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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74호-축원에 관한 단상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5. 14. 16:03

축원에 관한 단상

  

     

news letter No.574 2019/5/14

 

                                         

‘부처님 오신 날’로 기념되는 음력 사월초파일이 올해는 양력으로 5월 12일이었다. 평소에는 사찰에 가는 일이 없던 불자일지라도, 어쩌면 연중에 딱 한 번일지라도, 대개는 이 무렵 절에 가서 등에 불을 키고, 자신을 위하거나 혹은 타인을 위한 소원을 밝힐 것이다. 소위 연등(燃燈)과 축원(祝願)이라는 것은 불교신행문화에서 중요한 전통이다. 초파일만이 아니라 수시로 사찰을 찾아가는 불자라면, 불상 앞에 놓인 복전함(福田函)을 기억할 것이다. 말 그대로 ‘복의 밭’이 되리라는 상자에 평소 불자들이 현금을 보시함으로써, 스스로 축원을 삼기도 한다.

마침 지난 4월에 필자는 중국 항주(杭州)에서 아난다 문화교류센터[Ananda Cultural Exchange Center]와 국제참여불교네트웤[
http://inebnetwork.org]이 공동주최한 행사에 참석하여 유명한 몇몇 사찰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의 법당에서 뜻밖의 문물을 발견하였고, 나름대로 흥미로워서 회원 여러분께 간단히 소개를 하고 싶다.

[그림 1]에는, 참배객들이 복전함에 현금을 넣는 대신에 중국의 유명한 알리바바 그룹이 개발한 전자결제 시스템 즉 알리페이[Ali-pay]로 송금하도록 사찰의 QR코드와 안내문이 붙은 복전함이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필자 머리에 퍼뜩 떠오른 것은 법당의 보시금이 비교적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겠다는 점, IT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는 왜 흔히 볼 수 없는 문물인가, 하는 점이었다.

중국의 사찰운영은 여러 측면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고 우리와는 다른 여건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들이 보시함으로써 공덕을 쌓고 복락(福樂)을 기원하는 신행이야말로 공통된 문화일 것이다. 다만 필자가 상상하건대,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나서 지갑의 돈을 꺼내 복전함에 집어넣는 행위와, 휴대폰을 열어 QR코드로 결제를 실행하는 행위, 그 둘 사이에서 신행경험상으로 어떤 차이는 없을까.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알고 싶다.

오른쪽 [그림 2]는, 역시 중국 일정에서 또 다른 지역 사찰에 갔을 때의 사진이다. 일행 중 누군가가 중앙의 붉은 색 복전함에 돈을 넣는 순간, 어딘가에서 큰소리로 녹음된 중국말이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필자가 중국인 친구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를 물으니, 내용인즉, 방금 보시한 사람을 위해서 평범하게 축원하는 메세지라고 했다. 누군가 복전함에 돈을 넣을 때마다 그것을 지켜본 사찰의 종무원이 녹음기를 틀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복전함에 특별한 센서를 부착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화폐가 아닌 물건을 복전함에 넣었을 때는 어떻게 반응할까. 신실(信實)한 불자라면 그런 허위의 보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심기가 되겠지만, 지적 호기심이 좀 있는 필자로서는 반응실험을 하고 싶은 충동이 잠깐 일어났다. 하지만 당시 법당에 보는 눈들이 많아서, 차마 가짜 보시를 실험하지 못 하고 조용히 물러나 왔다. 분명 기계음처럼 느껴지고 어느 면에서는 “만인평등”하게 축원하던 소리가 아직도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근래 일본의 어느 사찰에는 대중에게 설법을 하는 법사 로봇이 있다고 하던데, 복전함에서 몇 마디 축원의 메세지를 반복하는 자동응답기의 활용쯤이야, 특별할 것도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시와 공덕과 축원의 가르침을 믿고 수행하는 불자들의 내밀한 신행경험에서, 이 기계적 장치들로 인한 하등의 변화는 없을 것인가. 장차 인공지능 시스템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더욱 광범위하게 통솔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인간본연의 영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점점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해지고 있다.





이혜숙_
금강대학교 초빙교수
논문으로 〈불자 신행교육의 평가를 위한 예비적 고찰〉, 〈불교계의 청소년지원을 위한 정책적 제언〉, 〈구조적 폭력과 분노, 그 불교적 대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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