을 창발하시는 궁극자이다.

그러므로, 함석헌에게서 ‘역사적 종교들’은, 아무리 위대한 ‘거룩한 전통’의 담지자일지라도, ‘영과 진리 자체이신 궁극적 실재’를 만난 과거이야기요 경험담이요 교리화 및 의례화 한 ‘죽은 껍질들’이다. 모든 종교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 초극함으로서만 ‘진리자체’를 드러내는 매개체로서 역동적 종교가 된다. 함석헌에게 있어서 궁극적으로 ‘종교는 하나이다’. 역사적 삶의 자리와 기후풍토와 언어체계가 달라서 구체적이고 다양한 ‘역사적 종교들’이 출현한 것이다.

함석헌의 종교적 영성은 동아시아 영성의 전통과 헤브라이즘의 그것과의 통전을 이룬 자생적 씨알영성이다. 유불선의 동아시아 영성의 특징으로서 말해지는 마음의 신묘한 본성 곧 ‘성자신해’, ‘공적영지’, ‘허령불매’를 인정하면서도, 영원히 새로움을 더해가는 미래지향적 ‘창조적 진화’를 믿는다. 그에게서 궁극적 실재는 ‘우주적 원리’이면서도 ‘우주적 마음’이다. 그에게서 하나님은 만유를 ‘하나의 몸’으로 통전시켜가는 부름이자 유인자요 촉매자이다. 21세기에도 종교가 필수불가결한 이유는 ‘지속가능한 지구적 삶’이 실현되기 위해 개체와 전체의 상호공속성을 강조하는 종교적 깨우침이 절대적으로 요청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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