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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신교의 민낯: 사유화와 맘몬과 개교회주의
news letter No.539 2018/9/11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그런데 계절은 가을로 들어섰지만, 한국의 주류 종교들은 여전히 열대야를 보내는 듯하다.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 할 것 없이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은 습하고 답답하고 불쾌한 열대야 그 자체다. 특별히 필자가 속한 한국개신교의 모습은 과연 스스로의 자정과 갱신이 가능할까를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보수주의 또는 근본주의 신앙인으로 불리는 개신교인들의 행태는 개신교 전통의 외부에 있는 사람이 지닌 상식의 경계를 넘어설 뿐만 아니다, 같은 신앙 전통을 가진 사람들까지 당혹스럽게 만든다. 태극기와 미국기와 이스라엘기가 어우러지고, 이념과 지역과 교리로 편 가르기를 하고, 배제와 차별과 증오를 당연시하는 이들의 행태는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를 자처하는 이들의 사고와 행동은,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공감과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 기성 세대와 한국 개신교의 젊은 세대 사이에 인식과 행동의 간극이 크다. 이들의 신앙적 세계관은 1980년대 초에 머물러 있으며, 일부는 1970년대 어쩌면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곳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이들 세대는 1970년대 중반이후 한국개신교의 성장 과정에서, 확장된 교회와 기관에 쉽게 진입했으며, 평생을 그곳에서 혜택을 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혜택과 특권을 지속하고자 한다. 급성장한 초대형교회는 웬만한 중견기업 매출 이상의 재정 규모를 자랑하고, 언론과 학교, 병원과 사회복지 기관 등을 소유하고 운영한다. 이들 초대형교회와 관련 기관의 핵심적인 자리는 목회자 가족과 그 교회의 평신도 지도부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교회와 관련 기관에서 하는 일은 소명과 봉사의 장이 아니라 직업과 직장이 되었다.
한국교회에서 세습이 자주 발생하고 또 가능한 것은, 은퇴하는 목사와 세습 목사의 이해관계와 현재 교회 지도부를 구성하는 일부 평신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경제적 이해관계, 즉 돈에 있다. 초대형교회 목회자와 소수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수많은 교인들의 헌금과 봉사의 결과로 얻어진 성장의 결과물을 독과점하고 있다. 세습한 초대형교회의 목회자와 소수의 평신도 지도자들은 경제적 공생 관계다. 헌금과 교회 관련 부동산이 목회자, 경우에 따라서는 소수의 평신도 지도자들에 의해 비자금이나 차명 재산의 형태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공적 자산을 소수의 사람이 사유화한 것이다.
초대형교회는 자신들이 가진 물적 자산을 사용하여 내부의 공생 관계를 기반으로 외부의 조력자들과 함께 동맹을 맺는다. 지난 40여년의 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혜택을 받은,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일정한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이 체제를 위한 부역자가 되고 동맹군이 되어, 이런 교회 세습과 사유화에 교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공적 자산이 사유화되고, 그 사유화의 강력한 동인이 “맘몬”임에도 불구하고, 개별교회의 사안이니, 다른 교회나 신앙인, 한국사회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개교회주의”를 방패로 내세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공교회성과 공공성을 맘몬의 논리로 왜곡하고 폐기하고 있다.
사유화와 맘몬, 개교회주의가 함께 뒤범벅된 삼위일체, 이것이 오늘 한국 개신교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한국 개신교의 쇠퇴나 몰락은 이들이 주장하듯이 무신론이나 좌파 이념이나 성정의 주장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자멸한다면 스스로 자신들이 믿는 신을 부정하는 내부 모순 때문일 것이다. 이번 주, 9월 둘째 주는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교단이 총회를 여는 주간이다. 한국 개신교의 미래는 사유화와 맘몬, 개교회주의 대신 공공성과 청빈, 공교회성의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 한국개신교는 지금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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