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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75호-삶과 괴리된 무형 문화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5. 21. 16:47

삶과 괴리된 무형 문화재

 news  letter No.575 2019/5/21 

 

 



우연한 기회에 2013년의 신문 기사 하나를 읽게 되었다. 그 기사는 보금자리 주택 사업으로 건설 예정지에 살던 기존 마을 주민들이 정작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쫒겨 나가는 안타까운 소식을 담고 있었다. 그 마을은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이다.

구리시 갈매동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15호로 지정된 ‘구리 갈매동 도당굿’을 해 오던 마을이다. 현재 갈매동은 새 도로와 지하철 역이 생기고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갈매동에 살던 기존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입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럼 2년에 한 번 짝수가 되는 해에 해오던 갈매동 도당굿은 어떻게 되었을까?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덕분에 아직도 도당굿은 이어지고 있다. 2018년에도 갈매동 도당굿은 행해졌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으며, 굿의 공간도 갈매동 도당굿 전수관에 제한되어 있다.

갈매동 도당굿은 마을을 단위로 행해지는 마을굿의 하나이다. 마을굿의 특징은 마을 공간에서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행해진다는 점이다. 경기도 지역 마을굿에는 마을의 경계, 우물, 각 가정 등 마을의 주요 공간을 신을 모시고 순회하는 절차가 있다. 이러한 절차는 일상의 삶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던 마을의 공간과 마을 구성원을 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갈매동 도당굿에도 이런 과정이 있는데, 그것을 유가라고 한다. 마을신을 모신 대를 앞세우고 마을의 각 가정을 방문하면, 유가 행렬을 맞이한 집에서는 고사상을 차리고 신께 인사를 드린다. 유가는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가 되는 새오개 고개애서 시작해서 밤을 세워 각 가정을 방문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처럼 유가는 마을의 경계와 각 가정을 방문함으로써 갈매동 마을의 공간과 거기서 살아가는 마을 구성원의 존재를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유가는 갈매동 도당굿이 하나의 마을굿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과정의 하나이다.

그런데 현재는 새로운 도로와 지하철 역의 설치, 아파트 단지 조성 등으로 옛 갈매동 마을의 공간 구조와 경관은 완전하게 해체되었다. 그렇다고 새롭게 형성된 공간을 바탕으로 도당굿이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저 전수회관이라는 인위적인 행사 공간에서 행해질 뿐이다. 이런 점에서 현행 갈매동 도당굿에서 마을굿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는 도당굿 주체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갈매동 도당굿 같은 마을굿의 중요한 특징은 굿의 준비와 진행 과정에 마을 주민들이 주체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은 함께 공동으로 굿을 준비하고 굿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이 동일한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일체감과 연대감을 경험한다. 이런 점에서 마을 주민들의 참여는 마을굿의 정체성 확보에 핵심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현재 갈매동 도당굿에는 옛 갈매동 주민은 물론 현 갈매동 거주 주민들도 참여하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구리시 문화원이 주최하는 전통문화 행사의 하나로 진행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주체의 측면에서도 갈매동 도당굿은 마을굿의 정체성을 상실한 상황이다.

현 상황을 고려할 때 갈매동 도당굿은 마을굿의 생명력을 이미 상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도당굿 같은 마을굿은 마을과 마을의 공동체적 삶을 기반으로 성립 가능하다. 마을과 마을 삶으로부터 분리된 마을굿에서 그 존재 의의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는 갈매동 마을과 마을 삶의 자연스런 변화에서 파생된 불가피한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문제는 마을과 마을의 공동체적 삶,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국가의 개발 정책이다.

또한 이는 한국의 무형 문화재 정책의 한계 탓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무형 문화재 정책은 무형문화를 그것의 삶의 기반과 분리시켜 파악하는 전제에 기초해있다. 마을굿 같은 공동체 문화는 마을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분리될 수 있고 그래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문화 현상을 무형 문화재로 지정하기는 해도 그것의 물적 토대인 현실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형문화를 그것의 토대인 현실 삶과 분리시키지 않을 때, 무형 문화재 보존 정책은 비로소 현실 삶과 분리된 박제화된 무형문화의 보존에 그치지 않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
최근 논문으로 <일제의 무속 규제정책과 무속의 변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무속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비교: 접신(接神)체험과 신(神)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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