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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91호-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인디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9. 10. 22:19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인디언



 

                news  letter No.591 2019/9/10       

 

 


1. 어떤 원주민 여성의 이야기


8월 7일부터 18일까지 밴쿠버 곳곳에서 바인즈 아트 페스티벌(Vines Art Festival)1)이라는 발랄한 생태예술축제가 열렸다. 마지막 날, 페스티벌의 마무리는 (보통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알려져 있고 캐나다에서는 ‘First Nations’로 일컬어지는) 원주민들이 주도했다. 스무 명 가량이 거대한 삼나무들 사이에 둥글게 둘러앉았고, 두 원주민 여성의 인도에 따라 마무리 의례(Unsettling Ceremony)가 진행되었다. 인상적인 순서가 있었다. 눈 옆에 일자로 선을 그은 머스퀴엄(Musqueam Nation) 여성이 어린 아들과 함께 타악기를 두드리며 둥글게 앉은 우리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고, 자기네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고 나서 그 여성은 저음으로 아주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일부를 짧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9세기 말, 캐나다에는 ‘인디언 레지덴셜 스쿨’이라는 것이 있었다. 원주민 아이들을 데려다가 근대적 교육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가족으로부터, 원주민 언어와 문화, 그들의 전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강제 기숙학교인데, 많은 그리스도교 기관이 레지덴셜 스쿨의 운영에 관여해왔다. 그 여성의 아버지는 레지덴셜 스쿨을 오랫동안 다녔는데, 거기서 심각한 성적 학대를 당했고, 부족의 언어도 잃어버리고 전통도 정체성도 잃어버리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등 레지덴셜 스쿨의 해악을 온몸으로 경험했다고 한다. 사실 그 여성은 그러한 아버지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늙어서 병상에 있을 때 신문에 실린 어떤 신부의 얼굴을 보고 그 사진을 가리키면서 바로 저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비로소 아버지가 해준 얘기에 따르면, 스쿨에 들어간 첫날부터 그 신부가 성적 학대를 수년에 걸쳐 감행해왔다는 것이다. 그 원주민 여성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엇비슷하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기에, 자녀들에게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옷장 속에 숨어서 내가 안보이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고, 그 여성은 native라는 게 과연 뭘까, 언어도 잃고 집도 잃은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 nativeness라는 게 과연 무얼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 머스퀴엄 원주민 여성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메시지는 강렬했고, 나는 레지덴셜 스쿨의 역사와 기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2) 자기네 언어와 문화를 강제적으로 박탈당한 레지덴셜 스쿨의 경험은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고, 나는 밴쿠버 원주민 퀴어 필름 페스티벌부터 파란 오두막 프로젝트(원주민 생태예술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른 성격의 행사와 모임에 참여할 때마다 원주민이 묻는 정체성의 물음을 되풀이해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2. 예수, 십자가, 인디언 : 밴쿠버 박물관의 전시

며칠 뒤 밴쿠버 박물관에서 나는 매우 인상적인 전시를 만났다. <There Is Truth Here>라는 타이틀로 라는 타이틀로 열린 그 전시는 레지덴셜 스쿨 및 데이 스쿨에 다니던 원주민 아동들이 당시에 그린 그림을 어렵게 입수해서 한곳에 모은 전시회였다. 전시장 입구에서 짧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레지덴셜 스쿨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survivals)’의 눈물 젖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영상 속에서 그들은 레지덴셜 스쿨에서 언어를 잃어버리고 문화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삼나무 목판에 그려진 그림 하나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인디언’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림은 매우 선명하고 강렬했고, 나는 1934년~1942년 사이의 어느 날 오소유스의 어떤 원주민 아이가 그린 ‘예수를 못 박는 인디언’ 그림의 함의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레지덴셜 스쿨과 데이 스쿨에서는 원주민의 영성을 말살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종교교육을 시행해왔다. 그런데 예수를 못 박는 인디언 그림이라니! 강제 기숙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자기네 문화 대신 강요된 ‘예수’를 못 박고 싶을 만큼 기숙학교가 싫었던 것일까? 내 상상의 나래는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했다. 나중에 살펴보니 뒤쪽에도 연작 그림(‘십자가의 길’ 연작 그림)이 있었고, 거기서는 예수를 심문하는 빌라도가 인디언으로 그려졌을 뿐 아니라 심문 당하는 예수의 머리에도 깃털이 하나 꽂혀 있었다. 예수는 그림 속에서 전형적인 원주민의 외양을 지닌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짧은 머리와 수염 등 외양은 전형적인 (서양식) ‘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떻든 인디언의 깃털을 꽂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머리에서는 깃털이 자취를 감춘다.)


3. 세인트 메리 레지덴셜 스쿨의 그리스도 수난극

그로부터 열흘 가량 지난 후, 스똘로 원주민의 문화와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고든 모스와 앤 모스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레지덴셜 스쿨을 둘러싼 담론의 지형이 결코 단순명쾌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레지덴셜 스쿨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앤 모스가 편집한 책, 곧 스똘로 원주민 자녀들이 수용되었던 세인트 메리 인디언 레지덴셜 스쿨(the Saint Mary’s Indian Residential School) 생존자들의 증언집인 <Amongst God's Own>을 선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증언집의 표지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십자가상에 달린 –전형적인 서구적 모습으로 표상된- 예수 주위로 원주민들이 창을 들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그것은 1892년 브리티시아일랜드 세인트 메리 스쿨에서 이루어진 인디언 수난극의 한 장면이다.

1863년 개교한 세인트 메리 스쿨은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레지덴셜 스쿨로서, 1985년에 폐교할 때까지 프레이저 강을 굽어보는 아름다운 장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인트 메리의 개교와 운영에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께 봉헌된 수도회(Oblates of Mary Immaculate)’가 깊이 관여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세인트 메리 스쿨은 지상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시간을 공연하는 그리스도 수난극으로 인근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증언집에 따르면, 세인트 메리의 그리스도 수난극에서는 원주민들이 창을 휘두르는 로마 병사와 백부장 뿐 아니라 사도, 제자,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의 역할까지 배역을 맡았다고 한다. 다만 수난극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장면에서는 실물 크기의 (전형적) 그리스도상이 십자가에 걸렸는데, 그 상처에서 마치 피 같은 액체가 막달라 마리아를 나타내는 원주민 여성에게 쏟아지는 등, 수난극은 매우 정교하고 생생하게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그리스도 수난극 공연의 발상과 구성에 원주민 학생들은 얼마나 깊이 참여했을까? 원주민의 그러한 참여는 자발적인 것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연극에 참여했을까? 책에 실린 단편적인 정보들로는 내막을 깊이 알기 어려웠다. 과연 원주민들이 자신의 문화적 전통을 기반으로 가톨릭을 창조적으로 흡수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문화 전통을 박탈당하고 그 자리에 가톨릭을 이식 당한 것일까.

어떻든 분명한 것은, 레지덴셜 스쿨을 운영해온 캐나다의 그리스도교계는 근래에 이르기까지도 원주민 문화에 대해 오만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고수해왔으며, 원주민 문화의 힘과 복잡성을 보지 못했고, 그들을 오로지 계몽과 선교의 대상으로만 여겼다는 점이다. 세인트 메리의 마지막 관리자들 중 하나인 맥나마라(Terence McNamara) 신부는 고백했다. “우리는 오만한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만 진리를 갖고 있다고 여겼고, 우리가 오기 전까지는 여기에 영(spirit)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3)

오소유스의 원주민 아동이 그린 예수 그림과 세인트 메리 기숙학교 학생들이 배역을 맡아 공연한 그리스도 수난극 사진이 ‘갓 쓴 예수’ 그림처럼 단순히 ‘토착화된 그리스도교’의 예시로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러한 그림과 연극의 바탕에 원주민의 종교문화를 말살하고 그리스도교를 이식하려는 배타적 선교 방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기 때문일 것이다.

* * *

(1991년 캐나다의 ‘원죄 없으신 마리아께 봉헌된 수도회’는 원주민 문화의 해체에 그들이 담당했던 역할을 인정하고,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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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밴쿠버에서는 5년 전부터 매해 여름 열흘 가량 바인즈 아트 페스티벌(Vines Art Festival)이라는 일종의 생태예술 축제가 열린다. 예산도 거의 없고 개런티도 없는데, 뜻있는 예술가들, 다양한 성격의 주민들, 우리가 흔히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알고 있는 캐나다 원주민들이 모여서 소박하지만 진지하고 유쾌하게 축제를 이끌어간다. 참가비는 없고 중간 중간에 깡통을 돌려서 기부금을 받는다.

2) 이날의 의례는 삼나무 연기와 독수리 깃털로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화하는 씻김의식으로 마무리되었다.

3) Terry Glavin and Former Students of St. Mary’s, Amongst God’s Own: The Enduring Legacy of St. Mary’s Mission, Mission, BC: Longhouse Publishing, 2002, p. 87.

 




유기쁨_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등이 있고, 역서로《원시문화 1권, 2권》(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아카넷, 2018),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권~3권》(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아카넷, 2012), 《문화로 본 종교학》(맬러리 나이, 논형,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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