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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69호-종교의 물질적인 측면에 주목하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4. 9. 19:48

종교의 물질적인 측면에 주목하기

news  letter No.569 2019/4/9  

 




뭐랄까. 심각하게 지적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 내가 지금껏 써왔던 글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진 관성을 깨뜨릴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소재나 주제를 다루든지 그 결론은 항상 특정한 관념이나 인식에 대한 해명이었다. 즉 종교적 세계의 핵심에는 사상 내지 관념이 있으며, 의례나 기타 물질적인 장치들은 기껏해야 그것을 외적으로 표상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인식론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다. 이런 반성을 계속 밀고 나간다면 종교사 연구의 귀결은 종교 사상사라기보다는 종교 생활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상이나 관념, 의례, 도상, 건축물, 그리고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들이 때로는 촘촘하게 때로는 성글게 엮인 다발로 종교사를 구성하려면 어떤 방법론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이런 물음을 던지게 만든 글 한 편을 소개할까 한다.

대학원 수업에서 서구 종교학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최근 학술지에 실린 글들을 뽑아 읽고 있다. 이번에 읽은 것은 독일 괴팅엔 대학교에 있는 페터 브로인라인(Peter Bräunlein)의 논문이었다. 제목은 〈사물을 통해서 종교를 생각하기〉(MTSR 28, 2016)인데, 종교 연구에서 물질적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다. 물질적 전환(material turn)이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지 내가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인간을 중심에 두고 주체인 인간이 물질적 대상에 작용을 가한다는 생각을 바꾸자는 것으로 읽었다. 말하자면 인간과 사물이 공동 주체로 작동하여 서로를 구성한다고 보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사물, 주체-대상, 내부자-외부자, 에믹-에틱, 연구자-연구대상 등의 이분법이 지닌 부정적인 측면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도 있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브로인라인의 글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아마 본인의 연구였던 모양인데, 괴팅엔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하와이 쿠(Ku) 신상에 관한 것이다. 제임스 쿡 선장이 하와이에서 유럽으로 가지고 왔고, 지금은 괴팅엔에 있다. 박물관 진열장 안에 전시된 쿠 신상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조명에 약간 연극적인 공간 배치가 더해져서 거의 경건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한다. 관람객도 그 장소가 신전이 아님을 알면서도 경건한 자세를 취한다. 게다가 선거철에는 정치인들이 찾아와서 쿠 신상에 찬사를 늘어놓는다. 만약 이 신상을 유럽 다른 나라의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빌려줄 량이면 마치 친선대사를 파견하는 것처럼 성대한 환송식을 벌인다. 쿠 신상이라는 사물을 의인화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달리 보자면 쿠 신상이 주체가 되어 여러 사물과 사람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하와이 사람들의 우주관 혹은 유럽인들이 상상한 원시인과 원시문화 등 각종 관념 요소들을 어떻게 배열하는지를 탐구할 수 있다.

쿠 신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물을 주체의 자리에 놓는 발상 등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는 일본 에도시대의 이른바 가쿠레기리시탄[隱れキリシタン]이 모셨다는 성모상 이야기이다. 데이비드 미첼의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이라는 소설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오타네는 빗장을 두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 꽃병을 치우고 뒷벽을 옆으로 밀어 연다. 그 작은 비밀 공간에는 오타네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 들어 있다. 그것은 파란 베일을 쓰고 하얗게 빛나는 예수 사마의 어머니, 성모이신 마리아 사마의 금이 간 조각상으로, 오래 전 관음보살을 본 떠 만든 것이다. 마리아상은 팔에 아기를 안고 있다. 오타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금빛 백조들이 끄는 하늘을 나는 마법의 배를 타고 천국에서 온 사비에르라는 성인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타네는 손에 도토리 묵주를 들고 아픈 무릎을 꿇는다.
성스러우신 마리아 사마, 데우스 도노의 신성한 감을 훔친 아단과 에와의 어머니시여, 여섯 아들을 데리고 여섯 척의 배를 타고 온 세상을 깨끗이 씻어낸 대홍수에서 살아남으신 아버지 마루지의 어머니 마리아 사마시여, 은전 400냥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사마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시여, 마리아 사마, 들어주소서, 저의 …”

일본의 개항 이후에 다시 진출한 유럽 선교사들은 가쿠레기리시탄의 신앙을 변질된 것으로 여겼다. 기도문도 다르고, 교리 내용도 엉뚱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변질이라고 보는 것은 유럽인의 시선일 뿐이다. 어쩌면 관음보살과 결합된, 아니 혼효를 일으킨 성모상이라는 물질이 주체가 되어 일본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자연스러운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닐까. 순수와 변질을 논하기 이전에 종교의 물질적 측면이 발휘하는 힘으로 볼 수는 없을까.

둘째는 조선 천주교의 사례이다. 부산에 있는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는 복자 윤봉문 요셉(1852-1888)의 위장 교리서라는 것이 있다. 부산 동래 태생인 윤봉문은 거제도에서 필묵 장사를 하면서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그런데 신자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칠 적에 관헌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묘한 책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겉표지에 소학언해(小學諺解)라고 쓰고, 앞장에는 소학을, 뒷장에는 천주교 교리를 적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교리를 설명하다가 수상한 인기척이 나면 소학을 펴서 공부하는 척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물관 큐레이터와 교회사를 전공한 학자들은 이 책에다 위장 교리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말은 책의 외형은 유교적이지만 그 속에 천주교 신앙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과연 외형과 알맹이가 그렇게 나뉠까? 천주교 교리를 읽자면 아무래도 한두 번은 소학을 곁들여 읽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이것이 모종의 물질적 효과를 낳지 않았을까? 사유의 혼효는 다소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다. 당시 고해성사 매뉴얼을 보면 죄에 대한 성찰을 권하면서 우주만물을 지으신 천주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은 강상죄인이라는 구절이 종종 나온다. 소학과 교리서가 하나의 책 속에 어쩔 수 없이 물리적으로 공존하면서 빚어낸 물질적 효과를 강상죄인이라는 표현 속에서 발견한다면 지나친 비약이리라. 그렇기는 하지만 물질적인 요소들을 주체로 설정하고, 물질이 인간의 종교적 의식을 구성한다고 보는 것은 참신한 발상이다.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논문으로 <윤지충의 폐제분주(廢祭焚主) 논거에 대한 일 고찰>, <마누엘 디아스와 《聖經直解》>, <19세기 조선 천주교의 죄 관념 연구> , <근대 이행기 한국종교사 연구 시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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