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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천지(天池)의 신성성의 기원에 관한 단상(2)

 


                 news  letter No.570 2019/4/16       

 

 


민족의 ‘발상지(發祥地)’, ‘영산(靈山)’, ‘성산(聖山)’, ‘성지(聖地)’, ‘조종산(祖宗山)’, 단군 신화의 무대에 이르기까지 백두산을 수식하는 다양한 용어들은 한결같이 우리 민족의 시원성(始原性)과 연결되어 있다. 신채호는 1908년 《독사신론(讀史新論)》에서 《삼국유사》의 태백산 묘향산설을 반박하였다. 그는 “고기(古記)에 말한 바 ‘신인(神人)이 태백산 단목(檀木) 아래에 내려왔다’라는 한 구절에 근거하여 태백산을 서북일대에서 널리 찾다가 묘향산에 이르러 향단(香壇)나무가 울창함을 보고 이를 태백산으로 억지로 단정하고 장백산의 옛 이름이 태백산인줄을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하면서 태백산은 묘향산이 아니라 백두산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채호의 이러한 주장은 백두산 단군 탄강지론(誕降之論)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921년 동아일보사는 함경남도에서 모집한 백두산 탐험대에 민태원 기자를 보내서 기행문과 사진을 연재하였다. 또 조선일보사에서는 1930년 당시 부사장이었던 안재홍이 백두산을 방문하고 《백두산 등척기》를 신문에 연재하였다. 특히 최남선은 백두산 천지(天池)를 민족의 발상지로 신성화하고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에서 소생할 것을 기원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1926년 7월 28일에서 1927년 1월 23일까지 동아일보에 〈백두산 근참〉을 연재하였고, 1927년 단행본으로 《백두산 근참기》를 출판하였다. 그 내용의 한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캄캄한 속에서 빛이 나온다. 닫힌 것이기에 열릴 것이다. 밝고 환한 것이며 꽉 막히어 깜깜할 것이 염려되지만, 꼭 막힌 바에는 남은 일은 열림이 있을 뿐이니, 이제는 하느님도 아주 잠가 두시려 하는 것이 도리어 어려운 일일 것을 생각하면 나의 할 도리는 언제까지든지 터질 때까지 지키고 서서 움직이지 아니할 따름임을 결단하였다. (중략)
억지로 말하자면 연록(軟綠)을 예각(銳角)으로 한 모든 종류의 빛깔을 지닌 물과 그 늪을 빌 어서 우리 어머니의 진신(眞身)이 그 편린을 저기 잠깐 내어놓으신 것이라고 하겠다. ‘거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직관적으로 저기 저 늪을 형언하기 위하여 생긴 말임은 의심이 없을 것 같다.”


1926년 7월 24일 경성을 출발하여 7월 29일부터 8월 7일까지 백두산을 여행했던 그가 백두산의 정상 천지에 이르러 감격하면서, ‘억지로 말하자면’ 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험을 기행문의 형식으로 노래하였다. 이렇듯 최남선이 백두산을 두고 민족의 거룩한 발상지로 보는 기원설은 역사적 기원(historical origin)보다는 위기 상황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기원(recurrent origin)의 의미일 것이다.

최남선의 《단군론》(1925),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1925)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단군론과 백두산 기행문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며, 나아가 그의 불함문화론에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조선 문화를 인류의 삼대 문화, 즉 인구(印歐) 계통의 문화와 지나(支那) 계통의 문화 그리고 불함문화 계통 가운데 가장 원초성을 간직하고 있는 핵심으로 간주하였다. 불함문화론을 통해 그는 인류 전체의 보편적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하려고 애썼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순례자처럼 백두산을 여행했던 최남선은 백두산 천지(天池)를 민족의 발상지로 신성화하고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에서 소생할 것을 노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함문화론이라는 신화 만들기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였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심각하게 들려오는 백두산 분화 징후 소식에 이러한 백두산 상징 투쟁도 속절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드는 것은 당연지사일까.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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