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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와 초자연적 호러물,‘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것’에 대한 열망?

 

           news  letter No.566 2019/3/19      

 




  
  
     
      땅속에서 귀신이 올라오고, 얼굴이 여럿 달린 생명체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중에 갑자기 손이 나타나 저주의 글을 벽에 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무서우면 무서웠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장면들을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 중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들은 ‘초자연적 호러물’의 팬들이다. 귀신이나 괴수를 다루는 영상 또는 글 외에도 SF나 판타지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은 이 장르는 이른바 ‘힐링’을 제공하는 문화상품과는 거리가 멀다. 도대체 왜 즐기는 것일까?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게 괜찮긴 한 걸까?

     나 역시 초자연적 호러물의 팬으로서, 석사졸업을 위한 연구주제로 ‘종교와 호러’를 선택했었다. 그것도 복음주의 개신교계열의 학교에서. 연구결과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이러한 문화상품은 모든 면에서 다 나쁘고 그저 멀리 해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과는 좀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이것이 과도한 폭력성, 선정성 등에 대한 정당한 우려들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호러물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제부터 함께 감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참고로, 여기에서는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나 ‘사이코’같은 영화들은 포함하지 않는 좀 더 좁은 범위인 ‘초자역적 호러물’에 논의를 국한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밝히고자 한다). 다만, 나와 같이 ‘종교와 문화의 접점’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일만한 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면관계상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첫째, ‘종교’를 좁게 정의할 경우1), 영혼과 내세, 선과 악, 윤리에 대한 우주적 질서 등 명시적인 종교적 소재들을 그 어떤 장르보다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장르가 바로 초자연적 호러다. 다시 말해, ‘대중문화 속의 종교’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권의 초자연적 호러물들은 특정 종교들에 대한 왜곡 및 과장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 역시 특히 연구자들의 비평을 요한다) 각 문화의 초자연적 공포에 대한 조심스러운 비교도 가능하게 해준다. 아직까지 이 분야에 대해 연구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종교와 문화를 연구하는 이들의 더 많은 관심을 요한다.2)

    둘째, 좀 더 종교적/신학적 차원의 관점일 수도 있는데, 초자연적 호러에 매료되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대의 대중적 종교문화가 크게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루돌프 오토는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포함하는 핵심적인 요소를 묘사하기 위해 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신비’로 거칠게 번역해볼 수 있다. 이 개념은 종교와 호러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인용하는 개념인데, 이는 인류가 ‘종교적인 것’을 찾을 때에 보편적으로 함께 추구해왔던 요소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종교에서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신비’의 대상은 주로 다양한 초자연적/신적 존재들인데 (반드시 악한 존재들일 필요는 없다), 이러한 측면을 누릴 수 있는 종교문화가 현대에 과연 얼마나 있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독교, 특히 복음주의 개신교권에서 잘 알려진 C. S. 루이스도 루돌프 오토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기독교와 판타지 및 SF의 긍정적 관계에 대해 변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코 ‘그러니까 다 같이 나처럼 호러물을 즐깁시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호러영화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거 같아, 글을 마치기 전에 영화 두어 편만 언급을 하고자 한다. 스캇 데릭슨이라는 영화감독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 호러영화 감독이라는 이력을 갖고 있는데 그가 감독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로즈>나 <인보카머스>가 추천할만하다. 더 최근 영화로는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 2>도 추천한다.

    참, 이미 눈치를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글의 서두에서 예로 든 장면들, 땅속에서 올라오는 귀신이나 하늘을 나는 초현실적인 생명체, 그리고 공중에 나타난 손은 모두 호러영화가 아닌 성서에 나타나는 장면들이다. 더군다나 소위 ‘악한 영적 존재’들을 묘사하는 장면들도 아니다. 루돌프 오토가 종교의 핵심적인 요소로 이해한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신비’와 함께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종교문화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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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종교의 정의는 매우 어려운 문제인데, 종교의 내용보다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넓게 정의를 할 경우 거의 모든 사회현상이 ‘종교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2) 대표적인 단행본으로는 Douglas Cowan의 <Sacred Terror> 나 Timothy Beal의 <Religion and its Monsters> , Kim Paffenroth의 <Gospel of the Living Dead> 등이 있으며, 몇몇 논문들도 소개가 되어있다. 필자도 《Journal of Religion and Popular Culture》와 《Journal of Religion and Film》에 관련 논문을 기고했었다.




      


홍승민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Exegetical Resistance> , <Toward Korean Contextualization> ,< Uncomfortable Proximity> , <Punching Korean Protestantism> , <The Ring Goes to Different Cultures> , <Redemptive Fear>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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