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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73호-간디의 삶과 종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5. 7. 18:34

간디의 삶과 종교


 news  letter No.573 2019/5/7  

 



간디의 생애와 사상체계에 나타나는 인류평화와 평등사회의 구현 정신은 그의 종교관과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15년 타고르는 간디를 진리의 실현자이며 고통 받는 중생과 함께 하는 구제자로 여기고 그에게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별칭을 지어 주었다. 프랑스 출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은 1924년 간디를 만나 큰 감명을 받고 그를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렀다. 같은 시기에 춘원 이광수도 간디를 예수의 이상과 이념을 현현(顯現)하려는 성웅(聖雄)으로 평가하였다. 동아일보 사장 인촌 김성수는 1926년 11월 간디에게 편지를 보내 “정의의 튼튼한 토대 위에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는 지도자”라 칭했다.

간디의 종교관의 핵심은 모든 형태의 착취와 압박 즉 악(惡)에 최우선적으로 대항하여 이겨내는 수단, 곧 ‘아힘사’(Ahimsa, 직역하면 ‘비폭력’)다. 이러한 면에서 간디의 정신은 힌두교보다는 불교와 자이나교, 혹은 비정통 사상의 흐름인 중세 인도의 바크티(신에 대한 충실한 헌신) 운동에 더욱 가깝다.

간디의 어머니는 스무 살에 이른 그의 아들이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술, 여자, 육식 등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이나교 승려 앞에서, 영국 유학을 허락하였다. 유학 시절 그는 바가바드 기타,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 톨스토이의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is Last)》 등을 읽었는데 이 글들은 그의 포괄적 종교관의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곳곳에 아쉬람(수도원)을 세워 세속적 기쁨의 향연에 대한 자기부정과 고행, 금욕주의를 강조하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 정신적 힘을 확보하라고 권고하였다. 그가 생전에 즐겨 부른 노래, 〈Vaisnava Jan〉(“타인의 아픔을 느끼고 나누는 자가 비슈누 신을 따르는 신자다”)는 인도 중세 바크티 운동의 거장인 나르심하 메흐타(Narsimha Mehta, 15세기)의 자작시다.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습득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간디는 정의를 향한 인류의 잠재력은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체제를 통해서만 온전히 표현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또한 그는 계급의 구속에서 벗어난 차별 없는 사회,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사회, 경제 발전을 통해 빈곤을 극복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꾸준히 노력하였다. 간디는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하층민인 불가촉천민을 하리잔(Harijan, 신의 자손)이라 불렀다. 1932년에는 영국 식민지 정부의 계획 즉 불가촉층의 사회적 신분을 차별화된 계급으로 지속시키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금식했다. 또한 불가촉천민을 힌두교의 모체 안에 편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하리잔 봉사재단’(Harijan Sevak Sangh)을 설립하였다. 간디의 독립운동은 영국 제국주의로부터의 정치적 독립만이 아닌, 카스트 제도의 악습을 극복한 평등사회의 구축과 인도인의 경제적 권리의 보장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의 정신세계가 보편적 종교관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간디는 개인만이 아닌, 제국주의로 상징되는 모든 억압과 착취에 맞선 새로운 운동의 대변자로 널리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의 종교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도덕에서 유래되었으며 다음의 말에 잘 함축되어 있다. “나는 절망에 빠질 때마다, 진리와 사랑은 늘 승리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합니다. 절대 불패의 폭군과 살인마일지라도 종국에는 모두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간디는 당대의 유일무이한 거물이었고 사후에는 가난과 독재, 불의에 대항한 민족투사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국민의 맨손과 기도, 인내로 가득 찬 가슴으로, 인도만이 아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피압박 약소민족에게, 식민통치에 대항할 힘과 믿음을 주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제국주의 통치의 정당성과 도덕적 기반을 약화시킴으로써 민족해방의 바탕이 되었다.





판카즈 모한_
Dean, School of Historical Studies, Nalanda University,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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