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그녀의 병명을 분마성 폐결핵(galloping consumption)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이 매우 적절한 명칭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의사들은 기수였고,
그들의 채찍은 수은, 아편, 그리고 황산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 9주간 그녀를 세상 밖으로 몰아댔다. 그녀는 1790년 3월 13일에 사망했다.”
-Samuel Thomson, A Narrative of the Life and Medical Discoveries of Samuel Thomson:
Containing an Account of His System of Practice and the Manner of Curing Disease
with Vegetable Medicine(Columbus: Javis Pike & Co., General Agents, 1833[1822])-
19세기 미국사회에서 전개된 건강개혁운동(the health reform movement)의 선구자들 가운데 한 명인 사무엘 톰슨은 그렇게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묘사했다. 그의 모친은 홍역에 걸렸다가 병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렀다. 그런데 톰슨은 모친의 죽음에는 의사들의 책임이 컸다고 확신했다. 당시 의사들은 독한 약물을 이용해서 환자의 몸에서 질환을 제거하는 공격적인 치료법에 의존했고, 톰슨이 옆에서 지켜봤을 때 그러한 치료법은 득보다는 실이 컸다. 톰슨은 의사들에게 받았던 치료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는 어떤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음을 느꼈고, 자신의 식물의학의 체계를 구축하면서 의사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론에 함몰된 채 임상경험을 경시하는 의학교육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삼사년을 오직 ‘의학서 읽기(reading physic)’에만 몰두한 후에 의사 면허증을 거머쥔 자들이 의학의 영역에서 권위와 정당성을 누리는 현실에 분노했다. 톰슨의 분노는 의학교육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빈한한 삶의 조건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일반인에게는 독해 불가능한 ‘문자 읽기’에 근거한 지식-권력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권력에 맹목적으로 종속된 채 자기 본성이 지닌 능력과 잠재력을 무시하는 평민의 무지에 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